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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Nov 30. 2022

고모는 못 말려




 고모가 셋 있다. 아버지는 오 남매 집안의 장남이다. 그 아래로 큰 고모, 둘째 고모, 작은아버지, 막내 고모가 있다. 큰 고모와 각별하다. 큰 고모는 내 결혼식에서 돌아가신 어머니 자리를 대신했다. 상견례 자리도 함께 했다. 겉치레 못 하는 아버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자리였다. 고모는 교회 지역구 리더, 인천 명예소방 대장 등의 감투를 쓰고 있다. 사회생활 만렙이다. 상견례에 잔다르크가 등장했다. 고모 덕에 어려운 자리 어렵지 않게 지켰다.



고모는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음식 솜씨 좋고, 인심 좋고, 유머 감각도 준수하고, 우애도 깊다. 홀로 지내는 아버지에게 매년 김치와 반찬을 보낸다. 이 시대의 고모상이 있다면 수여하고 싶을 정도다. 나와 아버지에게 과분하다.



이런 고모에게도 단점이 있다(때때로 장점이다). 지나친 세속성이다. 큰고모와 막내 고모가 대화를 나눈다. 아무개가 아파트 분양받았는데 50평짜리가 20억이고, 시세 차익이 얼마고, 포르쉐 타고 다닌다. 누구는 직업이 뭐고 출신 대학교가 어디라더라. 누가 아깝다 땡잡았다 등의 소재가 연이어 등장한다. 나의 세속성의 출처를 발견했다.



세속성은 다르게 표현하면, '분명한 기준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사회의 등급 나누기를 체화한다. 서성한 중경외시 건동홍 평균 입결컷으로 대학 등급을 나눈다. 제네시스, 그렌저, 투싼, 아반테, 마티즈도 잊으면 안 된다. 세종대 출신, 투싼 오너, 송도 24평 아파트 자가, 연봉 6천 삐빅- 중산층 삐빅- 그중 하위 30프로입니다.



고모의 기준으로 조카는 한없이 부족한 인간으로 거듭난다. 우리 조카 대학교 어디지? 아하 대학교 안 나왔지. 우리 조카 직업 뭐지? 아 청소한댔지. 우리 조카 돈 얼마나 벌지? 호주에선 그 정도 다 벌지. 우리 조카 차 뭐지? 일본 중형 세단? 뭐 2010년형 캠리라고? 혹시 역사 박물관에서 빌려온 거니? 그래도 대도시에서 내 집 마련을 했다니 장하네. 얼마 주고 샀어? 에게? 멜버른 오션뷰 아파트라더니 송도 아파트값도 안 되네. 삐빅- 가방끈 짧은 서민, 삐빅- 그래도 내 조카 예뻐.



같은 기준에서 와이프는 과분한 인간이 된다. 질부 대학교 어디지? 호주 최고 대학 학사, 석사 출신이지. 우리 질부 직업 뭐지? 그렇지 문화재 컨설팅! 돈 얼마나 벌지? 이야 대단하네 전문직에 그렇게 많이 번다고? 부모님 학교 어디랬지 직업은? 두 분 다 해외 대학 박사과정 수료라고? 일 년 1/3을 해외에 나가는 직업이라니 국제적이네. 질부 동생은 의사랬지? 그래 우리 조카 질부 어떻게 만났니. 삐빅- 가방끈 긴 중산층, 삐빅- 내 조카에게 과분해.



고모가 보기에 우리 부부가 한쪽이 한참 기운 시소 위에 있다. 와이프가 조카였다면 말했을지 모른다. "아이고 저런 가방끈 짧고, 돈 없고, 뒷배경 없는 얼굴만 잘생긴 남자(아마도)가 뭐가 좋니. 다시 한번 생각해 보렴." 명문대 출신, 고액 연봉, 전문직, 배경 좋은 와이프를 어디서 굴러먹었는지 모르는 무뢰배에게 줄 수 없는 노릇이다.



내 편마저 나의 반대에 서 있다. 내가 나서 항변한다. 내 기준에 시소는 적당한 균형을 이뤘다. 관점을 조금 바꾸면 된다. 사실 균형이 아니라 내 쪽으로 기운다. 결혼할 무렵 와이프는 무직이었다. 취직해서 이렇게 빠르게 승진하고, 이렇게 가파르게 연봉을 올릴지 나도 그녀도 몰랐다. 그에 반해 나는 모아둔 돈도 조금 있고, 안정적으로 경제 활동도 한다. 만들 수 있는 요리도 많고, 청소와 정리 정돈을 곧잘 한다. 백수인 와이프는 놀고, 일하고 온 내가 장보고 요리한다. 식후에 설거지도 내 몫이다. 취미라 해봤자 커피 마시면서 글 쓰고 책 읽는 정도다. 페미니스트인 와이프가 보기에 '빻은 소리'(그녀가 가부장적 마초의 행동을 가리키는 말)도 안 한다. 요컨대 경제관념 좋아, 돈 적당히 벌어, 요리와 빨래 등 가사 전담해, 인권 의식 준수해, 잘생기기까지(내 의견). 누구를 만나도 모자랄 일 없다. 와이프가 부러울 지경이다.



큰 고모에게 종종 전화를 건다. 가장 감사한 사람 중 하나다. 일상을 주고받으며 감사함을 표시한다. 전화 건너편에서 안부를 묻는다. 요즘 어떻게 지내? 네 고모 요즘 새 사업 시작했어요. 대단한 건 아니에요. 동업인데 친구가 거의 맡아서 운영해요. 신경 쓸 건 없어요. 너사와요? 또 승진할 것 같아요. 이번에 승진하면 창사 이래 최단기간 승진일 거예요. 유능하죠? 일상을 묻는 말에 공평하게 내 자랑 하나 와이프 자랑 하나씩 건넸다. 고모는 안쓰러운 듯이 말했다. "아이고... 너도 이제 제대로 일해야 하는데.. 너사와는 대단한데..."



네네 고모 쉬세요. 또 전화드릴게요. 뚝. 우리 고모의 반응을 곱씹는다. 몇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1. 나는 지금 제대로 일하고 있지 않다. 2. 와이프의 성취가 더 크다. 몸으로 하는 일은 제대로 된 일이 아니다. 제대로 된 일은 대학교 전공을 활용한 일 사무직이다. 청소기로 소파 밑에 있는 먼지 빨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크린에서 문서 작업하는 것이다. 돈도 다른 무게를 지닌다. 노동 후에 얻는 돈은 확실한 기준이 된다. 수치화할 수 있다. 나와 와이프가 버는 돈은 비슷하다. 내 수입은 개인사업자 치고는 적지만 일반 회사원과 비교하면 나쁘지 않다. 내가 부업으로 얻는 추가 수입, 와이프가 연봉 상승으로 얻는 추가 수입은 가치를 달리한다. 고모의 반응은 "아이고 잘난 질부가 돈까지 더 버는구나. 더 비교돼서 어쩌니"로 해석할 수 있다.



고모 관점으로 조카의 결혼은 불공정거래다. 세속적 지표, 그러니까 결혼해 듀오의 등급으로 볼 때 상급 여성과 하급 남성의 만남이 이뤄졌다. 듀오 기준에선 내가 얼마나 요리, 빨래, 설거지, 와이프 비위 맞추기, 농담따먹기, 맞장구치기를 잘하는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떤 일상을 나누고, 와이프가 아플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반영되지 않는다.



경제 독립을 이루지 못 했다. 일은 삶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이다. 제대로 일하지 않는다는 말은 제대로 살지 못 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조카사랑 넘치는 우리 고모는 와이프 잘 만나서 대충 사는 조카를 걱정한다. 잘난 와이프 보며 주눅 들지 않을까, 열등감에 시달리지 않을까, 휘둘리며 살지 않을까. 기우다. 휘둘리는 건 맞다. 와이프가 우리집 1짱, 내가 2짱이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넘버 투의 삶을 살고 있다.



나는 고모가 좋다. 고모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고 싶다. 부업으로 얻는 수입이 입 밖으로 나오려 한다. 나이 먹고 너무 놀라는 것도 건강에 안 좋다. 말을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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