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표현을 전제한 창조활동이다. 대표적으로 회화, 조각, 문학 등이 있다. 범위는 커지는 중이고 현재 게임이 예술 맨 뒷자리에 자리한다. 이것이 일반적 예술의 정의다. 수사적으로 쓰이는 예술은 어떤 일의 정도나 수준이 대단함을 뜻한다. 예를 들면, 새벽에 백두산 등반을 한다. 강추위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정상에 도달한다. 숨이 헉헉 막히고 진이 빠진다. 동행과 서로의 노고를 치하한다. 고통의 역사를 서로의 몸에 새긴다(후에 추억이란 이름으로 꺼낼 수 있다). 물 한잔하고 경치를 감상한다. 세상과 한 몸이 된 것 같다. 땀이 식는다. 춥다. 허기진다. 배낭에서 육개장 사발면 2개를 꺼낸다. 동행의 배낭에선 보온병이 나온다. 뜨거운 물을 사발면에 붓는다. 면이 충분히 익을 수 있도록 서로의 몸으로 바람을 막는다. 추위가 옷과 옷 사이로 들어온다. 3분 기다린다. 종이 뚜껑 벗긴다. 김이 뒤집힌 폭포처럼 쏟아진다. 안경에 김이 서린다. 온기가 살짝 언 볼을 녹인다. 나무젓가락을 쪼갠다. 면과 수프가 잘 풀어지도록 섞는다. 크게 한 젓갈 집어 입에 넣는다. 곧바로 뜨거운 국물을 호록호록 들이킨다. 수사적 예술은 여기서 등장한다.
"시발 예술이네"
정도가 지나치게 맛있다. 정도가 지나치게 좋다. 고생을 포상한다. 고생, 언 몸, 풍경, 동행, 기다림 모든 게 하나로 합쳐진다. 이 맥락에서 육개장은 예술로 거듭난다.
글은 대표적인 예술의 미디엄이다. 언어를 조합해 새로운 개념을 만들고, 미묘한 순간을 포착한다. 혹은 일상을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옮긴다. 지면에 일상이 담길 때 문장을 선별한다. 이 선별 과정에 다른 현실이 겹쳐진다. 시간과 공간의 레이어를 겹치며 일상을 연출한다. 레이어와 문장을 잘 고르면 일상은 예술의 영역에 접어든다. 표현을 전제한 창조활동이며, 정도가 지나칠 정도로 좋은 일반적, 수사적 기준을 충족시키는 예술이다.
발신인이 예술의 목적 없이 쓴 가벼운 일상도 수신인에 따라 예술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것도 새로운 예술의 창조군. 상대가 예술하고자 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냥 단순히 기록하고자 했던지 모른다. 블로그 이웃 누군가가 몇 번 버스 타고 출근하러 가는 길을 글로 남긴다. 글쓴이 안에 있는 글쓰기 역사와 체화한 레이어 짜기 능력이 발현한다. 예술하고자 하지 않았으나 예술이 돼버린다. 의도 여하와 무관하게 수신인이 말한다. 오 예술이네.
글 쓰며 너사와와 이야기 나눈다. 우리집 서재는 여러 역할을 맡는다. 서재, 너사와 화장대, 너사와 옷방. 2베드룸 아파트는 베드룸에 많은 짐을 부과한다. 글 쓰는 나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핸드폰 볼륨을 최대로 해서 아이코의 노래를 튼다. "오빠, 아이코 아직도 활동한다. 존나 오래 하네." 이 순간 내게 아이코 노래는 소음이다. 예술이 아니다. "오빠, 어제 나 화장품 많이 샀다. 박싱데이 세일이라 다 반값에 삼." 나는 그녀의 소비를 격려한다. "와 돈 많이 썼네. 어제 원피스도 샀잖아. 네가 소비 사회를 지탱한다. 주춧돌이네." 너사와는 말한다. "아름다움엔 돈이 들어. 내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것도 소비가 있기 때문이야. 오빠도 그 덕에 아름다운 와이프랑 사는 거야." 변명 예술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