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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Jan 12. 2023



 나는 옷을 좋아한다. 한때는 패션계 거물을 꿈꿨다. 젊은 한국인 디자이너가 세계 무대에서 활약한다. 세 번의 기회가 있었다. 우선 군대 전역 후다. 대학교에 진학해 의상 디자인을 전공하고 싶었다. 돈 없어서 실패. 다음은 일본 워홀이 끝났을 때. 도쿄 문화복장원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모자란 학비를 벌기 위해 호주에 왔다. 호주 삶이 일본 삶 보다 행복할 것 같아 포기. 마지막으로 호주 워홀이 끝났을 때. 의상 디자인으로 유명한 대학, RMIT가 있는 멜번으로 지역 이동을 했다. 한 해 두해 미루다 진학 포기. 디자인과 지인의 일상을 목격했다. 먼지 속에서 미싱 돌리는 게 현실이다. 남이 만든 옷이 제일이다. 옷으로 밥 벌어먹겠단 생각을 지웠다. 호감만 남았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당위가 없으니 순수하게 옷을 즐긴다. 경제적 여유도 생겼다. 럭셔리 브랜드 제품은 못 산다. 중저가 브랜드 아이템은 언제고 산다. 옷을 즐기기 유리한 환경이다. 어릴 때 돈 없어 못 샀던 나이키 신발, 아디다스 운동복, 노스페이스 패딩을 주문한다. 꽉 찬 옷장을 연다. 콧노래 부르며 외출복 정한다.



눈치챘다. 무수히 많은 옷과 신발, 가방, 액세서리를 구매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 옷도 여러벌 입어본 놈이 잘 입는다. 내 체형에 맞는 옷이 무엇인지, 시간이 지나도 활용할 수 있는 옷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시행착오 끝에 눈치 챈 사실 한 가지, 멋지기 위해선 '옷을 입어야 한다'.



옷을 입는다는 게 무엇인가? 우리는 많은 경우 옷이 아니라 브랜드를 입는다. 브랜드 로고나 브랜드를 상징하는 패턴을 앞세우는 행위다. 이것은 브랜드를 입는 것이지 옷을 입는 게 아니다. 브랜드의 이미지를 향유하는 자신과 경제력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걸어다니는 광고판이다. 브랜드 로고를 앞세운 사람은 멋지지 않다. 옷의 소재, 핏, 색, 입는 사람의 체형을 고려해 옷을 고를 때 '옷을 입는다'고 말한다.



내게 옷 입기는 글쓰기와 비슷하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은 군더더기가 없고, 앞뒤 문장과 의미가 이어지는 문장이다. 주장과 근거, 예시가 적절하게 섞여 명쾌하게 논증하는 문장이다. 내가 좋아하는 코디는 군더더기가 없고, 소재와 색과 핏과 질감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코디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탄탄한 어휘가 필요하다. 옷을 멋지게 입기 위해 어디에나 잘 어울리는 기본 아이템이 필요하다. 기본 아이템은 올바른 어휘다. 상황에 맞는 어휘를 써야 내 생각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만듦새 좋고, 기본에 충실한 옷이 깔끔한 인상을 준다.



기본 아이템은 무엇인가? 어디나에 잘 어울리고, 오랜 시간 품질이 검증된 아이템이다. 저마다의 분야에서 기준이다. 나는 효율을 좋아한다. 최소 지출로 최대 효과를 누리고자 한다. 내게 기본 아이템이 최고 효율 품목이며 효자다. 유행과 무관하기 때문에 옷이 망가지지 않는 한 언제까지고 입을 수 있다. 범용성도 좋아서 대부분의 아이템과 궁합이 맞는다.



품목 별로 기본 아이템을 언급할까 한다. 기준은 나다. 내게 특히 쓸모 많은 아이템을 정리했다. 특정 브랜드 제품은 브랜드를 명시한다.


바지

리바이스 501: 저렴한 가격에 훌륭한 퀄리티를 자랑한다. 청바지의 시초격으로 역사와 전통이 깊다. 가장 기본이 되는 브랜드의 가장 기본 모델이다. 백 년이 지나도 사랑받을 제품이다. 특히나 1995년 이전에 만들어진 제품이 튼튼하고 물 빠짐이 예쁘게 진행된다. 워낙 많이 팔렸기에 구제 시장에서 곧잘 발견된다.

 

유니클로 U 레귤러 핏 샐비지 데님: 시티보이룩을 창시한 뽀빠이의 편집장 키노시타 타카히로가 유니클로의 디렉터로 부임했다. 기본에 충실하면서 약간이 디테일을 추가해서 멋까지 잡았다. 특히나 르메르 라인, 유니클로 U가 전면에 나서며 확실히 멋진 브랜드로 탈바꿈했다. 한 인물이 진두지휘해 좋은 옷이 무엇인지 탐구한다. 옷에 대한 철학이 모든 제품에 닿아 서로 잘 연결된다. 이 가격에 이 정도 퀄리티 제품을 구매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옷을 입다'와 부합하는 제품군이다. 브랜드를 전혀 내세우지 않고 옷 그 자체로 존재한다. 왜라는 질문을 거듭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사소한 디테일에도 의미가 담긴다. 키노시타 타카히로 덕인지 많은 제품에서 그런 디테일을 발견한다. 샐비지 데님이 왜 인기가 많고 현대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생각이 미친다. 그런 옷에 대한 철학과 브랜딩을 라이프웨어 매거진이란 계간지로 설명한다. 여러 제품 중 유니클로 U 레귤러 샐비지 데님의 퀄리티가 특히나 우수했다. 이 가격에 이런 제품 다른 곳에서 구매하기 어렵다.



디키즈 874 오리지널 핏 워크 팬츠: 오리지널은 레귤러 핏을 뜻한다. 레귤러는 중간, 기준이 됨을 뜻한다. 기본 아이템에 적합한 명칭이다. 워크 팬츠로 역사가 깊다. 신체 노동에 적합한 신축성과 강도를 자랑한다. 청바지와 태생적 쓰임이 비슷하다. 75년 이상 입을 수 있는 바지를 만들자는 모토 아래 만들어진 제품이다. 오래오래 튼튼하게 입을 수 있는 바지다. 기본 아이템의 의미와 부합한다.



신발


신발은 이견의 여지가 크다. 내가 좋아하는 몇몇 신발은 대중성과 거리가 멀다. 철저히 내 의견이다.


무인양품 흰색 슬립온: 슬립온 신발은 내가 생각하는 가장 미니멀한 디자인이다. 디테일이 많지 않다. 심심한 맛을 내기 좋다. 슬립은 제품의 기준은 반스다. 반스의 체크 패턴의 슬립온, 검은색 슬립온을 자주 신는다. 흰색은 무지가 낫다. 캔버스 질감의 차분함을 느끼고자 슬립온 제품을 신는다. 반스 흰색 슬립온의 경우 캔버스 느낌이 덜하다. 무지 제품이 내가 기대하는 모습에 더 가깝다.


반스 슬립온: 앞서 말했듯 본인을 앞세우지 않아서 좋다. 다른 아이템과 좋은 조화를 만든다.


컨버스 척테일러, 아디다스 스탠스미스, 컨버스 잭퍼셀, 크록스 샌달, 닥터마틴 구두: 각 분야의 상징적인 아이템이면서 브랜드를 상징하는 로고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옷의 본분에 충실하다.



특정 스타일의 상징과 같은 브랜드와 제품이 있다. 나머지는 아류, 혹은 특정 시즌에 반짝이는 유행 아이템이다. 한철 폼 나게 입고 버릴 옷을 사는 것은 경제적이지 않다. 웃돈 주고 아류 사는 것도 경제적이지 않다. 대중성의 큰 이유는 적당한 가격이다. 상징으로 자리 잡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적당한 가격으로 오리지널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이런 옷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옷으로 존재한다. 최소 소비로 최대 효율을 낸다. 다른 옷과 잘 어울린다. 내가 되고픈 사람이다. 남과 더불어 살고, 관용 있고, 자기 기준이 있고,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사람. 내 인간적 지향은 청바지와 흰 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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