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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Jan 27. 2023

2012년 어느 여름날


2012년 어느 여름날  


자신에 왜 사냐는 질문을 주기적으로 던진다. 항상 모른다는 답을 적어 다시 던진다. 몰라도 지향점은 가지고 살아야 한다. 이전엔 즐거운 삶, 요즘엔 멋있는 삶이다. 즐거움 쫓을 때 종종 끝 맛이 안 좋다. 멋을 쫓을 땐 끝 맛이 나쁘지 않다. 멋은 장기적 지향으로 쓸만하다.



멋은 무엇인가? 답은 그때그때 다르다. 지금은 언제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선 다양한 종속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러 종속의 출처는 돈이다. 경제 독립을 하게 되면 벗어날 수 있다. 그렇기에 경제독립이 최우선 과제다. 돈은 완결된 목적이 아닌 멋있기 위한 수단이다.



어제 책을 읽었다. 리얼리티 트랜 서핑 2권이다. 여기서 긍정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긍정적이지 않고는 긍정의 시나리오가 찾아오지 않는단다. 긍정. 나를 표현하는 단어다. 나는 무자비한 긍정의 소유자였다. 궁금해졌다. 비상식적인 긍정의 매커니즘이. 극단적 케이스 스터디가 좋은 지표일 것이다. 2012년은 쇼핑몰 사업을 실패한 직후다. 그때도 나는 행복했다. 하루 일과를 되짚고 무자비한 긍정의 매커니즘을 찾아보고자 한다. 한국에서 보낸 마지막 해 8월을 떠올린다.



오전-


8시 기상. 방은 24시간 어둡다. 방엔 작은 창이 하나 있다. 창문은 제 역할을 하지 못 한다. 10센티 간격으로 옆집이 붙어 있다. 창이 서로 마주 보고 있진 않다. 민망한 상황은 피했다. 컴퓨터를 켠다. 일본 예능 방송 몇 편을 다운로드한다. 전날 받아놓은 방송을 재생한다. 거실에서 라면을 끓인다. 김치통과 냄비를 들고 방으로 들어온다. 키보드와 컴퓨터 책상에 라면 국물 튀기며 식사한다.



10시 외출 준비. 보일러를 튼다. 5분 기다린다. 화장실에 들어간다. 하수구 냄새가 역하다. 하수 처리가 잘 안 된다. 가끔 구정물이 역류한다. 무릎 높이의 수도꼭지를 돌린다. 목욕탕 의자에 쭈그려 앉아 연결된 고무호스를 잡고 몸 여기저기에 물을 뿌린다. 물기를 닦고 옷방으로 향한다. 월세 20만 원짜리 집이지만 방은 무려 3개다. 옷방 문을 열면 곰팡이 냄새가 진동한다. 방의 1/3이 곰팡이로 뒤덮였다. 빈티지 쇼핑몰이 망하고 재고를 집으로 몽땅 가져왔다. 철봉형 옷걸이에 모든 옷을 걸었다. 벽 두 면이 옷으로 가득 찼다. 안 입는 옷에는 먼지가 뿌옇게 쌓였다. 호피무늬 빈티지 재킷과 유니클로 회색 스키니진, 여자친구의 그림이 있는 3천 원짜리 실내화를 신는다.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다. 아이팟 클래식에 소니 MDR-XB700 헤드폰을 연결한다.



11시 잠실로 이동. 가파른 경사를 따라 내려간다. 5분 정도 걸으면 사창가가 나온다. 업무 시간이 끝나 발광을 멈춘 간판 사이를 지나친다. 10분가량 걸으면 신흥역 번화가가 나온다. 5분 더 걸으면 역사에 도착한다. 거울에 장발에 교정기 끼고, 호피무늬 재킷에 심슨 그림이 그려진 실내화를 신고 있는 20대 청년이 비친다. 홍대에 살아야 할 것 같지만 비싸서 월세 20짜리 성남 달동네를 지킨다. 지하철을 타고 20분 정도 가면 잠실역에 도착한다. 8호선에서 2호선 쪽으로 15분가량 걷는다. 환승역 사이가 지독하게 길다. 굵직한 인프라는 2호선 잠실역에 있기 때문에 걷는다. 만남의 광장에 도착한다.



오후-



12시 여자친구와 접선. 잠실역 만남의 광장에서 만난다. 롯데리아에서 1500원짜리 아이스커피 2잔을 구매한다. 커피를 홀짝이며 석촌호수를 걷는다. 천천히 이야기 나누며 더우면 잠깐 벤치에 앉아 쉰다. 한 시간 반 정도 지나자 일주한다. 여자친구 집인 이태원으로 향한다. 부모님 두 분 다 외출하셨단다.



2시 30분 이태원. 여자친구가 예쁘게 플레이팅 한 음식을 내온다. 맥주 한 잔씩 채우고 식사한다. 밥 먹고 예능 방송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알람이 울린다. 4시 30분 눈이 번쩍 뜨인다. 급하다 급해. 다급히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여자친구가 이태원역까지 바래다준다. 헤드폰으로 힙합 음악을 들으며 지하철로 이동한다.



5시 45분 가락시장. 주 6일, 저녁 6시부터 12시까지 SK 브로드밴드 기술팀 콜센터 상담 일을 한다. 알바라 가벼운 마음으로 왔다가 친척 장례식에 보내주지 않은 것을 기점으로 책임감 있게 다닌다. 직계 아니면 휴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연차가 쌓이는 것도 아니고, 무급으로 연차를 쓸 수도 없다. 상담 일을 하며 일본어 한자를 외운다. 일본 워킹홀리데이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일본어 실력을 늘려야 한다. 상급자들은 상담 업무 제대로 한다는 전제하에 공부를 눈 감아 주기로 했다. 콜이 들어오면 절차대로 처리하고 공부를 이어간다.



오전-



12시 업무 종료. 회식이 있다. 회식이지만 자비로 가야 한다(일정 부분 지원하고 나머지 자비 부담이었을 수 있다). 회사는 직원에게 책임감을 강조한다. 반면 회사로서 응당 해야 할 의무엔 소홀하다. 콜센터 옆에 있는 서래 갈매기로 향한다. 맥주 한 잔씩 하며 고기를 먹는다. 아뿔싸 막차 시간을 놓쳤다.



2시 30분. 택시는 할증이 붙는다. 집까지 택시 타면 만 원이 나온다. 주 6일 하루도 빠짐없이 일해서 버는 돈이 90이다. 수당으로 30 정도 붙으면 120 가량 받는다. 통신비 5만 원, 교통비 10만 원, 집세 10만 원(어머니와 반반), 일본어 학원비 10만 원, 적금 20만 원, 청약 2만 원이란 고정비가 나간다. 매달 60만 원으로 버텨야 한다. 여기서 식비 내고, 옷 사고 데이트해야 한다. 택시비로 만 원을 내는 건 너무 부담스럽다. 주변 PC방을 찾는다. 후불로 계산해서 들어간다. 게임 30분 하다 잠이 든다. 5시 전후에 일어나서 지하철로 향한다.



6시 30분 집에 도착한다. 현관문을 열자 쿱쿱한 곰팡이 냄새가 난다. 7시에 야쿠르트 배달 가는 어머니가 출근 준비하신다. "아이구 우리 아들 왔어?" 어머니와 포옹한 번 하고 화장실로 가서 세안과 양치를 한다. 하루 12시간 일하는 어머니는 틈틈이 아들 먹을 밑반찬을 만들고 일어나서 먹을 음식을 준비한다. "아들 엄마 갈게. 닭볶음탕 해놨으니까 일어나서 먹어." 어머니와 인사하고 침대로 들어온다.



8시 30분 기상. 하루가 시작된다.


--



곰팡이와의 전쟁이었다. 어머니는 락스와 물을 희석해 모든 벽을 닦았다. 벽지를 들어낼 순 없다. 벽지 비용이 우리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벽지 위로 올라온 심각한 곰팡이만 제거했다. 습기가 문제의 원인이다. 현관문과 창문을 항시 열어놨다. 창문과 문쪽으로 향해 선풍기를 돌렸다. 안방, 내방, 옷방에서 선풍기 세 대가 돌아갔다. 인체에 곰팡이를 배양했다. 잔기침도 많았고 여드름도 심각했다. 가까이서 거울 보기가 두려웠다.



몇몇 서비스는 내가 누릴 수 없는 서비스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분명히 나눴다. 내 소득 수준에서 할 수 없는 일이 상당히 많았다. 평생 그렇게 살아왔다. 그것을 문제나 슬픔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말한 택시, 2만 원 이상의 식사, 맥주와 소주가 아닌 술, 해외여행, 입장료 2만 원 이상의 전시회 등은 내가 구매할 수 없는 서비스와 재화였다. 있다 없게 되면 문제인데 없는 상태가 지속되면 문제가 아니다. 택시비 1만 원은 내가 낼 수 없는 돈이었고, PC방 이용료 3500원은 내가 낼 수 있는 돈이었다. 6500원은 4시간의 피로와 노동을 참으면서 아껴야 하는 돈이었다.



주제를 알았기에 힘들지 않았다. 내 버짓에 맞는 가장 좋은 선택을 했다. 곰팡이 핀 집에 사는 것은 당연했다. 나와 어머니에게 돈이 없으니 당연히 그곳에 살아야 했다. 10만 원 더 써서 30만 원짜리 2,3층 집으로 갔다면 곰팡이와 거리두기가 가능했을 터다. 다만 1만 원도 이렇게 무서운데 어떻게 매달 그 10배를 추가로 낼 수 있을까? 곰팡이도 참을 수 있고, 샤워 호스와 욕조 없는 집은 참을 수 있다. 10만 원 더 내는 것은 참을 수 없다. 곰팡이랑 같이 사는 대신 10만 원어치 밥 먹고 옷 사고 놀 수 있다. 곰팡이에 불만 갖는 대신 그렇게 아낀 돈으로 사용하는 재화에 감사했다.



120만 원은 2014년에도 적은 돈이었다. 사회인 타이틀을 단 사람이 갖기엔 너무나 보잘것없는 돈이다. 반면 내가 그 이상의 돈을 벌 수단도 없었다. 기술 없지, 학벌 없지. 최저시급 맞춰주는 곳에 갈 수밖에. 콜센터는 시급으로 계산하면 9천 원 정도였고, 일하면서 공부할 수도 있고, 더울 때 시원하고 추울 때 따뜻한 환경을 제공했다. 내가 갈 수 있는 최선의 직장이었다. 이전에 했던 유니클로나 준코 알바 시절을 떠올렸다. 그보다 편하고 돈 많이 주는 직장에 만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수준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직장이었다. 매번 감사했다.



콜센터가 있는 건물엔 한솔 섬유가 있었다. 나는 옷을 좋아했다. 한솔 섬유 직원은 나의 이상향이었다. 박봉에 업무 강도가 높다 해도 상관없었다. 그들이 진품이고 나는 가품이다. 내가 테일러드 재킷을 입으면 남의 옷 입은 사람이다. 콜센터에 적합한 옷은 재킷이 아니라 티셔츠다. 그들이 입은 재킷은 매일매일의 전투복이다. 격식 있는 옷을 입을 명분이 있다. 나는 명분이 필요했으나 누구도 명분을 주지 않았다. 그들과 나 사이에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대학교에 진학할 돈도, 진학을 준비할 시간도 없다. 엘리베이터에 한솔섬유 직원들이 탄다. 한껏 꾸민 내 옷이 부끄러워진다. 내 -척이 들켜버린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또다시 만족스러운 직장으로 돌아온다.



당시 나는 행복했다. 매일 박탈감을 주는 존재와 마주했으나 해봤자 1분이다. 박탈감 가질 자격도 없다고 나를 납득시켰다. 내 행복을 위해 확실한 계급을 만들었다. 4년제 대학 졸업한 진짜 직장인 계급, 그 아래 대학교 졸업증 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유사 직장인. 나는 유사 직장인이었다. 24살로서 현실을 바꾸기 너무 늦은 나이었다. 내가 절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규정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프랑스 계급 사회에서 계급을 철폐하자 평생을 노예로 살아왔던 이들 사이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자신의 주인들과 같은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는 당위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들의 정신을 고문했다. 나는 고문 받지 않기 위해 더 확실한 계급 나누기를 실행했고 기꺼이 아랫계급에 속했다.



요컨대 나의 행복의 큰 출처는 자기기만이다. 자신은 할 수 없다고, 계급은 분명하다고 납득시켰다. 납득하지 않으면 뭐라도 해야 하는데, 그 무엇을 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든다. 그때 실패하면 올 좌절은 감당하기 쉽지 않다. 자기기만 시절의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었다. 나는 목표에 맞게 살았던 셈이다. 그 자기기만 덕에 행복했으니. 반면 멋이란 목표로 볼 때 그 삶은 목표와 맞지 않다.



얼마 전 너사와와 이야기 나눴다. 그때 나는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유튜버가 모교인 연세대에 간 시점이다. 뒤에서 옷 갈아입던 너사와가 자신도 멜번대 아닌 한국 소재 대학에 갔어도 재밌었을 것 같다고 했다. 상대적으로 외국 학교 출신은 국내 대학 입학이 쉽기에 서울대도 갈 수 있을 거라 했다. 나는 그녀가 스무 살 때 서울대에 입학했다면 우리는 만날 수 없었을 거라 말했다. 내 안에는 확실한 계급이 존재했고, 서울대 재학생 + 교포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상위 계급에 속했다. 월세 20만 원짜리 달동네 소재 집에 사는 미래 안 보이는 고졸 20대 중반인 나는 최하층계급이다. 아니 계급 외의 불가촉천민, 달리트다. 반면 서울대 재학 중인, 능숙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아마도 부자인 게 분명한 교포는 브라만이다. 계급 4단계 뛰어올라 만남이 이뤄질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삶의 목적이 멋으로 변했다. 환경의 도움이다. 내 혼자 힘으로 도저히 바꿀 수 없다. 그 굴레 속에 있었다면 나는 여전히 콜센터 혹은 그 비슷한 직장에서 불합리한 처사에 '그럴 수 있지'라 말하며 행복한 바보로 살았을 것이다. 내 능력이 그 환경을 깨부술 정도로 대단치 않다. 도피해서 멜번까지 떠밀려왔다. 손에 돈이 쥐어진다. 여유가 생긴다. 책을 읽고 문화생활을 즐기고 글을 쓰게 된다. 내 안 계급은 내가 만든 환상임을 깨닫는다. 당시의 행복을 돌아보니 쓰다. 끝맛이 쓴 행복이 이런 거군.



새로 마주한 사회는 4년제 대학 가지 않아도 어엿한 사회인으로 있을 자격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 사회에 오래 있던 사람들도 계급에서 벗어나 있다. 여가 시간에 읽은 투자 서적으로 주식하는 법을 배운다. 돈이 늘어난다. 택시, 2만 원 이상의 식사, 맥주와 소주가 아닌 술, 해외여행, 입장료 2만 원 이상의 전시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영역으로 들어온다. 30만 원짜리 식사를 하고, 10만 원 요금의 택시를 타고, 해외여행을 가서 호텔에 머물 수도 있다. 모르는 경험 앞에 주눅 들지 않는다.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다. 누구를 만나도 웬만한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모르는 것을 알려달라 말할 수 있다.



운이 좋다. 덕분에 멋있는 삶을 추구할 수 있다. 곰팡이 있는 집을 거부할 수 있고, 불합리한 처우에 반기를 들 수 있다. 더 이상 뒤에 낭떠러지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주머니가 차고 머리가 차니 당당하다. 근데 주머니를 채운 것도 머리를 채운 것도 환경이란 것을 안다.



결과적으로, 2012년도를 사는 내게 행복은 유일한 지향이었고, 그래야만 했다. 세상을 바꿔야 하는 목적은 애초에 실행 불가능이다. 엄청난 열정이 필요한데, 그런 열정이 없었다. 분명한 한계를 인식했다. 목표에서 어긋났을 때 맛볼 좌절을 미리 거부했다. 반면 행복한 삶은 마음가짐의 문제다. 아Q처럼 말이다. 환경을 바꿀 필요도 없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정신승리로 행복을 쟁취할 수 있다. 나를 밑으로 끌어내리면 되는 일이다. 내 주제에서, 내 신분에서 누릴 수 있는 최상의 것임을 상기시킨다. 행복이 찾아온다. 합목적적 삶을 살았다. 2012년 어느 날을 돌아보니 건강하지 않은 행복이 있을 수 있음을 느낀다. 달리 방법이 없다는 사실도 안다. 그래서 애잔하다. 그래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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