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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Mar 19. 2023

결혼 이야기

배우자 출장 외 1편

1. 나 홀로 집에



너사와가 출장 간다. 오일 일정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내일 새벽 공항으로 떠난다. 오일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이미 자유로운 존재에 자유시간이란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독신 생활이 적합하다. 주말이라면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하우스 파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주중에 떠나 주중에 돌아온다. 너사와의 부재가 특별한 이벤트가 될 수 없다.




나 홀로 집에의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깨끗하고 청결한 환경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지저분한 것을 싫어한다. 어지럽혀진 모습을 보면 스트레스 받는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정리 정돈 잘 된, 깨끗한 집에서 마음의 안정이 찾아온다. 함께 살면 이 마음의 안정을 얻기 어렵다. 온 집안이 배우자의 옷으로 가득하다. 입은 옷을 원래대로 돌려놓지 않는다. 그날 입은 옷을 다른 옷이 선점한 장소에 쌓는다. 소파, 서재 사이드 테이블, 침대 옆, 서재 바닥에 옷의 산이 생긴다. 치우라고 말하지 않는다. 지난 8년 몇 번이나 말했다. 듣지 않는다. 내 기분도 상하고, 상대 기분도 상한다. 말을 하나 안 하나 집안 꼴은 그대로다. 그렇다면 무시당할 때 생기는 스트레스라도 피하는 게 이득이다. 청결한 집은 손에 닿지 않는다




너사와가 여행에 나서기 전에 정리를 한다. 쌓인 옷이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로봇청소기가 매일매일 자기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바닥에 장애물이 많으면 로봇청소기는 경로를 잃는다. 혹은 바큠 해서는 안 되는 물건을 빨아들여 멈춘다. 한 번 로봇청소기가 움직일 동선이 확보되면 매일 루틴 청소가 가능하다. 추가 노동 없이 집은 계속 깨끗해진다. 워런 버핏이 스노우볼 효과라 부른 투자와 같다. 올바른 원칙을 갖고 올바른 곳에 투자하면 돈은 돈을 부른다. 눈덩이가 굴러가며 부피를 키우듯 말이다. 집에 물건이 올바른 장소에 있고, 로봇청소기가 동선을 확보한다. 추가 노동 없이 집은 점점 깨끗해진다. 청결함의 스노우볼이다.



그 밖의 장점으론 숙면과 늦은 귀가가 가능하다는 것이 있다. 다만 평일에 늦게 귀가할 일이 없다. 소음에 예민하지 않다. 와이프가 소음 낸다 해서 수면에 큰 지장을 받지 않는다. 결국 청결한 집안을 제외하곤 큰 메리트가 없다. 다만 청결함이라는 가치는 너무 중요하다. 정돈된 집이 주는 이점이 많다. 집중도 잘 되고, 생산적인 일도 많이 하고, 건강도 챙기고, 자존감도 올라간다. 정서 건강도 챙긴다.




단점은 한 단어로 종합하면 외로움이다. 뭔가를 같이 하지 않아도 옆에 누가 있으면 좋다. 정서적으로 안정된다. 청결한 집이 주는 안정감과 다른 장르다. 간단한 일상 얘기, 온라인 가십 얘기, 그날 읽은 책 얘기 등을 나눌 상대가 있다. 대화를 나눈다. 내가 이곳에 있음을 느낀다. 아 내가 있다. 상대가 있다. 대화가 있다. 감각을 통해 나를 인식한다. 내 입은 언어를 뱉는다. 내 귀는 언어를 듣는다. 내 눈을 표정을 본다. 대상이 없으면 필요도 없다. 쓸모가 필요를 부르고, 사용이 존재를 가리킨다. 상대로 인해 나를 본다.




오일은 짧다. 오일 동안 엄청 외로울 것 같지 않다. 외로움은 누적이다. 혼자인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커진다. 기하급수다. 오일의 외로움은 쌓여 봤자 크지 않다. 기하급수는 특이점과 관련 있다. 우리 눈에 의식이 된 순간부터 무한정 커진다. 오일의 외로움은 보이지 않는다. 저울에 장단점을 올린다. 짧은 시간이라면 장점이 무겁다. 오일의 청결한 일상을 그린다.




2. 결혼은



일요일에 일하러 나왔다. 주말의 메리트가 없어지는 요즘이다. 할 일 빠르게 끝내고 귀가해서 휴식할 계획이었다. 계획은 틀어지려고 존재한다. 생각보다 가게가 바쁘다. 할 일이 많아진다. 이미 사무실에 먼저 온 손님이 있다.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 오랜 시간 투자한다. 새로운 일이 발생한다. 수행한다. 5시가 된다. 저녁8시 다시 부업의 터전으로 나와야 한다. 꼭 그 시간에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귀가해서 2시간 쉬고 출근하고 다시 귀가할 생각 하니 진이 빠진다. 귀가 계획을 철회한다. 친구를 불러 스타벅스로 향한다.




이차저차 시간을 보낸다. 친구와 사는 얘기한다. 그러다 글이 쓰고 싶다. 상대에게 양해를 구한다. 내게 20분을 주겠니? 글이 쓰고 싶다. 나 홀로 시간 보내도 될까? 무례하고 제멋대로고 열받는 질문이다. 기껏 불러서 왔더니 혼자 글을 쓰겠다고?. 나는 친구로서 빵점이다. 친구(구체적으론 가족같은 동생)에게 인스타그램 보면서 20분 보내라 말한다. 아무때나 약속 없이 만나 가고 싶을 때 떠나는 관계다. 우리의 관계를 고려해 무례를 말한다. 친구가 수락한다. 나 홀로 집에 머무는 오 일에 대해 글을 쓴다.




20분이 지난다. 식당으로 떠난다. 내가 사기로 한다. 식당 후보 두 개를 줬고 친구가 고른다. 한 번도 안 가봤던 곳에 가고 싶다. 최근에 생긴 중국식 국수집 두 곳이 나란히 있다. 한 곳은 얼얼한 맛을 자랑하는 사천 누들, 한 곳은 담백한 맛을 자랑하는 랑저우 누들. 따뜻하게 한 주를 매듭짓기로 한다. 랑저우 누들을 먹으며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트와이스에서 누구랑 결혼할 거야?"



속 깊은 질문을 던진다. 맞춤 질문이다. 친구는 5월 트와이스 콘서트에 간다. 친구는 매일 생각한 문제라는 듯 곧바로 대답한다. "나연" 나는 이해한다는 듯한 말투로 말한다. "그렇지"




질문은 부메랑이다. 휘리리리 돌아서 내게로 돌아온다. 나연의 밝고 건강한 에너지가 상상으로 이끈다. 퇴근 후에 과일을 먹으며 하루를 되감는다. 농담을 건넨다. 시원하게 웃는 나연. 웃는 나연을 바라보며 나도  미소 짓는다. 과도를 집어 사과를 다시 깎는다. 토끼 모양으로 깎아 나연 앞에 건넨다. 이거 너야. 시원하게 웃는 나연. 나연은 괜찮은 결혼 상대다.



"사나"



사나가 일등이다. 트와이스 멤버 아홉의 면면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나연과의 퇴근 후 시간을 그리다 사나란 멤버가 있음을 떠올린다. 사나를 이길 수 없다. 사나 없이 잘 살겠지만 함께 살면 십중팔구 즐겁다. 나연과 작별한다. 사나가 일등이다.




트와이스 팬이 아니다. 트와이스와 결혼 생활을 꿈꾸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나가 일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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