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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Oct 09. 2023

276만 원

인간은 부조리의 산물이다. 같은 상황에도 누구는 기쁘고 누구는 불행하다. 인간의 DNA 탓이다. 유전자는 생존에 최적화된 명령을 내린다. 문제는 21세기에 그 명령이 유효하지 않다는 점이다. 21세기는 정보화시대다. 맹수의 습격을 당하거나, 독버섯 먹고 죽지 않는다. 부족장의 피의 숙청 또한 걱정하지 않는다. 인류 문화는 빠르게 발전하는데, 인간의 DNA는 속도를 맞출 수 없다. 수백만 년 인간의 조상이 등장했고, 20만 년 전(최근 발표 기준으로 호모 사피엔스는 7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했다. 최초 문명이 등장한 것이 7천 년 즈음이니 인류사의 상당히 최근이다. 생존 바로미터는 현대의 삶과 어긋난다.




이렇게 부조리로 가득한 인간임을 실감한다. 실감하게 만드는 것이 돈이다. 돈은 개량화할 수 있다. 사회에서 숫자는 의미를 지닌다. 소득은 사회의 빈부를 나눈다. 시대별 돈의 가치는 물가 상승률로 적절하게 반영이 가능하다. 어릴 때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돈은 더 이상 나를 행복하게 하지 못 한다. 그 돈은 더 이상 내게 충분치 않다.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도 마찬가지다. DNA는 만족하지 말라 명한다. 더 많이 더 많이를 요구한다.




나는 여유롭다.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여유롭다. 모든 면에서 여유롭다. 살 만하다. 돈은 세속의 기준이다. 세속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돈을 많이 번다. 많은 돈은 변화를 불러온다.




몇 해 전과 비교해 자산의 총량이 늘었다. 더 크게 는 것은 고정 수익이다. 매달 받는 돈의 액수가 커졌다. 간혹가다 지인이 블로그를 보는 경우가 있다. 블로그의 존재를 아는 사람도 몇 없고, 그들도 거의 방문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을 말할 순 없다. 내가 어떻게 돈을 버는지, 어떤 사업체를 가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회사 관계자와 가족을 제외하곤 다섯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 얼마를 버는지는 동업자를 제외하곤 모른다. 음지에서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다만 돈 많이 버는 거 자랑해서 좋은 게 없다. 그래서 '구태여 말하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물어도 말하지 않는' 상태다.




나는 평생 소박한 삶을 살았다. 부모님도 소박했고, 그 소박함을 보고 자란 나도 소박했다. 적당히 만족할 줄 알았고, 내 행복에 큰돈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십대 초반엔 한 달에 200만 원만 있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 믿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유니클로에서 풀타임으로 일했다. 대략 130만 원 정도를 벌었다. 그 돈으로 집세와 공과금을 냈다. 거기서 상당수를 저축했고, 주택 청약을 넣었다. 남은 돈으로 데이트하고, 여행을 가고, 유니클로에서 직원 할인을 받아 옷을 샀다. 130만 원으로 모든 생활을 하고 저축을 할 정도였으니, 70만 원의 추가 소득은 나를 약간의 사치와 더 많은 저축을 가능케 하리라. 당시의 200만 원은 지금 물가로 276만 원이다. 평균 물가 상승률 2.21%를 15년 적용하면 물가 상승률은 38%다. 그러니까 지금 돈으로 276만 원, 호주 달러로 3200불만 있으면 행복했을 거라 믿었다. 소박했다.




과거를 회상하는 어투로 말한다. 소박했다. 말인즉슨 276만 원은 더 이상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돈이 아니다. 한참 부족하다. 지금 기준의 소박은 그때와 다르다. 한 달에 300만 원을 주택 대출의 원금과 이자로 낸다. 여기에 추가의 고정비가 붙는다. 기름값, 대중교통비, 통신비, 관리비, 주민세, 인터넷 등등.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돈만으로도 276만 원이 넘는다. 여기서 옷을 사고, 식료품을 사고, 외식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문화생활을 하기 위해 돈이 추가로 든다. 해외여행이나 특별히 큰 소비하지 않고, 평균적으로 쓰는 한 달 경비가 5000불이다. 한국 돈으론 430만 원. 호주 평균 급여인 연봉 8만 불의 세후 월급이 5100불이다. 그러니까 평균적인 호주 시민이 쓰는 돈을 쓰는 셈이다. 평균적인 소비이므로 '소박'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있다. 보통 수준의 소비가 행복의 척도가 됐다.





지난 한 달 평균을 넘는 소비를 했다. 해외여행을 갔고, 특별히 큰 소비를 했다. 발리에서 호화로운 시간을 보냈고, 너사와에게 게이밍 컴퓨터를 사줬고, 처가 식구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사위 노릇 하겠다고 몇 번인가 식비를 지불했고, 처남에게 구두 한 켤레를 선물했다. 한 달 동안 개인적으로 쓴 돈이 대략 7천 불이다. 한화로 600만 원가량이다. 소박이라는 말을 할 수 없다.




평균적 소득을 거뒀다면 감당할 수 없는 소비다. 내 노동 소득은 5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때 버는 돈을 비슷하게 번다. 5년 사이에 물가가 많이 올랐고, 소비 또한 늘었다. 돈은 적게 벌고, 많이 쓴다는 의미다. 너사와의 노동 소득이 내 소득을 추월한지도 꽤 지났다. 노동 외 소득이 없다면 나는 적자 경영 중일 것이다. 노동 외 소득을 따로 빼놓는다. 생활비는 되도록 노동 소득으로 사용한다는 원칙이 있다. 얼마 전까지 '되도록'이란 부사는 없었다. 이젠 노동 소득이 내 지출을 감당할 수 없다. 매달 은행 계좌는 마이너스다. 어쩔 수 없이 가끔 노동 외 소득을 생활비 계좌에 이체한다. 그래도 원칙은 이어가고 싶기에 '되도록'이란 부사를 넣었다. 부사 없이는 원칙을 어긴 것이 되고 한 번 어기면 그것은 더 이상 원칙이 아니다. 원칙을 놓고 싶지 않아 '되도록'이란 부사를 고안했다.




어제 다르고 내일 다른 게 사람이라더니 내가 꼭 그렇다. 어제의 나는 100으로 충분했고, 오늘의 나는 100이 부족하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 중 하나는 '원금 손실' '마이너스 경영'이다. 하나의 유닛을 달로 정하고, 그달에 저축액 유무로 계산한다. 매달 조금씩은 자산이 쌓여야 마음이 놓인다. 노동 외 수익이 없었다면 스트레스로 잠 못 이뤘을 것이다. 억지로 노동 시간을 늘렸을 것이고, 주말마다 이사청소를 나섰을 것이다. 소비가 무서워서 사람들 만날 시간을 줄이고, 처가 식구들 앞에서 생색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앞선 글에서도 몇 번 언급했다. 지금 얻는 소득은 지속가능성이 낮다. 조만간 노동 외 소득은 절반으로 줄어들 예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출을 잘 감시해야 한다. 소비를 늘리긴 쉬운데 줄이긴 어렵다. 이달에 벌어들인 돈이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른다. 한 달은 4.35주다. 나는 주마다 정산을 받는다. 주급에 4.35를 곱한다. 여기에 노동 소득을 더한다. 아찔하게 벌었다. 내 평생 이렇게 큰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다. '이렇게 많이 벌었는데 이 정도는 써도 괜찮잖아'라며 통 큰 내가 자꾸 나를 꼬드긴다. 그 꼬임에 넘어가 소비의 하방을 들어 올린다.




자꾸 소비가 커지는 자신을 보면 걱정스럽다. 이전의 소박함을 어느새 '궁상'이라는 말로 고쳐 쓴다. 아끼더라도 궁상떨진 말아야지. 여러 목적으로 궁상을 지양한다. 그렇게 새롭게 정의한 소비 기준이 평균이다. 한국으로 보면 과한 소비이지만, 동년배 친구들의 소비를 기준으로 보면 중간치다. 자녀가 있거나, 소득이 낮아서 절약하는 친구들보단 많이 쓰고, 해외여행 즐기고 통 크게 자신에게 선물하는 친구들보단 적게 쓴다. 고정 지출을 제외한 순수 용돈이 대략 2천 불이다. 적은 친구들이 천 불 정도 쓰고, 많은 친구들은 특별히 제한이 없다. 새로운 사업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용돈은 천 불이었다. 한 해 동안 두 배로 늘었다. 걱정이 안 될 수 없다.




모든 고정비를 합친 평균 지출이 5천 불이다. 작년엔 4천 불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25% 상승한 셈이다. 그렇지만 고정비 3천 불을 제외하면 이야기가 다르다. 용돈만 두 배가 늘었다. 천 불의 추가 지출은 꽤나 크게 다가온다. 실제로도 큰돈이다. 하루 용돈으로 33불 쓰다가 66불 쓰게 된 것이다. 커피 한 잔 마시고 가벼운 점심(20불 전후) 먹고, 왕복 대중교통비 지불하면 얼추 33불이다. 이제는 여기에 거창한 저녁까지 먹을 수 있다. 하루 외출하지 않으면 다음날 친구에게 밥과 술을 사줄 수 있다. 용돈을 두 배로 늘리니 골든벨 울리는 빈도가 늘었다. 이거 내가 살게-를 여기저기서 외친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




곳간에서 여기저기 인심을 퍼주고 있다. 마침 '기버'란 개념이 꽂혔다. 소중한 사람들, 배울 점이 있는 사람들에게 아끼지 않고 선물을 주고 밥을 산다. 인간의 DNA가 대단한 것은 균형감이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경고를 울린다. 베풀 수 있어 감사한 한편, 이렇게 급하게 소비 늘리면 패가망신한다고 조언한다. 패가망신의 조언을 잠자코 듣고 있노라면 행복의 기준값이 너무 높아졌음을 깨닫는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던 돈이 모자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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