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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Nov 17. 2016

불면증


 스무 번. 간밤에 스무 번 정도 깼다. 어디서도 잘 자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한국에 오면서부터 생긴 불면증 탓이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피로하다. 매일 군대 철야를 연상시키는 밤을 보낸다. 하루 세, 네 번씩 코피를 쏟는다. 건조한 병실 공기와 끊어지는 잠의 협업으로 피가 멎지 않는다. 병실은 오후 7시 30분쯤 소등된다. 긴 밤을 대비하기 위해 일찍 자리에 눕는다. 몇 분 후에 어김없이 들려오는 소리. '아들-' 


 종종 어머니는 내가 인생의 전부이고 의미라고 말씀하셨다. 진지한 눈빛과 낮은 음성이 너스레가 아님을 깨닫게 했다. 모든 상황에서 1번은 자식이었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도 아들이 먼저였다. 클리셰가 된 노래 가사 속 자장면을 싫어할 타입의 어머니였다. 좋은 것은 무조건 내 차지였다. 친구를 만나 외식을 하면 무언갈 싸오셨다. 바깥의 맛을 아들한테 보여주고 싶어 하셨다. 포장 용기를 풀 때마다 어머니가 어떤 음식점에서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성질이 불같은 분이셨다. 기력이 넘쳤던 3,40 대 시절, 누구도 그녀를 막을 수 없었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끼면 부당함에 대해 소리쳤다. 동네 수박 장수, 치과 의사, 버스 기사, 화투 치던 아주머니 등. 그녀의 단호하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어머니는 무너질 수 없는 철옹성이었다. 아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즉시 소매를 걷었다.


 환갑을 목전에 둔 그녀는 뇌종양 말기 환자이자 하반신 마비의 척추암 환자다. 자식은 한 명 있는데, 외국에 있다는 핑계로 아픈 본인을 잘 챙겨주지 못한다. 일 이주 예정으로 짧게 얼굴을 비추고 가는 불효자이다. 최근 한 달, 거듭된 수술로 사고하는 능력이 떨어졌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큰 짐이 된 것 같다. 그 좋아하던 모바일 고스톱마저 하지 않는다. 모든 감각은 입으로 향한다. 아프면 아프다. 배고프면 배고프다. 귀찮으면 귀찮다. 그녀의 말엔 직접적인 표현만 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괜찮다. 나 때문에 구태여 한국에 올 필요 없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아들이 써야 할 돈, 한국에 들어오면서 안게 될 문제들을 걱정했다. 자식에게 방해가 되면 안 된다. 자식의 행복이 우선이다.라는 신념에 따라 행동했다. 떨어진 사고 능력으로 인해 그녀의 신념은 더 이상 기능을 못 하게 됐다. 


 아들을 찾는 소리에 눈이 떠진다. 간병인 침대에서 일어나 어머니의 상태를 살핀다. 무슨 일이냐 물으면 그녀는 원하는 것을 대답한다. 몇 가지 패턴의 반복이다. 첫 번째, 자세가 불편하니 자세를 바꿔달라. 하반신 마비 탓에 누구 도움 없이 눕는 자세를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목이 마르다. 빨대가 달린 물통은 그녀의 손이 닿는 범위에 있지 않다. 자꾸 침대에 쏟는 탓이다. 건조한 병실에서 잠 깬 그녀는 목마르다. 세 번째, 아프다. 어디 어디가 아파서 잠을 못 자겠다. 그러나 간호사를 불러라, 혹은 주물러라 혹은 파스를 붙여라. 그녀의 지시대로 고통을 줄인다. 마지막 패턴, 약 오른다.  내가 이렇게 잠을 못 자는데, 너는 왜 그렇게 잠을 잘 자냐는 것이다. 명령을 수행하고 바로 잠을 자는 자식의 모습이 얄밉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드릴까 물으면 성에 찰 때까지 말 상대가 돼라 말한다. 


 잠을 깰 때마다 피곤함이 더해진다. 어머니의 요청에 바로 응할 수 있게 자는 것을 포기했다. 깨어 있을 요량으로 핸드폰을 만지고 있으면, 어머니는 화를 낸다. 빨리 자라고. 저녁때 안 자고 뭐 하냐며. 일어나 있기 위해라고 말하면, 핸드폰 박살내기 전에 자라며 협박을 한다. 왕년의 성격을 봐서 반가운 한편, 힘겨운 장단 맞추기에 진이 빠진다. 그렇게 잠이 들고 20 분이 지나지 않아 들려오는 소리 '아들-'


 아이가 된 어머니를 보며, 그녀를 무력하게 만든 세월을 느낀다. 구청, 병원, 주민센터, 부동산, 보험사 어딜 가나 내 소개는 어머니의 보호자다. 보호자라는 단어가 역할이 도치되었음을 말해준다. 거기서 오는 책임감이 무겁다. 시한부 보호자인 자신의 처지에 한숨 돌린다. 며칠 뒤 한국을 떠나며 보호자 역할을 삼촌에게 넘길 것이다. 불순한 생각이다. 불효를 피하기 위해 온 한국에서 더한 불효자가 된다.


 2주 동안의 불면증에 몸도 마음도 피곤하다. 있는 동안엔 할 만큼 하자란 마음가짐으로 어머니를 보살핀다. 다행인 점은 내가 응석을 받아주고, 각종 서류 업무를 무리 없이 처리할 정도로 머리가 컸다는 것이다. 호주 귀국까지 남은 시간은 닷세, 처리할 일이 많이 남았다. 외적인 이유로 생긴 수면장애와 싸우며 그나마의 도리를 할 것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불만은 없다. 보호자의 보호자가 된 지금이 서글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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