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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Jan 17. 2017

 난 아닌데?

 글쓰기는 고통이며, 자신의 모든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글 쓰는 작업은 숭고하며, 어떨 땐 전부를 쏟아부어 치부를 보이는 듯 부끄럽다 한다. 손가락에 자신의 정수를 싣는 작가들이 많다. 삶을 깎아 만들어낸 영혼의 조각상, 뭐 그런 느낌. 거기까진 좋다. 실재가 어떻든 말이다. 다만, 이 이상 사족을 붙이면 심사가 뒤틀린다.


 '자영혼의 깊숙한 곳을 들여다 보지 못 한 사람은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없다.'

'고통을 수반하지 않은 글쓰기는 껍데기다.'

'글을 쓸 때마다 엄청난 공포와 고독을 마약처럼 복용한다. 그러나 공포는 황홀하다. 이 황홀함을 모르는 이들은 자격미달이다.'



 실체 없는 고통을 들먹이며, 진정성의 판단 기준으로 포장하는 인물들. born to write 분위기를 풍기며 글쓰기에 무게 더한다.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 끝에 나왔다는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작은 부분까지 심사숙고하는 자세에 박수를 보내지만, 타인의 스타일에 손가락질할 자격은 없다. 소중활동에 가치부 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자신의 프레임을 상대에게 씌워 고통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재밌어서 쓴다. 자뻑하기 위해 쓴다. 쓰고 나면 남는 것이 많다. 돈 나오는 사업에 써먹을 지식도 있고, 몇몇은 대화 소재로 쓸 수 있다. 남에게 호인상을 주기도 한다. 저 친구는 매일 무언가를 쓰더라고. 오 그래? 에세이나 비평 쓰는 건 어려워서 아무나 못 하는 작업 아닌가! 뭔가 대단한 사람이군. 막상 까 보면 아무것도 없지만, 까보는 이가 없어 약간의 비범함을 가진 인물로 평가받는다. 재밌고, 경제적이고, 이미지 메이킹에도 좋은 이 활동을 안 할 이유가 없다.


 어떻게 하면 쉽게, 빠르게 쓸까 고민한다. 그래서 나온 게 '매일 20분' 게시판. 어떤 주제가 됐건 20분 안에 글 하나를 쓰자는 목적으로 만들었다. 그 후에 퇴고를 하고 싶으면 해도 되고, 귀찮으면 안 한다. 퀄리티 좋은 하나의 글 보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글 여러 개가 좋다. 통장에 쌓이는 돈을 보는 것 같다. 늘어나는 잔액을 확인하듯, 생각의 파편들이 모여 만들어진 덩어리를 확인한다. 게시판 페이지를 넘기니 재밌게 보낸 날들이 떠오른다.


 도 가끔 어려움을 느다. 아무래도 글이 안 나오면, 안 쓰면 된다. 전업 작가도 아닌데, 투철한 사명감을 가질 필 없다. 습관적으로 써온 탓에 글쓰기는 에너지 소모가 적다. 물론 고독하지도 않다. 카페에서 글 쓰는 걸 즐긴다. 쓰는 도중에 사람 구하고, 들리는 친구들과 이야기다. 친구들과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타자를 친다. 재밌어서, 즐거워서 하는 작업에 고통이라는 단어가 낄 자린 없다. 자연스레 글쓰기의 고됨을 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감 장애자가 된다. 혼자 붕 떠 주파수를 못 맞춘다. 편하게 즐기는 취미일 순 없을까.


 물론 모두의 글쓰기 자세와 신념을 존중한다. 누군가는 키보드로 살을 깎는 고통을 느낄지 모른다. 감히 그들의 열정을 비웃을 수 없다. 단지 고통이라는 모호한 기준 위에서 남의 글을 내려다보는 오지랖꾼들의 태도가 거슬릴 뿐이다. 21세기 김치 랭보들이 글 쓰는 모든 이에게 힘들고 고독할 것을 요한다. 열탕에 안 들어가면 목욕탕을 간 게 아니라고 한다. 냉탕에서 수영하고, 지치면 평상에서 맥반석 계란 먹게 냅둬라. 감도 배도 각자 놓고 싶은 곳에 놓을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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