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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Jan 21. 2017

마지막 한국

 내일 아침 다시 연락 주겠다는 삼촌의 말에 알겠다고 답했다.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은 없다. 며칠 후엔 한국일 것이다. 지난 6개월 동안 4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이 이상 나빠질 수 없겠다 생각했으나, 방문마다 잘못된 판단임을 깨달았다. 이번엔 정말 마지막이다.


 한 시간 전쯤에 삼촌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의사 말로는 일반실로 돌아갈 예정은 없다고 한다. 어머니는 중환자실에서 나머지 인생을 보내게 됐다. 패혈증 증세가 나타나면서 심장이 멈출 것이고, 이로써 그녀의 고통의 여정이 끝난다. 심폐소생술로 고비를 넘길 순 있으나, 갈비뼈의 대부분이 부러지고 얼마 안 가 같은 증상이 나타난단다. 삼촌이 나를 대신해 심폐소생술 거부 서류에 사인을 했다.


 지난 12월 중순부터 올해 1월 중순까지 한국에 있었다. 멜버른에 돌아온 지 보름이 지나지 않아 한국을 가게 됐다. 추위는 여전할 것이다. 실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없을 탓에 신경 쓰이지 않는다. 어머니 얼굴을 보려면 비행기를 4번 타야 한다. 지난 반년간 보딩게이트를 16번 이용했다. 비행기가 질린다, 힘들다는 감각을 넘어 별 생각이 없다. 이륙 후에 맥주를 주문해 마시고 잠을 청한다. 밥이 나오면 잠깐 일어나 식사를 한다. 환승 공항에선 커피 한 잔을 마신다.


 마지막 한국 방문 땐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잠 잘 자고, 병원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식사 대접할 수 있으면 족했다. 어머니 옆에서 책 몇 권 읽다가 저녁이 되면 고시원으로 갔다. 일찍 나온 날은 코인 노래방에 들렸다. 노래 몇 곡 부르고 하루를 마감했다. 순대국밥이 더 이상 손뼉 칠 정도로 맛있지 않다.


 주변에서 네가 힘들겠다. 막막해서 어떻게 하니.라는 걱정의 말을 건넨다. 그러나 덤덤하다. 죽음을 일 년 할부로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일 년에 걸쳐 서서히 어머니의 죽음을 인정했다. 병원에서 지냈을 때도 한두 번 울컥했을 뿐, 그 안의 일상을 살았다.


 가끔 찾아오는 어머니 지인이나 친척들이 동정의 말을 건넬 때마다 거부감을 느꼈다. 2,3 주간 매일을 반복하면서, 어머니를 전과 비슷하게 대했다. 실없는 소리를 하거나, 상황을 제대로 인지 못 하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몸만 조금 불편할 뿐이지, 전과 크게 달라진 건 없음을 알리고 싶었다. 비극의 주인공은 매화 비참하다. 마지막까지 일일드라마이길 바랬다.


 최근 들어 입버릇처럼 말하는 게 있다. '한국 일이 정리되면 무엇 무엇을 할 것이다.' 사업을 키우거나, 배움에 집중하기 시작하는 기준점으로 사용한다. 한국 일은 어머니고, 정리된다는 말은 죽는다는 의미이다. 세 번째 방문에서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했다. 행선지를 생략한 채 빨리 가고 싶다는 말도 종종 입에 올리셨다. 말을 못 하게 되자, 눈물로 표현을 대신했다. 개선의 여지없이, 기계의 도움으로 생을 연명하는 게 행복할까란 의문이 들었다. 삶을 강요하는 게 폭력이라 느껴졌다.


 삼촌이 장례식장과 납골당을 알아봤다고 한다. 어떤 곳인지 곧 확인할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의 짐들을 다 처분할 예정이다. 통장, 세금, 보험 등도 정리하고 주민센터에 어머니가 가셨음을 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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