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동안 은행에 입금하지 않았다. 통장에는 돈이 들어오지 않았고, 대신 빠져나가기만 했다. 그 흐름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잠시 멍했다. 나의 소비가 어떤 속도로 이뤄지는지, 얼마나 무감하게 지갑을 열었는지 체감하게 된 시간이었다. 이 글은 긴축재정이 시작된 배경과, 그 재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몇 가지 조치를 정리한 것이다.
가장 먼저 지출 목록에 올려야 할 항목은 세금이다. 매해 그렇듯, 이번에도 연간 세금이 몰려올 시기다. 올해는 예년보다 규모가 크다. 아직 회계사와 만나 정확한 금액을 확정한 것은 아니지만, 대략의 추산만으로도 현기증이 난다. 의무이고, 예측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국세청에 롯지할 땐 늘 떨린다. 불평할 일은 아니나, 긴축재정의 출발점으로는 충분하다.
생활비도 변수다. 다음 달, 파트너가 두 달간 유럽 여행을 떠난다. 본인은 절약 여행이라 말하지만, 준비 과정과 목적지를 보면 결과는 다를 것이다. 최근 500불이 넘는 카메라 렌즈를 샀고, 옷과 여행 가방도 새로 마련했다. 나는 남편으로서 여행용 배낭을 하나 사줬고, 크로스백 하나를 더 사주기로 했다. 그녀가 없는 동안, 대출 상환 및 각종 비용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월 2,800불. 갑작스럽진 않지만, 무게감은 있다.
다음은 선물이다. 절친한 친구 부부가 일본 여행 중이다. 아내와도 가까운 사이이고, 내가 자주 집을 드나드는 것에 대해 너그럽게 이해해주는 사람이다. 이번에 그녀의 생일이 겹쳤고, 작은 보답의 의미로 안경을 하나 보내려 한다. 내가 쓰고 있는 브랜드의 제품이다. 나도 만족하며 쓰고 있고, 선물로도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별것 아닌 선택이지만, 가격은 높다. 또 다른 친구의 생일도 다가오고 있다. 받으면 덤과 감사를 보태 돌려주는 성격이라, 지출이 이어진다. 인간관계에 있어 신뢰의 균형은 중요하다. 선물은 그 일부다.
자동차 문제도 있다. 차량 외장 래핑 관련 건이다. 최근 보험사와 분쟁이 있었다. 중재 기구는 보험사 편을 들었다. 선택지는 두 개다. 색상 차이가 나는 부분 래핑만 받거나, 전액 자부담으로 다시 전체 래핑을 해야 한다. 전자의 경우 타협이고, 후자는 약 5천 불이 든다. 평소 같으면 후자를 택했을 것이다.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외관은 일종의 복장이고, 신뢰의 일환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판단이 사치처럼 느껴진다. 결국, 얼룩진 외장으로 다닌다. 보기 좋지는 않지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이처럼 예기치 않은 비용들은 줄곧 예산을 잠식하고, 결국 관계의 형식까지 바꿔놓는다. 이제 사람을 만나는 방식도 조금 달라져야 한다. 절약 가능한 만남의 조건을 생각했다. 첫째, 집에서 만난다. 둘째, 식사 후에 본다. 셋째, 만남의 시간을 미리 정한다. 커피는 괜찮고, 술은 되도록 피한다. 집들이나 생일 등 특별한 날이 아니라면, 허례는 줄이기로 했다. 수입이 없는 날에도 지출은 계속된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그 잊음은 반복될수록 대가가 커진다.
‘긴축’은 단지 소비를 줄인다는 뜻이 아니다. 구조를 재검토하고, 허용할 수 있는 한계선을 다시 긋는 일이다. 그 선 너머에 있는 건 욕망이고, 그 선 안에 있는 건 생존이다. 이상과 목표는 그 중간쯤에 있다.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일, 그것이 지금의 과제다. 긴축은 단순히 줄이는 일이 아니라, 구조가 얼마나 불합리했는지를 가시화하는 장치다.
월요일 아침이다. 계획을 세우는 데 집중하면 어느새 말이 현실 쪽으로 기운다. 생산성이란 말도 그렇다. 효율을 따지는 시간에 자연히 등장한다. 그 말이 자주 등장할수록, 문장의 온도는 점점 식는다. 현대 자본주의 틀 안에서, 생산성은 시스템 구성의 핵심 언어다. 개인도 예외는 아니다. 재정을 관리하고, 관계를 조율하고, 시간을 배분하는 일이 반복된다.
이동진이 손사래쳤다는 ‘인맥’이란 단어도 떠오른다. 관계를 수단으로 대할 때 사용되는 단어라 했지만, 요즘은 그 말이 더 정확하다는 생각도 든다. 어느 선물은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어떤 방문은 평판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친밀함에 비례해 지출이 늘고, 선택지가 좁아진다. 관계는 비용이고, 평판은 관리 항목이 된다.
결국 생산성은 숫자나 시간표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관계를, 판단을, 행동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의 문제다. 그 안에는 감정이 있다. 감정이 든 말은 복잡하다. 그래서 계획을 세울수록, 차가운 언어를 쓰게 된다. 긴축은 비용의 문제로 시작하지만, 언어의 온도까지 바꾼다. 지금 나는, 그 말의 온도를 측정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