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오랜만에 3000선을 돌파했다. 숫자 하나에 사람들의 감정이 요동친다. 어떤 이는 환호하고, 어떤 이는 분노한다. 나는 환호 쪽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증권계좌 잔액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 상승장을 맞이하기 위해 시장을 예측하거나 모험적인 투자를 감행한 것은 아니다. 단지 몇 달 전부터 조금씩 싸다고 판단한 종목들을 사 모았을 뿐이다. 나는 가치투자자다. 시기를 고르지 않는다. 가격만 고른다. 그 가격이 내 기준보다 현저히 낮으면, 매수한다. 시장의 타이밍은 늘 외부 변수에 좌우되기에 예측을 포기한 지 오래다.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작년 11월, 카카오와 네이버가 눈에 들어왔다. 플랫폼 독점력을 갖춘 기업치고는 주가가 저평가돼 있었다. 52주 신저가 알림이 떴다. 흥미로워 기업 정보를 확인했다. 카카오의 PBR은 1.4배 수준이었고, 현금 보유고도 몇 년 새 2조에서 6조 원으로 증가한 상태였다. 과거 과도한 기대감으로 주가가 고평가됐던 시기와는 달랐다. 이번엔 숫자가 먼저 움직였고, 시장은 나중에 반응했다.
카카오는 구매 당시 설정한 매도 타이밍을 달성했다. 플랫폼 독점 기업 프리미엄을 줘서 PBR 2.5를 기준으로 잡았다. 매도 주문이 체결되고, 110%의 수익이 났다. 버핏 선생님이었다면 현금으로 보유했겠지만, 소액을 관리하는 나는 다르게 움직였다. 서희건설이 눈에 걸렸다. 예전에 큰 손실을 보고 손절했던 종목이다. 작년까지 수익률 -40%였던 자산이다. 재무제표를 다시 들여다보니 아주 단단했다. 결국 카카오 매도 대금에 100만 원 정도를 보태 서희건설을 추가 매수했다. 보유 종목을 다시 늘린 셈이다. 물타기 덕에 현재 손실률은 -2% 수준으로 줄었다.
그날 카카오를 매도한 직후, 주가는 하락세로 접어들었고, 서희건설은 내 매수 이후 연속으로 상승했다. 운이 좋았다는 말 외에 붙일 수 있는 설명은 없다. 시장을 예측하지 않기 때문에, 이 정도의 일치에는 감사만 한다.
수익률도, 계좌 잔고도 이전보다 커졌지만, 진짜 만족은 거기 있지 않았다. 자산이 늘어났다는 사실보다, 그 자산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감각이 더 실질적이었다. 실제로 나는 이 계좌에서 매달 부모님 생활비를 송금하고, 한국에서 필요한 지출도 처리한다. 쓰는 돈이 늘었음에도 계좌의 크기가 커져 있다는 점이 내게 가장 현실적인 위안이 됐다.
주식투자의 가장 큰 재미는 단순한 숫자 증식이 아니다. 내 경우엔 타는 장작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처럼, 계좌의 숫자가 움직이는 것을 관찰하는 데서 묘한 몰입감을 느낀다. 이 흥미로운 놀이는 한두 푼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자산의 크기가 클수록 더 재미있어진다. 그래서 시장이 흔들릴수록 ‘더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이번 상승장이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몇몇 친구들이 과거 내 조언을 듣고 장기 보유하던 한국전력과 현대차에서 수익을 냈다며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서희건설도 추천했고, 우리는 오랜만에 주식을 매개로 웃고 떠들었다. 주식은 혼자 하는 게임 같지만, 어쩌다 함께 웃을 수 있는 순간이 생긴다. 이번엔 그런 시기다.
나는 부동산 투자를 포기했다.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 주식이 내게 더 잘 맞는다. 둘, 유지비가 없다. 셋, 언제든 현금화가 가능하다. 넷, 세금 측면에서 유리하다. 특히 한국에서 다주택자에게 부과되는 각종 제약을 떠올리면, 주식은 단순하고 자유롭다. 좋은 기업의 주식을 사 모으는 것은 내게 가장 심플한 게임이다.
물론 시장은 언제나 변동한다. 그리고 나는 그 변동성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가치투자는 시점을 고르는 게 아니라 가격을 고르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내가 고른 가격이 적절했다면, 보유만 하면 된다. 다만 잔고가 변하는 것을 보는 즐거움은, 변동성이 있을 때 더 커진다. 지금처럼.
코스피 3000. 6개월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숫자다. 주식 투자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묻는다. “지금 사도 돼?” 나는 대답한다. “기업의 가치에 비해 가격이 싸면 사고, 아니면 참아 봐”
여전히 시장은 춤을 춘다. 그 춤은 예쁘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그 춤을 바라보며 침착하게 자리를 지키는 법을 배우고 있다. 가격이 적정하다면, 그 외의 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가치투자는 원래 그렇게 지루하게 하는 거니까. 불멍을 하듯이, 증권 계좌를 멍하니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었다. 그 변화가 나쁘지 않다. 타는 장작을 보며 생각한다. 언젠가 더 큰 불을 지필 수 있을 것 같다고. 아주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