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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Apr 02. 2017

천만 원

돈은 형평성을 모른다. 누구는 100의 노동력으로 100을 버는 반면, 누구는 50으로 200을 번다. 시대의 특성 때문인데, 돈이 돈을 부르는 구조로 부자는 더 큰 부자가 된다. 자본이란 도구로 무수히 많은 사람의 노동의 결실을 따먹을 수 있다. 편하게 과실만 취하며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외치고, 빈곤한 다수는 아 시발 이 세상 어떻게 리셋하지?. 숟가락 금으로 바꿀 연금술을 꿈꾼다.


  5년 전, 오사카에서 워홀러로서 1년간 외노자 생활을 했다. 주 6일, 하루 11시간을 그릇 닦고, 손님 상대하고, 칼질했다. 힘들었지만 보람 있었다는 탈무드식  교훈을 배재하고 사실만 보면, 개인 시간을 버리고 돈을 좇았다. 아침 9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얼마 안 되는 교통 지원비 삥땅치기 위함이었다. 가게에 도착했을 땐 티셔츠, 팬티 모두 흠뻑 젖었다. 섬나라의 습도는 움직일 때 존재감을 더했다. 젖은 옷 위로 앞치마를 두르고 위생모를 쓴다. 이랏샤이마세~부터 11시간 후 아리가토고자이마스~ 까지.


 학비를 벌어야 한다는 투철한 사명감이 있었다. 최소 100만엔은 모아야 했다. 현지에서 학교를 다니려면 최소 300만엔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첫 학년에 벌어놓은 돈으로 학비를 대고, 그 사이에 다음 학년 학비를 모아서 졸업하는 것이 목표였다. 확실한 목표가 있어 함부로 소비하지 못했다. 가게에서 3끼 먹고, 쉬는 날엔 전날 챙져온 밥과 고기로 배를 채웠다. 가끔 먹는 간식, 휴일에 가는 8시간 무제한 노래방비 800엔을 더한 5천엔이 한 달 생활비였다. 한 달 동안 5만 원 쓰고, 남은 돈은 모았다. 그렇게 1년 꽉 채워 번 돈이 140만엔. 40만엔을 호주 정착 비용으로 쓰고, 100만엔을 저금했다.


 얼마 전부터 주식을 시작했다. 지난 몇 달간 기본적인 주식의 메카니즘을 배웠다. 한국에서 펀드 매니저를 만났고, 몇 권인가의 재테크, 경제학 서적을 읽었고, 인터넷에서 추가적으로 자료를 찾았다. 모자랐지만, 대강의 흐름을 파악했다 판단해, 삼성전자 주식 4주를 샀다. 몇 가지 투자 원칙을 세워놓고, 장기 투자처를 몇 군데 알아봤다. 그리고 4주 전, 융통할 수 있는 나머지 돈을 주식에 넣었다. 


 3주 동안 주식의 가치가 올랐다. 증권사 어플이 잘 만들어진 덕분에, 간단히 투자 손익을 볼 수 있다. 3주 동안 얻은 수익이 1100만 원이었다. 어떤 때는 1시간 주기로 백 만원이 없어졌다 생겼다. 돈을 벌었지만, 100프로 즐기지 못했다. 괴리감 때문이다. 손바닥보다 작은 핸드폰 화면에서 빨간색 글자로 숫자가 오른다. 모바일 게임하는 기분으로 화면을 본다. 2천만 쥬얼로 삼성전자 주문서를 사고, 3천만 쥬얼로 하이닉스 장검을 산다. '님 아이템 제가 더 비싸게 삽니다.' 'ㄴㄴ 나중에 더 비싸게 팔 거임'. 마음에 드는 가격에 사거나 팔면 된다. 터치 한 번에 누군가의 연봉이 오간다. 붕 떠 있다. 


 매일 증권사 애플리케이션으로 손익을 체크한다. 일 년의 개고생과 3주의 가만히 있음의 결과가 같다. 절실한 목표가 있던 그때와, 쓸 곳이 없는 현재 상황을 대조하니 이질감이 커진다. 평생 노동의 대가가 누군가에겐 1분의 가치일 수도 있다. 투자한 노력과 결과가 멋진 반비례를 이룬다. 이제 아름다운 과정이란 말이 하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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