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띤떵훈 Mar 05. 2017

4시 30분

현재 시간은 4시 9분, 한국 시간으론 2시 9분이다. 앞으로 20분 간 생각의 부스러기를 모을 예정이다. 


 왜 이렇게 폰트가 크게 나오는 걸까? 익숙하지 않은 글자 크기에 어색함을 느낀다. 한 문단이 정해진 시야에 다 들어와야 안정감을 느낀다. 폰트가 바뀌었단 사실만으로 초조하다. 19분 밖에 쓸 시간이 없으므로 무시하고 진행한다. 문장을 쓰고 있던 생각을 하고 있던간에 30분이 되면 타이핑을 멈추고 게시 버튼을 누를 것이다. 


 오늘은 날씨가 좋다. 20도 초반으로 그늘에 있으면 완벽한 쾌적함을 맛볼 수 있다. 거대한 창문이 열려 있고, 그 앞에서 랩탑으로 글을 쓰고 있다. 멜번 시티 한 가운데 있는 2층 카페로 행인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글을 쓰는 중에는 누가 뭐를 하던 신경쓰지 않는다. 큰 소리를 내며 특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없는 한은 어떤 누구도 기억에 남기지 않을 것이다. 짧은 20분이란 시간 동안 천 명 가까운 인파가 시야에 담길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기억할 수 없고, 누구도 내게 의미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아이러니다. 20분 동안 본 사람 중 한 명이라도 기억하니? 모자를 썼는지 안 썼는지 정도라도 기억나면 말해봐. 나는 몰라. 그걸 왜 기억해 


 레귤러 사이즈 아이스커피가 반이나 없어졌다. 한 잔을 시키면 100 모금으로 나눠 마신다. 벌컥벌컥파가 아니고 홀짝홀짝파다. 입 안에 커피 향이 없어질만 하면 다시 찔끔 빨아 리필한다. 마치 화장실 자동 방향제 같다. 10분에 한 번씩 자동으로 분사한다. 비슷하게 2,3 분에 한 번씩 빨대에 입을 갖다 댄다. 음 커피 스멜. 글로리아 진스 커피는 스타벅스에 비해 맛이 없다. 그러나 무제한 와이파이와 파워포인트를 제공한다는 이점이 맛이 주는 행복을 상회한다. 맛 보다 다른 것이 중요하다. 카페의 본질은 커피를 제공하는 곳이 아니다. 집이 아닌 공간에서 안정감을 주고 창의적인 작업에 맞는 생산성을 제공하는 것이 카페의 본질이다. 물론 내 경우에 그렇단 말이다. 하지만 랩탑이나 책이 없다면 본질은 바뀐다. 내가 상대에 따라 쓰임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에겐 고용주, 누군가에겐 연인, 누군가에겐 친구, 누군가에겐 아들, 누군가에겐 학생이다. 어떤 역할을 가장 열심히 하고 있을까? 다 고만고만하다. 그럼 어디에 특별히 힘을 쏟아야 할까? 내 삶의 방향성이 달린 질문이군. 하지만 그때그때 결핍을 느끼는 곳에 집중하기 때문에 내게 글을 쓰고 있는 이 카페의 본질처럼 바뀌는 것이다. 


 폰트가 큰 탓에 첫 두 문단이 화면에서 사라졌다. 어찌 이리 불안할까 이런 사소한 이유로. 사업을 하는 작은 삼촌은 자신과 내가 같은 공통점을 말했다. 큰 돈 쓰는 일에 대범하고 작은 돈에 집착한다고. 돈 뿐만이 아니다. 사소한 일에 삐지고 신경질적이 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남보다 덜 민감하고 예민한 편이라 삐지고 화내는 경우는 적다. 잘 화내지 않는 사람이 화를 내면 그렇게 무섭다는데, 나는 하나도 무섭지 않다. 화를 내기 전에 이걸 내가 질러버리면 어떤 손해를 볼 지 생각한다. 많은 손해가 있으면 안 지른다. 그러나 손해에 비해 후련함이 클 때는 과감히 질러버린다. 지른다고 해도 욕을 하거나 폭력을 쓰는 경우는 없다. 난 이게 싫다. 왜냐하면 ~~ 이유 때문이다. 라고 말하는 정도다. 물론 격앙된 어조로. 


 쓸 말이 없으면 커피를 홀짝이고, 창 밖을 본다. 카페 건너편에는 도서관이 있다. 멜번의 상징같은 곳으로, 많은 사람이 모인다. 도서관 앞에는 큰 잔디 공터가 있다.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여유를 즐긴다. 여유를 즐긴다는 표현은 너무 주관적인 것 같다. 그들 중에 많은 불안을 품거나, 우울한 감정을 추스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적당한 햇빛이 푸른 잔디를 비추니 그 무대 위 모든 이가 여유로울 것이라는 지레짐작을 한다. 날씨 좋은 일요일 오후, 잔디에 앉아 있는 이들 모두가 여유로울 거라 생각하는 것은 오해일 가능성이 크다. 100프로란 것은 거의 없다. 다른 태클. 날씨 좋은 일요일 오후라는 수식도 이제보니 이상하군. 날씨가 좋다는 것도 주관적이다. 누구는 살짝 더운 날을 좋다고 하고 누구는 살짝 쌀쌀한 날을 좋다고 한다. 20도 초반의 화창한 날이 좋은 날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것일뿐, 100프로 동의를 얻을 순 없다. 


 이제 4시 27분이다. 3분 남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2분 하고 몇 초다. 문장이 중간에 토막나는 것은 원치 않는다. 불완전성으로 가득한 글에 마무리까지 불완전하면 글을 끝내고도 숨이 막힐 것 같다. 이미 폰트가 크다는 사실에 가슴이 답답하다. 28분이군. 1분 안에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어떤 마무리가 좋을까? 그래 내 눈에 비치는 것들. 사람들이 지나간다. 오늘 밤 내가 눈을 감을 때 기억날 사람은 없다. 


- 4시 28분 종료. 

작가의 이전글 다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