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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May 02. 2017

학벌 콤플렉스

 좋은 대학에 가고 싶었다. 졸업장을 따고, 백그라운드를 설명할 때마다 자부심을 느끼고 싶었다. 젊은 사장 수식이 없어진 후에 등 뒤가 허전했다. 어깨를 펼 수 없었다. 


‘원래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사업할 생각이었는데, 어머니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사정사정하길래 전문대에 가게 됐어요. 물론 제가 머리가 안 좋아서 그런 건 아니고요. 공부도 어느 정도 하는데, 명문대 갈 필요를 못 느낀 것 뿐이죠. 어차피 돈 벌려고 대학 가는 거, 안 가고 큰돈 벌면 몇 년 빠른 거 아닌가요?’라고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사장님 타이틀엔 품 잡을 수 있는 모든 내용이 함축됐다.


 더 이상 잘난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을 때, 꺼져가는 후광을 살릴 간판이 간절했다. 마라톤에서 10km 앞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10km 뒤였다. 실패가 학벌 콤플렉스를 불러왔다.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란 자각이 있어야 다른 도전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나 전문대 애들을 높게 평가하지 않아. 물론 나도 전문대 출신이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달라. 뭔 말인지 알지? 어느샌가 학벌에 노예가 되어, 학교 간판에 기준으로 인간성을 논하고 있었다. 쟤는 1등급 인생, 얘는 4등급, 얘는 논외. 


 어머니 아버지, 조금 늦었지만 아들 서울 4년제 다시 들어갈 생각입니다. 물론 중경외시 미만 잡이구요. 도움을 주시겠습니까? 재수 기숙학원 1년이면 2호선 탑니다. 부모님께 불효 가득한 부탁을 했다. 전세금을 빼지 않는 한, 재수학원마저도 다닐 수 없는 상황임에도 어깨에 힘을 넣기 위해 염치를 버렸다. 결국 가족들 가슴에 박힌 대못 빼고 바뀐 건 없었다. 


 역사를 설명하지 않는 한 전문대 출신, 논외 등급의 인물로 비칠 것이었다. 등급 외 인생이 아님을 증명하고자 더 많이 읽고 쓰고, 배웠다. 그러나 스스로 만든 환영에서 자유롭지 못해 한국을 탈출했다. 주변 학생들을 보고 잠 안 자고 일하면 외국 대학 입학이 꿈이 아님을 깨달았다. 학교 간판이란 목표를 위해 20대 남은 시간을 썼다. 입학을 위해 노동자 생활을 자처했고, 행선지를 바꿨다. 


  커리어를 위해 학교를 가고자 하는 것일까, 아니면 논외 등급에서 벗어나 당당히 인간의 등급을 나누고자 하는 것일까? 전자여야 한다.


 인생 경험이 늘며 더 쿨하고 진보적인 인물이 되어야 했다. 인문학, 철학, 다양한 사상가의 이론에 멋진 부분을 차용해 생각의 온도를 낮췄다. 무슨 말을 해도 차별 없이 쿨함을 유지하기 위해. 대학 간판으로 사람을 나누는 것은 모자란 짓이다. 학벌로 차별받을 땐 발끈했고, 인터넷에서 누군가가 학교 이름에 따라 다른 잣대를 들이밀면 유치함에 일침을 가했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똑똑한 사람들의 존재는 나의 개화된 정신상태의 좋은 예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의심의 눈을 거둘 수 없는 이유는 무의식과 스쳐가는 감정 속에 있다. 


 생계를 위해 청소를 하는데, 직원이 자주 바뀐다. 보통 전임자가 떠나 인터넷에 구인 글을 올리면,  워킹홀리데이 학생이 지원한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가진 사람의 최대 체류 시간이 일 년인 터라 일 년에 한, 두 번은 새로운 직원을 뽑아야 한다. 그럴 때마다 이력서를 몇 통씩 받는다. 파일을 열면 자연스럽게 출신 대학으로 시선이 먼저 간다. 깨시민 가면 뒤로 말들이 오간다. 


‘응? 나를 알아주는 대학교 출신이군. 알바 경력이 왜 이렇게 많아. 끈기가 이렇게 없어서야. 금방 그만둘 사람 찾는 게 아니라고.’

‘음 서울에서 알찬 4년을 보냈네. 알바를 많이 해봤구나. 사회 경험도 많아 금방 적응하겠어.’


아직 콤플렉스는 건재하다. 


 나이 앞자리가 3으로 바뀌고, 학생 비자 연장을 위해 다니는 학교에서 최종학력을 갱신했다. 전문대 위 학사 미만의 마케팅 코스도 몇 개월 후면 끝난다. 대학 입학 고지가 눈 앞에 있다. 그동안 번 돈은 학비로 쓰일 것이다. 학교 입학을 위한 자격 조건을 만족시키고 있다. 또 몇 년 후면 세계 대학 순위 리스트에서 서울대보다 위에 있는 학교 졸업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땐 자유로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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