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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Apr 23. 2017

글 쓰는 취미

 언제부터 주기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기억을 더듬었다. 초등학생 때 학교 숙제로 받은 일기부터다. 누군가에 의해 쓰는 글은 영양가가 없다. 꾸준히 쓰는 습관이 생긴 한편, 갈겨쓰는 버릇도 얻었다. 참 잘했어요 도장받기 위해, 억지로 하루 일을 되짚었다. 일요일엔 교회 간 일, 평일엔 학교에서 있었던 일. 몇 안 되는 패턴을 돌려 썼다. 뭐뭐를 했다. 참 좋았다. 다음에 또 하고 싶다. 시간 낭비였다. 기록의 의미라기엔 무리가 있다. 읽는 일 없이 다 쓴 일기장을 버렸다. 


 중학교 시절의 나는 찌질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왕따를 경험하고 전학을 갔다. 왕따 때문은 아니고, 가정사가 원인이었다. 나대기보다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덜 피곤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유상종이라고, 비슷한 성향의 친구들이 생겼다. 친구들은 무협 소설 읽기를 즐겼다. 취미를 공유하고픈 마음에 한, 두 권 읽다가 책방에 출근 도장 찍게 됐다. 읽다 보면, 직접 쓰고픈 욕구가 생긴다. 몇몇 친구와 다음 카페에 무협 소설을 써 올렸다. 끈기가 없어서 두 편 정도 쓰고 포기했다. 


 고등학교 때는 환경이 달라졌다. 어울리는 친구들이 바뀌고, 외향적으로 변했다. 그래도 무협 소설을 향한 팬심을 잃진 않았다. 교과서 뒤에 숨겨 하루 한 권씩 읽었다. 무협 소설 쓰기는 포기했지만, 있어 보이는 글을 쓰고 싶었다. 당시 문학 선생님은 시인이었는데, 몇 권인가 출판도 했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그의 책을 빌려 작문 실력을 뽐내기 위해 주석을 달았다. 선생과 제자지만, 비평할 때만큼은 관계를 초월한 기분이었다. 


 땀 냄새나는 남고를 벗어나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또래 여자들과 함께 생활하니 가슴에 꽃밭이 생겼다. 나의 감수성의 꽃을 아름다운 문장을 통해 모두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힘 바짝 들어간 글을 올렸다. 얘들아 내가 이 정도로 글을 잘 쓰고, 감성적이야. 날 좀 알아봐 줘. 


 '창밖에 비가 내린다. 주룩주룩... 창문에 남은 눈물의 궤적은 무슨 의미일까. 이 고독과 외로움을 알아본 하늘의 위로일까. 문득 앙드레 가뇽의 피아노 연주가 듣고 싶어 졌다. 곡 명은 Let it be....'


 무한도전 보고, 테일즈위버 장사 돌려놓고, 예민한 스물을 연기했다. 다음날 보고 지우길 반복했지만, 쓰고 난 후에 오는 만족감이 컸다. 오 이런 어려운 단어를 썼다니. 여기에 이 비유는 죽이네. 언어영역 1등급은 뭐가 달라도 달라. 후훗. 글 쓰는 주된 목적은 남에게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고자 함이었다. 똑똑하고 감성적이고, 문학적인 학급 친구. 쓴 글을 보며 감탄했다. 글의 메세지나 구조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한두 문장이라도 멋있으면 됐다. 하루키 소설 속 비유를 살짝 바꿔 내 것처럼 썼다.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은 점은 자기만족을 위해 글을 쓴다는 점이다. 생각을 종이나 화면에 옮기는 일은 만족감을 준다. 감기 걸렸을 때 가래 뱉는 것처럼 시원하다. 그것보다 잘 썼다고 생각하는 글을 남이 본다고 상상했을 때 더 신난다. 표현 방법이나 글의 내용이 바뀌었지만, 누군가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꾸준한 글쓰기를 가능케 했다. '야 너 글 좀 쓴다.' 란 칭찬이 나를 컴퓨터 앞으로 이끌었다. 결국 내 오랜 취미는 인정욕에 의해 이어졌다. 


 다른 점이라면 조금 거만해졌다는 사실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글을 보여주는 행동은 그만뒀다. 그들의 칭찬이 기쁘지 않다. 낯간지러움을 참을 수가 없다. 대신 어딘가에서 볼 글 좀 쓰는 사람에게 어필한다. 저 이렇게 꾸준히 쓰고 있어요. 뜨거운 열정 보이죠? 내가 당신들과 동류라고 생각해주면 고맙겠습니다. 우리 글쟁이들은 진짜 비평만 수용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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