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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Jun 17. 2017

어머니의 생일상

 생일 축하한다는 말이 한 번에 쏟아진다. 축하의 말소리 사이로 입김을 불어 초를 끈다. 초에 붙어 있던 열기가 식으면 테이블 주위로 박수 소리가 들려온다. 저마다 손에 들고 있던 선물을 전달한다. 환호 후에는 만찬을 즐긴다. 어머니가 만든 갈비찜, 불고기와 배달한 치킨, 식기에 올라간 여러 종류의 과자, 상 한가운데 케익까지. 바쁘게 손을 움직여 상차린 어머님께 예의를 보인다. 맛있는 음식으로 분위기가 달아오른다.


  전형적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익숙한 생일상이다. 시간이 가속한다고 누가 말했다. 경험을 통해 그 말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어릴 적엔 한 해 한 해가 느리게 움직였다. 그래서인지 당시의 기억은 더 인상 깊고 머리에 오래 남는다. 나이란 제약 때문에 몇 번 받지는 못 했어도 생생하다. 그것은 생일상의 기준이었다.


  생일의 주인공은 나, 주인공을 만드는 각본가는 어머니였다. 모든 음식을 구상하고 준비했다. 여름방학과 생일이 겹쳤기 때문에, 어머니는 아버지와 일일이 친구들을 픽업했다. 태어나줘서 고맙다며, 그런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일 년에 한 번 있는 그 날을 성대하게 만들었다. 고마워할 사람은 난데, 어머니는 자진해서 역할을 도치했다. 몇 번 대접을 받자, 받음이 당연해졌다. 상차림과 더불어 생일이란 이유로 몇 만 원짜리 로봇을 요구했다.


 어머니의 훈육은 다소 폭력적이었다. 옐로카드 시스템은 있었다. 쿵쾅거리며 온 집 안을 뒤집어놓을 땐, '하지 마. 가만히 있어라.' 그래도 소란을 멈추지 않으면 다른 방식으로 경고를 했다. '오 사 삼 이 일' 레슬링에서 카운트다운이 끝나면 승패가 결정 나듯, 숫자가 사라지면 어머니의 인내도 끝났다. 파리채와 효자손이 부러져야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다. 그런 어머니였지만, 생일만큼은 자식 비위 맞추기 위해 노력하셨다. 생일이 가까워지면 기고만장해서 말썽을 피웠다.


  중학생이 되며 어머니에게 생일상 받을 기회가 없었다. 부모님이 이혼하며 어머니와 10대 전반, 아버지와 10대 후반을 보냈다. 성인이 돼도 마찬가지였다. 군대에서 2년, 해외에서 5년, 매 생일마다 그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어머니는 생일상 대신 전화기 넘어 따뜻한 말과 돈을 건넸다. 계좌로 들어온 10만 원, 20만 원으로 생일상을 차려 자축했다. 먹고 남은 돈은 생일 선물용이었다. 어머니가 이틀 24시간 일하고 벌어온 10만 원은 아들 신발값으로 쓰였다. 생일이란 이유로 당연시한 선물이다.


 사실 생일 여부를 떠나 많은 것을 당연히 여겼다.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만큼은 일생 노동을 착취하는 자본가였다. 부모는 자식을 챙겨야 한다는 당위를 무기로 호의호식했다. 덕분에 세상에 긍정하고 만족하며 살아왔다. 시간에 조금씩 염치가 쌓이고 나서야 잘못된 부분을 발견했다. 태어나줘서 고마운 게 아니고, 낳아줘서 감사한 것이었다. 올초 어머니는 먼 길을 떠났다. 다행히 어머니가 가시기 전에, 잘못된 인사를 정정할 수 있었다.


 친구들의 선물과 축하에 들떠 미처 보지 못 한 어머니의 수고를 그린다. 신기하게도 생일상은 기억나지만 상차림은 기억나지 않는다.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기억 속 생일상은 항상 차려진 상태다. '상다리 휘어지게'라는 수식이 어울릴 정도로 호화롭다. 푸짐했던 생일상이 가슴을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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