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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Jun 26. 2017

애완동물을 기른다는 것은

 호주에서 청소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회사와 가정집 가리지 않는데, 가정집의 비율이 더 높다. 덕분에 다양한 집을 구경할 수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호주에도 애완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많다. 청소를 하려고 현관문을 열면, 격렬히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를 볼 수 있다. 첫 방문 때는 적의를 드러내지만, 두 번째 방문부터 적의는 친근함으로 바뀐다. 더 이상 나는 낯선 인이 아니다. 자신과 가족에 해를 끼치는 존재가 아님을 인식한 지 모른다. 가까이 가면 배를 뒤집어 까고 온갖 애교를 부린다. 그런 모습에 가끔 방문의 목적을 잊는다.


 고객이 많은 만큼, 여러 종의 애완동물을 만날 수 있다. 보통은 강아지와 고양이다. 강아지의 경우 따라다니며 귀여움을 어필하는 반면, 고양이는 도도하게 자리를 지킨다. 인간의 입을 빌린다면 이렇지 않을까. '어서 나를 쓰다듬어주세요'와 '쓰다듬고 싶으면 네가 와라'. 어느 쪽이든 귀엽기는 마찬가지지만, 강아지에 마음이 더 쏠린다. 언제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반기는 존재가 있다면,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의 적극성에 감탄하며, 애완견 기르는 모습을 상상한다.


 상상이 길어지면,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역시 좋아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하나의 생명을 키우기 위해서는, 책임감이 선행돼야 한다. 순간의 욕구로 강아지를 분양, 입양한다면, 다시 충동으로 버릴 수 있다. 기르는 동안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실에 똥을 쌀 수 있고, 아끼던 옷을 물어뜯어 못 쓰게 만들거나, 방을 난장판으로 만들 수도 있다. 단순히 개를 키우며 얻을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 또한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그래도 감당할 수 있다 판단될 때 키워야 한다. 감당할 수 없으면 남의 집 강아지 보는 걸로 만족해야 한다.


 작년에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재고한 사건이 있었다. 우리 고객 중에 한 명은 강아지를 자식처럼 아낀다. 자기 집 애완동물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그분의 강아지 사랑은 각별하다. 강아지의 이름은 베른, 지극정성 보살핌 덕에 평균 수명을 훌쩍 넘긴 노견이다. 베른은 잘 움직이지 않았고 보통 침대 위에서 가만히 시간을 보냈다. 털은 어찌나 많이 빠지는지, 매번 청소기의 필터는 개털로 가득 찼다. 수의사는 베른이 매일 육체의 고통에 시달린다고, 보내줄 때라 말했다. 그런 애견의 고통을 견딜 수 없던 주인아주머니는 힘겹게 안락사를 결정했다. 베른을 누구보다 아낀 그녀를 알기에, 결정의 무게를 감히 가늠할 수 있었다. 베른을 보내고, 그녀는 상실감을 달래기 위해 한 달 동안 생각을 정리하는 여행을 떠났다.


 베른과 함께 했던 날들 중 언젠가 그녀는 베른이 수술을 받고 왔다고 말했다. 며칠 입원하고 수술하는데 2만 불, 한국 돈으로 1700만 원이 청구됐다. 경제적 뒷받침 없이는 제대로 개를 보살필 수 없다. 해외로 여행이나 출장을 자주 가는 가족이었는데, 베른을 보살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는 꼭 남아 있어야 했다. 매일 산책시켜야 하고, 정기검진도 받아야 하고, 원기 보충을 위해 영양식도 만들어야 했다. 상상 이상의 노력이 필요했다. 현실은 장난이 아니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어렵다. 강아지나 고양이 등의 애완동물도 마찬가지다. 그 책임감은 너무 무거워서 '나도 한 번 키워볼까?'라고 말할 수 없다. 돈은 물론,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하다. 이런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애완동물을 분양받는다. 동물자유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동물을 죽을 때까지 보살피는 한국인의 비율은 12%다. 88%란 수치에서 이기심과 무책임함, 무지를 본다. 죽음이 가까운 강아지를 떠나보내는 일만 해도 몇 백 만원이 든다. 이 정도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독신 남성, 여성이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은 어떤가. 집에서 보내는 잠깐의 시간을 위해 동물을 기른다. 애완동물을 고독사로 이끄는 행동이다. 생명의 무게가 너무 가벼운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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