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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Jun 26. 2017

새 맥북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 잘 빠진 친구다. 어디든 함께 하고 싶고, 자랑하고 싶다. 금의를 온몸에 두른 명문가 자제다. 작은 체구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더없이 어울린다. 시간, 공간 제약 없이 방대한 인터넷 세계로 인도한다. 뿐만 아니라 머릿속에 엉킨 생각을 풀어주기도 하며, 노트가 되어 정리할 공간을 제공한다. 무슨 이야기를 하던 경청 한다. 자판을 통해 생각을 전해 받아 스크린으로 표시한다. 훌륭한 대변인이다. 


 2009년형 맥북 프로는 타국 생활의 동반자였다.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던 5년 전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곁을 지켜줬다. 한국과 이국 땅을 이어주는 국제 오작교이기도 했다. 매주 토요일마다 무한도전을 보여주거나, 친구들과의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생활에 정보와 상식을 제공했다. 세상 빛을 본 지 8년이 지났음에도 준수한 능력을 보여줬다. 노장이 여간해선 죽지 않는다.  다소 무겁긴 했지만,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 카페에서, 집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런데 며칠 전, 급격히 건강이 악화됐고 예고 없이 떠났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었다. 익숙한 자판 소리는 집중에 도움됐다. 카페에 자리를 잡고 두 시간 가량 시간이 지났다. 글을 하나 써서 블로그에 올리고, 쓴 글을 확인했다. 몇 가지 고치고 싶은 부분을 발견해 수정하는 도중 갑자기 화면이 꺼졌다. 대기모드로 전환된 게 아니고, 시스템이 종료됐다. 당황스러움을 뒤로하고 다시 부팅했다. 우측 상단에 경고 문구를 확인했다. '배터리 없음' 배터리 수리가 필요하다는 문구는 몇 년 동안 봐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 전에도 충전기를 연결하지 않고는 15분을 넘기지 못했다. 재부팅 후 몇 분이 지나고, 다시 시스템이 강제 종료됐다. 충전기를 연결해도 작동하지 않았다. 진짜 끝이었다. 


 랩탑이 없으면 불편한 게 한 둘이 아니다. 아니, 없으면 불편한 정도가 아니고 없으면 안 되는 수준이다. 결국 급하게 인터넷 중고 사이트를 뒤졌다. 새 제품을 구매하기엔 다소 부담스러웠다. 오래 사용하기 위해 최근 모델 위주로 검색했다. 핸드폰으로 검트리에 접속해 2015년형 맥북 프로, 에어, 뉴맥북의 목록을 정렬했다. 랩탑으로 무거운 작업을 하는 게 아니어서 하드웨어는 중요하지 않았다. 간단한 작업에 적합한 가벼운 모델을 사고 싶었다. 가장 가벼운 모델은 뉴 맥북 12인치로, 에어와 비교해도 훨씬 가벼웠다. 휴대성과 배터리 용량이 판단요소였는데, 뉴맥북이 적합했다. 결국 뉴맥북을 파는 대부분의 판매자에게 협상을 원한다는 메세지를 보냈다. 그중 한 명과 이야기가 통해, 그날 저녁 구매할 수 있었다.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이전엔 항상 벽돌같이 무거운 구형 맥북과, 충전기를 챙겨야 했다. 에코백을 좋아하지만, 이 무거운 전자기기를 들고 다니기 위해 백팩을 멨다. 밖에 나와서도 문제였다. 충전기 없이는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전력 공급용 콘센트를 찾았다. 어딜 가나 제약이 있었다. 학교에서도 몇 개 없는 콘센트에 때문에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몇 안 됐다. 길게 연결된 전선을 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녔다. 말도 못 하고 속으로 화를 삭였다. 불편했던 경험이 새로운 랩탑의 가치를 올렸다. 


 새로 온 친구는 한 번 충전으로 8시간 가까이 작동한다. 외출 시 전원선을 챙길 필요가 없다. 무게는 어떠한가. 2키로 넘는 벽돌 랩탑에 비교하면 깃털 같다. 1키로가 안 되는 무게에 부피까지 작다. 애플에서 6년간 기술 개발에 힘써준 덕분에, 부피는 작지만 더 빠른 속도를 즐길 수 있다. 이 가벼움과 빠름이 외출을 종용한다. 에코백에 넣어 몸도 마음도 가볍게 외출한다. 


 새로운 맥북을 구매하고 집으로 돌아온 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친구의 충전기를 구형 맥북에 연결했다. 그러자 죽은 줄 알았던 구형 맥북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결국 충전기 문제였다. 오해로 새로운 친구를 데려왔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열심히 고생한 구형 맥북에게 길고 긴 안식의 시간을 주기로 했다. 갑자기 오랜 시간 주인의 즐거움과 유익함을 위해 고생한 구형 맥북에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빨아먹을 만큼 먹고, 필요 없다며 버린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감정이입한다. 물건의 본질은 정해져 있다. 대체품이 생기는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라고 되뇌지만 새로운 맥북을 하며 즐거워하는 나의 모습을 2009년 구형 맥북 앞에서 보이는 게 어쩐지 편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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