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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Jul 02. 2017

손 풀기

매일 20분 글쓰기

# 매일 20분 게시판 - 필자가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의 게시판입니다.  



12:46분


 수영 강좌에 가면 우선 준비운동을 배운다. 불의의 사고를 예방하고, 웜업을 통해 효과적으로 운동하기 위함이다. 글쓰기에서도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 손을 풀면서 글쓰기에 대한 허들이 내려가고, 집중력이 올라간다. 요리로 비유하면 손 풀기는 식욕을 돋우는 애피타이저다. 노력이 요구되는 글쓰기는 시작부터 부담스럽고, 막막하다. 와... 언제 이 내용을 다 쓰지? 그럼 부가적인 자료는 언제 다 찾고... 음 그래 그냥 포기하자. 식으로 생각이 귀결될 수 있다. 그러나 매일 20분이라는 게시판의 취지에 맞게 상대적으로 적은 노력으로 글을 쓰면, 어느 정도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된다. 야구 경기에서 투수가 등판하기 전에 연습구를 몇 개 던지는 것처럼, 쉬운 주제로 몇 문단을 채운다. 


 손 풀기라 하면, 매일 20분 게시판에 글을 쓰는 것을 말한다. 매일 20분 게시판에서 다루는 글은 자료 조사를 요구하지 않는다.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것들, 혹은 최근에 발견한 새로운 사실, 지금 내 눈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 쓰기 때문이다. 철학적 논점, 사회 문제 등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는 글은 이 게시판에 쓰일 수 없다. 머리에 든 게 부족하므로, 인터넷의 도움이 여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휘도 마찬가지다. 생소하거나 전문적인 주제를 다룰 경우, 익숙치 않은 어휘를 사용해야 한다. 그럴 때마다 단어의 정의를 재차 검색한다. 이런 뉘앙스로 쓰이는 것 같던데...라고 대략적인 의미만 갖고 쓸 순 없기 때문이다. 사전을 찾고, 기존에 갖고 있던 단어의 의미와 용법이 잘못됐음을 깨닫는다. 여기에선 100% 이해하고 있는 어휘만 사용한다.


 매일 20분 글쓰기의 특징이라 하면, 퇴고가 없다는 점이다. 이게 가장 큰 특징이다. 퇴고를 하기 싫어서 만든 게시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딜리트 키도 없어지는 글들이 아까워, 그런 것들을 다 담을 요량으로 만든 게시판이기도 하다. 손을 풀면서도 뭔가를 남기고 싶은 욕심이다. 매사 효율을 따지는 인물이기 때문에 한 가지 행위에 몇 가지 이득이 있길 바란다. 20분이란 짧은 시간에 5 문단 이상의 사설 하나를 적어내려면, 버리는 것이 없어야 한다. 막 쓰고 있지만, 생각지도 못 한 것이 담기는 경우도 많다. 순간적으로 문장이 다듬어지지 않았음을 이유로 지우는 문장이 많다. 표현을 지우며 그 내용 또한 지워진다. 결국 딜리트 키를 누르지 않으면서 생각의 궤적을 온전히 담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퇴고는 미시적 관점의 퇴고로, 쓰면서 수정하는 것을 말한다. 다 쓴 다음에 고치는 경우는 많다. 


 두 번째 주된 특징은 시간제한이 있다는 점이다. 시간제한이 없으면 한없이 나태해진다. 한 순간에 글쓰기에 확 몰입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시간 제약은 이런 몰입을 가능하게 한다. 시간이라는 틀을 통제함으로써 각성이 가능하다. 마치 학창 시절 시험 전날의 벼락치기와 같다. 효율이 뛰어나다. 음... 이 문장은 마음에 안 드네. 이 문장은 뭔가 어색한데? 등의 이유로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약속된 시간에 분량을 다 써야 하기 때문에 빠른 타협이 가능하다. 뭐 이 정도면 됐어. 그냥 넘어가.로 마음 가짐이 달라진다. 


 손 풀기는 다시 말하지만 유익하다. 여러 장점이 있고, 그 목적과 더불어 다른 전리품을 얻을 수 있다. 어릴 때 그토록 쓰기 싫었던 일기와는 반대로 자의에 의한 글쓰기가 가능하며, 그 순간의 나를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모든 것을 남기는 나의 본모습이다. 그 순간을 온전히 글에 담는 것이다. 물론 완성도나 문학적, 정보적 역할 수행은 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손 풀기는 나를 위한 글쓰기이다. 본격적인 글쓰기에 앞서 마음을 다질 수 있고, 몰입할 수 있고, 내 생각을 여과 없이 남길 수 있고, 다루는 주제의 폭이 넓어진다. 여러모로 훌륭한 작업이다.


1:05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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