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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Jul 13. 2017

주제 변경

 블로그에 글 쓰는 중이었다. 짧은 시간에 되도록 많이 쓰려 했다. 한 문단을 끝낼 무렵, 귀가를 함께 할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글을 급하게 끊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친구가 도서관에 볼일이 있다고 말했다. 잘됐다 싶어, 서로 일 보고 만날 것을 권유했다. 쓰던 것 마저 끝내고 싶었다. 글을 중간에 끊는 것은 용변 끊는 것 같아 찝찝하다. 생각한 것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할 때 오는 잔변감은 나를 한 시간 가량 귀찮게 한다. 그러나 친구는 나중에 보기를 거절했다.


 친구를 만나 도서관에 자리를 잡았다. 글을 이어가려는데 의욕이 떨어졌다. 쏟아내는 글은 그 순간 써야 한다. 끊어 쓰는 방식이 어울리지 않는다. 결국 문단을 선택해 딜리트 키를 눌렀다. 제목도 바꿨다. 프로 작가가 아니고 인내심도 대단하지 않아, 한번 글쓰기를 멈추면 주제를 바꾼다. 빨리, 많이 쓰는 이유도 여기 있다. 그 순간의 감정이 끊기면 다시 안 쓸 것을 알기 때문에, 타이핑을 시작하면 되도록 끝을 보려고 한다. 


 주제 바꾸기엔 장단점이 있다. 장점이라 하면, 글쓰기에 관심을 키운다는 점이다. 내키지 않는 주제를 안고 씨름하다 보면 생산성이 떨어진다. 한 문단 쓰는데 30분이 걸릴 수도 있다. 30분이면 5,6 문단짜리 글 하나 쓰고 퇴고할 시간이다. 집중력이 떨어져서 딴짓한다. 인터넷에 웃긴 글 찾아보거나, 유튜브로 가수 라이브 영상을 검색한다. 쓰고 싶은 주제를 다루는 게 웃긴 글 보는 것보다, 노래 듣는 것보다 재밌다. 두 번째 장점은 순간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전에 쓰려던 주제는 과거의 관심사다. 과거의 순간에 다시 집중해서 현재로 돌려야 한다. 온전히 되돌려 현재의 흥미와 싱크를 맞추지 않으면, 지금이 소외받는다. 주제 바꾸기는 지금에 충실하고, 존중할 수 있게 도와준다. 단점이라 하면, 인내심을 떨어트린다. 군대에서는 인내심이 길러진다. 하기 싫은 일 하고 살기 때문이다. 한숨과 욕으로 시간을 보내긴 하지만, 한숨과 욕이 커지면 인내 레벨이 오른다. 군대를 전역하고 한숨과 욕이 줄어들면서 레벨도 떨어졌다. 다른 단점이라면, 심도 있는 글이 나올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한 가지 주제를 갖고 길게 깊게 고찰해야 진한 글이 나온다. 매번 내키는 다른 주제로 글을 쓰면 넓지만 얕은 글이 나온다. 


 주제를 바꿀 때 중요한 요소는 주변 사물에 있다. 시야에 들어온 물건이나 사람, 장소가 글감이 된다. 와 저거 흥미로운데, 써보고 싶다. 글을 쓰면 그 현상이나 물체에 생각하는 것 이상의 고찰을 할 수 있다. 자료 조사가 없어도 마찬가지다. 낱말 맞추기에서 글을 적어놔야 단어 사이의 글자를 알 수 있다. 글자를 힌트 삼아 빠르게 빈칸을 채울 수 있다. 마찬가지로 생각도 글로 남겨야 생각의 궤적이 돌아오지 않고 전진할 수 있다. 그래서 눈에 담기는 것에 흥미가 동할 때 글을 쓰면서 조금 더 친숙하게 만들 수 있다.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 헌팅하는 기분이 이럴까? 와 얘 매력 있다. 생각하면 가서 자 친구 합시다 손을 건넨다. 내가 당신에 대해 추측해보겠습니다. 나의 과거와 경험을 토대로 말이죠. 저는 당신이란 존재에 이런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어떠신가요? 자문자답이지만 대화하는 자세로 다가선다. 


 그러나 구체적인 시각 정보가 없어도 글감이 된다. 자리에 앉았을 때, 소파가 편하다면 안락했던 감정, 따뜻한 감정을 떠올린다. 추운 겨울 따뜻한 내 방 침대, 전기장판, 포장마차에서 먹는 어묵 국물, 군대에서 보급품으로 받은 핫팩 등. 맞아, 전에 비슷한 감정이 있었지. 감정의 연결고리를 맞춰 과거와 현재의 대화의 장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추상적인 감상이 글이라는 시각정보로 변하는 게 재밌다. 과학에는 흥미가 없었으나, 에너지가 형태를 달리해서 존재를 이어가는 점은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철저하게 문과 인생을 살고 있지만, 이과 감성을 이런 곳에서 느낄 수 있다. 주제 변경을 하며 순식간에 사라질 감상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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