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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Aug 09. 2017

스피드 레이서

누구보다 빠르게 글쓰기

 3:13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비트를 타는 아웃사이더와 마찬가지로, 누구보다 빠르게 하얀 액정 위에 검은색 글씨를 새긴다. 타이머를 맞춰 놓고 준비 시작. 100미터 달리기 경주처럼 심판의 총성이 울리면 전력 질주한다. 퇴고 따윈 필요 없어. 많은 것을 털어놓을 거야. 달리기와 다른 점은 많은 발걸음으로 족적을 남기는 것이다. 실제 달리기에서 큰 보폭으로 결승점에 도착한다면, 글쓰기 경주에서 나는 작은 보폭으로 많은 흔적을 남겨가며 뛴다. 매일 20분이란 게시판도 빠르게 쓰는 훈련을 위해 만들었다. 이글 상단에 3시 13분에 시작했다고 흔적을 남겼다. 그리고 끝내는 시간을 체크해서 글 마지막에 덧붙일 예정이다. 목표 시간인 20분 안에 5개 전후의 문단을 박아 넣어 오늘도 내가 이겼다며 자축해야지.


  오늘도 속주를 위해 랩탑을 챙겨 카페로 향했다. 가는 길에 예전에 쓴 글을 훑어봤다. 브런치 글이 가독성이 좋기 때문에, 브런치에 올린 글이 대상이었다. 브런치는 상대적으로 글이 적다. 시작점이 블로그보다 늦기 때문이다. 몇 번의 스크롤 움직임으로 첫 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의미부여란 글이었다. 새로운 플랫폼에서 쓰는 첫 글이므로 글쓰기 자세와 지향해야 할 이상을 다뤘다. 드문드문 좋아요 버튼이 눌려서 어느 정도인지 몰랐는데, 좋아요가 12개나 있었다. 요즘에 쓰는 글과 비교하면 천지차이다. 에펠탑 바라보듯, 좋아요 버튼을 누른 사람의 면면을 바라봤다. 언제 이렇게 많은 좋아요가 달렸지? 신기함을 느끼며 글을 읽었다. 도대체 어떤 점이 차이를 만들었을까 궁금했다.


 일 년 가까운 시간, 많은 발전이 있었다 자평했다. 많이 썼다. 분량만 놓고 보면 프로 작가 뺨 몇 번 쳤다. 페이스 무너지는 일 없어 꾸준히 써왔다. 단지 그만큼의 열정과 노력을 쏟진 않았다. 꾸준함을 유지하기 위해선 부담을 덜어야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빠르게 쓸 수 있는 글 위주였다. 빨리 쓴다고 해도 크게 모자라단 기분이 안 들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평가했기 때문에 신경 쓸 필요를 못 느꼈다. 동호회 공통 주제로 쓰는 글 역시 빠르게 썼다. 남들과 비교해서 모자라단 생각을 했던 과거엔 며칠에 걸쳐 퇴고하고 준비했다. 그러나 자신감이 붙고, 익숙해진 지금은 적당한 기분으로 공통 주제를 제출한다. '이 정도면 부끄럽진 않겠다.'


 예전 글에 새삼 놀랐다. 막연히 경험이 덜한 당시기에 글이 별로일 거라 지레짐작했다.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구리지 않았다. 되려 요즘에 쓴 글보다 나았다. 짜임도 있었고, 정돈된 인상을 줬다. 구성과 퇴고에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덧붙여 가벼운 마음으로 쓰는 지금과 다르게 진지했다. 목적의식이 강했다. 더 깔끔하고 인상적인 글을 써야지. 누가 봐도 잘 썼다고 생각할 정도의 퀄리티를 갖자. 그 기준을 맞추기 위해 자료 조사도 열심히 했다. 지금은 머릿속에 있는 것을 단순하게 쉽게 전달하기 위해 툭툭 던진다.


 이번 문단의 주제는 변명이다. 몇 가지 변명하자면, 빠른 글쓰기는 꾸준한 글쓰기를 위한 노력이었다. 만약 부담을 갖고 기준을 높이면 글도 몇 개 못 썼을 것이다. 편하게 쓰는 성향 때문에 이렇게 다양한 주제의 글이 나올 수 있었다. 굉장한 글을 써야지 라고 생각했다면, 현실과의 괴리에 좌절하고 랩탑을 꺼버렸을 것이다. 두 번째 변명은 글쓰기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변명이라기보다 글쓰기의 목적성에 대한 이야기다. 내게 쓰는 행위엔 발전 없는 삶, 소모되는 하루에 대해 반성하는 의미, 혹은 치유의 의미가 있다. 치유 시간에 되려 상처 입으면 목적과 맞지 않는다. 남에게 창피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 기대치를 맞춰놓고 그 안에서는 마구잡이로 지른다. 투수라고 치면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 폭투하는 셈이다. 물구나무서서 던져도 스트라이크, 뒤로 던져도 스트라이크, 굴려 던져도 스트라이크, 땅에 바운드해도 스트라이크다. 심판이 너그러워서 웬만하면 볼 판정을 안 한다. 냉철하게 비판하는 타자도 없다. 야 똑바로 던져!라고 누군가 말해주지 않는 한 폭투를 계속할 것이다. 사실 내 투구에 누군가 불만을 표출하면 그에 따른 변명을 할지 모른다.


 직접 보고 느껴야 변한다. 과거의 나는 꽤나 괜찮은, 나름 울림 있는 글을 썼구나. 뿌듯한 한편, 그 글들을 요즘 글을 향한 회초리로 사용한다. 요즘엔 구성에 노력을 쏟지 않아 글의 메시지가 가진 힘이 약하다. 어딘가에서 들어볼 만한 내용으로 점철된다. 구성에 시간을 쏟고, 글감에 힘을 싣는 자료가 많아야 메세지에 힘이 실린다. 대충 구색은 맞췄으니 됐다. 글쓰기가 어느샌가 구색 맞추기가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이런 글을 쓰는 지금도 사실 큰 위기의식은 없다. 그래서 이런 주제에서도 스피드를 즐긴다. 한때 화제였던 샛노란 머리의 오렌지족 양아치처럼, '야, 타!'라고 외친다. 블로그 창이 열리면 손가락에 시동을 걸고, 네비에 목적지 찍듯이 1분도 안 돼 모든 문단 구상을 끝낸다. 그리고 시작 시간을 표시하는 동시에 액셀을 밟는다.

3:43  끝


 -추가


 내가 쓰는 자기반성 글의 웃긴점은 진지하게 반성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담는단 사실이다. 단지 자신에게 물음을 던진다. 너 이런 행동을 했잖아. 반성해야 하지 않나? 반성할지 말지는 쓰면서 생각해보자. 일단 이런 순서로 주제를 다뤄보자. 하고 문단 구성을 한다. 이 글의 경우,


보통 글쓰는 모습

예전글봄

퀄 좋음

요즘 시간 안 써. 몇가지 핑계

그래도 좀 신경써야지


 5문단으로 계획하고 쓰다가 느낀 게 있으면 덧붙이기로 정했다. 내 글쓰기 태도에 크게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항상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반성은 진실된 게 아니다. 단순히 하나의 소재로써 다뤘다. 그간의 행동을 글에서 다루고, 쓰는 중간에 진짜 문제로 판정되면 앞으로 행동을 조심하면 되는 일이다. 이번 글은 진짜 문제는 아니었다. 그래서 변명 문단을 쓰며 맞아 맞아 맞장구를 쳤다. 구조를 짜고 방향을 정해도 그 안에서 메세지가 변한다. 정해진 트랙을 돌려고 짜는 구조를 짜지만, 들여다보면 즉흥적인 요소가 강하다. 쓰면서 주제를 바꿔버리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땐 전문을 고치는 게 귀찮아서 살짝 뉘앙스만 바꾼다.

 

 글에 마침표를 남기고 발행 버튼을 눌렀다. 예전에 쓴 글을 읽고 한 자기 반성에 대한 글인데, 너무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재밌었다. 부정적 뉘앙스의 어휘를 사용해 잘못된 방식으로 글을 쓴다는 인식을 주려고 했지만, 실은 크게 문제될 게 없었다. 긍정적 어휘를 사용해서 다시 표현하면, 이렇게 쓰면서 날것의 느낌, 자신만의 색체가 강해진다. 이번엔 자신을 설득하지 못한 글이었다. 문제제기를 하는데 그쳤다. 다만 이렇게 몇 분 전의 생각을 객체화해서 다시 다루는 작업이 가능해졌다. 오 몹시 전위적이고 새로워. 이런 의의 발견이 있다. 엄청 또라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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