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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Aug 20. 2017

열의 특성으로 본 인간관계




왜 하필 열과 인간관계냐고? 절대 파운틴의 공통 주제가 '열'이기 때문은 아니다. 쓸 게 없어 억지로 짜낸 주제가 열과 인간관계이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는 인간을 해석하는 여러 기술을 갖고 있다. 어떤 기술은 과학적 가설과 실험,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글과 이성이라는 탁월한 거름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 도구를 통해 열이 갖고 있는 여러 이미지와 사람 사이의 관계를 설명할 예정이다. 왜 하필 열과 인간관계냐고? 절대 파운틴의 공통 주제가 '열'이기 때문은 아니다. 쓸 게 없어 억지로 짜낸 주제가 열과 인간관계이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열은 보통 온도가 높은 상태를 뜻한다. 높은 온도는 낮은 온도로 이동하는 성질이 있다. 뜨겁게 달궈진 냄비를 맨 손으로 잡았을 때, 냄비의 뜨거움은 상대적으로 차가운 인체로 이동한다. 인간의 살갗이 형태를 보전하고 있으려면 특정 온도 사이에 있어야 한다. 냄비의 온도는 그 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에 이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열에 인한 피부의 손상이 발생하고, 정도가 심하면 혈관, 표피를 비롯한 뼈와 근육까지 영향을 받는다. 정도가 심한 경우, 직접 마찰한 부위뿐만 아닌 목숨을 위협할 수준의 합병증을 불러온다. 손상된 피부 층에 따라 화상의 심각도를 나눈다. 3도 이상의 화상은 자연 치유가 안 된다. 


이성관계는 보통 한쪽의 호감으로 시작한다. 상대의 매력을 인식하면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이 뜨거운 가슴을 상대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다. 자신이 갖고 있는 마음의 온도가 상대에 전이되길 바란다. 그 마음의 강도가 다른 증상을 이끌어낸다. 만남과 결혼이라는 해피엔딩이 될 수 있고, 일방통행이 지속되어 한쪽에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 호감의 부정적 결과는 해프닝으로 넘기는 1도 거절부터 치유가 안 될 정도의 마음의 상처를 입는 4도 거절까지 있다. 


접촉을 통한 방법 외에도 온도를 높이는 방법이 있다. 자신의 신체를 연소 대상으로 삼아 열을 내는 것이다. 분신이란 말로 불리며, 인화성이 높은 물질을 몸에 뿌려 인화한다. 주로 개인 혹은 단체에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행해진다. 아름다운 청년, 열사 전태일이 택한 방법으로 유명하다. 대개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할 수 있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문제에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 


한국에선 전통적으로 사제관계를 특별한 것으로 인식한다. 전과 다름없이 일방적인 교육을 강요하는 시스템에서 학생은 주입식으로 지식을 쌓는다. 다양한 사고가 억압되고 획일화되는 과정을 거치며 진학을 위한 맞춤 인간으로 탈바꿈한다. 반대하는 몇몇은 시스템의 폭압에 맞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개인의 힘으로 시스템을 바꿀 수 없고, 말이 통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럴 때 자퇴와 개천용 테크트리라는 극단적 방법을 통해 적극적으로 반기를 들 수 있다. 개천용의 존재와, 반대 사례의 사회 시선에서의 폐급 인간의 존재가 이목을 집중시켜 변화를 촉구한다.  


인화성 높은 물질을 통하지 않고 온도를 올리는 사람도 있다. 바이러스로 걸리는 호흡 계통의 병인 감기가 일반적인 예다. 주 증상은 코가 막히고 머리가 아프고 열이 난다. 바이러스가 살기 좋은 온도는 33~ 35도 사이인데, 신체에서 바이러스가 활개 치는 것을 막기 위해 온도를 올리는 것이다. 체온이 38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면역세포들은 되려 활발히 움직인다. 결국 열이 나는 것은 신체가 바이러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뜻이다. 병원체의 공격 때문이 아닌, 병원체를 공격하기 위함이다. 


겉도는 아이들이 많은 세상이다. 자신을 억압하는 부모의 존재가 방해되고 거슬린다. 수시로 답답함이 폭발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듣지 않고, 원하는 것을 제공하지 않는다. 재미없고 따분한 생활을 강요하고, 책상 앞으로 등을 떠민다. 마치 자신의 어려움이 그들의 즐거움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그러나 결국 그런 모든 어려움은 그들을 위함이 아닌 자신을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나를 억압하는 것이 사실은 더욱 자유로운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장치다. 


인간관계 외에도 열의 특성을 통해 많은 인간의 모습을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의 모습, 자연의 질서, 인성, 커피의 특성 등을 말할 수도 있다. 마음만 먹으면 공통점을 찾고 어떻게든 끼워 맞출 수 있다. 사실 비틀즈 코드라는 예능에서 평행이론이랍시고 말도 안 되는 공통점 끌어오던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느끼고, 이야기하고 싶은가의 문제다. 이번 주제 '열'의 경우엔 내키지 않고, 공감하지도 않았다. 쓰긴 쓰지만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없었다. 마지막 문단을 통해 이 글의 주제가 열과 인간관계가 아닌, 억지로 쓰는 글의 지루함임을 밝힌다. 이런 영양가 없고, 쓸데없이 시간만 많이 잡아먹는 글이 나온 배경이다.  



 이 글의 주제가 열과 인간관계가 아닌, 억지로 쓰는 글의 지루함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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