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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Aug 22. 2017

이방인을 향한 무논리 소통

 안녕하세요. 저는 이방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글 위에서 조금 머물다 다시 떠날 예정입니다. 아마 저희 인연은 여기서 끝이겠지요. 만남과 이별을 동시에 나누는 관계, 즉 저희는 남입니다. 그러나 서로 소개하고, 말을 나눈다면 의미 있는 남이 되는 게 아닐까요? 여러분과 저는 스크린을 통해 마주하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볼 확률은 희박합니다. 이 블로그의 글은 한국말로 쓰여 있고, 한국 사람을 대상으로 운영니다. 여러분은 한국 말을 기가 막히게 잘 하는 외국인이거나 한국인일 테지요. 전자일 확률은 아주 낮습니다. 상식적으로 말이죠. 이민이 특별한 것이 아닌 시대라지만, 여전히 한국에 머무는 한국인이 많습니다. 저는 타국살이 하고 있습니다. 스쳐 지나칠 수도 없습니다.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주 업데이트하고 다양한 방식의 글쓰기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방문객 수는 굉장히 낮습니다. 이 적은 방문객들은 특정 키워드에 민감히 반응합니다. 주기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면, 모든 글의 조회수가 크게 차이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검색을 통해 글 하나만 휙 보고 나가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현실은 고사하고 온라인에서 조차 스는 인연입니다. 제가 하는 말에 어떤 흥미를 느끼지 못 했다면, 여러분은 첫 몇 문장을 보고 뒤로가기 버튼을 눌렀겠지요. 그분들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분들이 볼 수 없는 내용이군요. 어쨌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얼마나 먼 사람인지, 완벽한 남인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서로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고 관 뚜껑 닫을 예정입니다.


요즘 난 all right 네 생각 all right... 김예림의 all right을 듣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왜 하냐고요? 그냥이요. 어차피 스쳐 지나갈 인연인데, 논리적일 필요 없지 않습니까? 아무 의미 없습니다. 숨겨진 의미, 노래 가사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 나만 아는 김예림의 비밀도 없습니다. 날 좀 내버려두세요. 혹시 이 글이 보기 싫다면 당장 떠나도 좋습니다. 인터넷 창을 끄고, 게임을 하거나 외출을 하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카톡을 하거나 잠을 주무시거나 마음대로 하십시오. 여러분이 무얼 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혹시 댓글을 남겨 나와 의사소통을 한다면 특별한 존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안 그럴 걸 압니다. 이제 무엇을 말하려는지 가닥을 잡으셨나요? 그렇습니다. 아무말 대잔치입니다. 당신들이 모니터를 보고 뭐라 하든, 그 말은 나에게 전해질 수 없습니다.


김예림의 노래가 끝났군요. 다음 노래를 듣고자 합니다. 신청곡 있으신 분? 아무도 없는 것 같으니 제가 다시 한번 골라보죠. 김예림의 독특한 목소리를 오랜만에 들어 반가웠습니다. 멜로디도 익숙해서 흥얼거릴 수 있었고요. 그럼 비슷한 류의 노래를 들어볼까 합니다. 여성, 약간의 인디 느낌, 2010년대. 노래의 특징을 뭐라 정의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롤러코스터의 습관을 틀었습니다. 옛날 옛적에 만났던 친구가 추천해줬던 노래죠. 그 친구는 잘 살고 있을까요? 저야 모르죠. 이야기를 안 하는데. 캘리포니아 가보셨습니까? 샌프란시스코의 서퍼들과 햄버거집, 펍이 그립군요. 여유로운 동네 분위기는 우리를 현실에서 벗어나게 만듭니다. 사실 저는 안 가봤습니다. 그립다는 말은 거짓이죠. 다시 말하지만 이 글에서 논리를 바라지 마십시오. 제가 그리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라서요. 일면식 없는 여러분에게 도움되는 글쓰기 방법을 알려주거나 철학적 화두를 던져주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입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줄 지식은 없답니다. 데헷


귀여니를 아십니까? 한글 파괴의 주범이었습니다. 버디버디, 드림위즈 지니 시절이니 많은 어린 친구들은 모를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수준 미달의 이모티콘 범벅의 소설을 썼습니다. 한글 파괴를 포스트모더니즘이나, 자크 데리다의 해체주의로 봤다면 오해일 겁니다. 단순히 귀여워서, 특별해서 쓴 것이니까요. 그러나 그녀의 소설이 예술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예술은 창작자, 창작물, 감상하는 사람의 총칭입니다. 나에겐 예술이 아니었으나 누군가에겐 예술이죠. 저는 예술인의 모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가 예술인인가요? 이 글은 혼란 상태를 만들어 글 너머의 어떤 것을 보여주려는 특별한 시도가 아닙니다. 그냥 개소리죠. 왈왈왈왈. 데헷. 창작자인 저는 제가 써온 모든 글이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어떤 것도 예술일 수 있다. 입에 달고 삽니다. 다만, 자신을 예술가라 인정하는 순간 저는 민망함에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담백한 내가 없어지고 버터향 나는 새로운 자아가 발현하겠지요. 비예술인으로서 예술적 요소 없는 글을 계속 쓸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예술가가 아닌데 왜 예술인 모임에 참여했죠? 예술인이라는 자각이 없어도 모임에서 인정하는 몇 가지 활동을 하면 참여할 수 있습니다. 제 경우는 글쓰기란 취미를 갖고 있어 자격 요건을 충족시킨 것이죠. 답이 늦었네요. 참여한 이유는 자신이 예술가라는 자각을 갖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용케 이방인의 목소리를 여기까지 읽으셨군요. 칭찬합니다. '용케'란 말을 쓰며 어색함을 느꼈습니다. 참고로 용케는 용하게란 뜻입니다. 가끔 익숙했던 단어가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을 하죠? Semantic Satiation란 학술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반복적 신호에 일시적으로 둔감해지는 것입니다. 미시감이라 표현할 수 있겠군요. 이 글을 읽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신가요. 낯선 이의 낯선 이야기를 들으며 기시감을 느끼지 않나요? 그렇다면 나의 이방인을 향한 무논리 소통 방법론은 어디서 가져온 카피가 될 수 있겠군요. 그러나 그런 글을 읽어본 적이 없으므로 카피는 아닙니다. 공교로운 해프닝이 되겠군요. 저는 스타벅스 구석에 앉아 있습니다. 옆 테이블엔 일본 여자 두 명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일본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그녀들이 어떤 대화를 하는지 알 수 있지만, 무시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게 더욱 재밌습니다. 제가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나요? 착각하지 마십시오. 저와 님들은 남입니다.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면,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 글에서 나를 제대로 드러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네가 나를 알겠느냐.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그런 거지. 후반 가사는 몰라서 복사 붙여넣기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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