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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Aug 24. 2017

망할 잘 쓴 글

 잘 쓴 글을 써야 한다. 이게 무슨 말장난이지. 써야 그런지 아닌지 알지 가정이 잘못됐군. 잘 쓴 글을 쓰려고 마음먹으면 잘 써질까? 아니면 일단 쓰고 그 뒤에 가치 판단으로 인해 잘 쓴 글이 될까? 항상 자신에 말한다. 글로 유명해지고 싶으면 잘 써라. 모호한 개념의 잘 쓴 글을 강요했다. 좋아 잘 쓴 글의 개념을 찾아보자고. 주제가 명확하고, 표현에 군더더기가 없고, 다양한 관점에서 주제를 조망하면 된다.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면 더더욱 좋다. 오호라. 그럼 이렇게 글을 써야겠군. 잘 쓴 글의 체크리스트에 체크하는 항목을 늘리면서 잘 쓴 글과 가까워짐을 자축했다. 


아이쿠 이걸 어쩌나. 세상이 제시하는 조건에 부합하는 글을 쓰려하면 할수록 글 쓰기가 재미없어진다. 구글에게 부탁한다. '야 내가 이런 주제로 글을 쓰려고 하는데, 뭔가 있어 보이는 주장 몇 개만 제시해줘.' 누군가의 논문, 위키의 정의, 학술계의 합의된 의견, 뉴스의 통계 등을 끌고 온다. 오우야. 이거 상황에 맞게 넣으면 글의 무게가 늘겠군. 재미가 없어도 누가 칭찬은 해주겠다. 여기저기에 자료를 내 지식처럼 첨부한다. 이로써 나는 지식인, 21세기를 이끌 지성 중 하나가 되겠군. 후훗. 재미를 포기하고 멋을 취한다. 아 나의 멋에 취한다. 


오랜만에 글 쓰기 싫어 죽는 줄 알았다. 일을 일찍 끝내고 짐을 싸서 카페에 왔다. 보통 랩탑을 펴면 글쓰기를 시작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글을 썼다. 주제는 글 쓰기 귀찮음. 억지로 문단을 늘려 글을 끝맺었다. 남은 물론 자신에게도 영양가 없는 글이 탄생했다. 오늘은 24th August 2017이다. 매해 8월 24일이 되면 생일 축하해줘야 한다. 내년 그 날이 되면 까맣게 잊겠지. 지루하고 따분하고 열 받는 시간을 보냈다. 아오 시간 아까워. 잘 쓰려 노력할 때마다 이런 군더더기는 철저히 배척된다. 그리고 수동형 표현도 마찬가지다. 뭐! 배척'된다'라고?? 이런 멍청한 자식. 여기는 한국이야. 글이 배척한다고 표현하라고 무식한 티 내지 말고. 알았어.. 내가 미안해. 못 쓴 글이 보이는 특징을 보였구나. 반성해야지. 어머니 저 무식한 표현과 붕가할게요. 


그나마 글 하나 건졌다고 자위하고, 다른 사람의 글을 읽었다. 잘 쓴 글이란 이런 것이다 하고 제시해 줄 수 있는 몇몇 인사들의 글을 찾아 읽었다. 유시민과 메이저 신문사 주필의 글을 읽었다. 오늘따라 노잼이었다. 그 후엔 고전을 요약정리한 블로그를 찾아다녔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란 글의 정수를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는 대신 요약본을 읽었다. 이런 내용이었군. 내 시간 5시간 세이브했다. 정수를 이해했으니 됐다며, 다음 글을 외쳤다. 그러다 금방 기가 빨려 읽기를 포기했다. 


다시 글을 썼다. 내 글이 아니고, 누군가의 글에 댓글을 남겼다. 신랄하게 비판했다. 현실에서 성인군자인 척 하지만, 온라인 세상으로 넘어오면 얘기가 다르다. 뭐라고!!! 너의 주장엔 공감할 수 없어. 이게 뭐야 주장에 근거가 없잖아!!! 당장 한 소리 해야겠군. 글을 쓰며 기분이 고조됐다. 역시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는 이렇게 즉흥적이고 모난 게 있는 글이야. 흥을 유지하기 위해 와인을 홀짝거렸다. 와인 한 병의 용량은 보통 750ml이다. 500ml를 한 시간에 걸쳐 마셨다. 적당히 취기가 오르자 누군가의 글 밑에 다는 댓글 아닌 온전한 내 글을 쓰고 싶었다. 


쥘 르나르의 뱀이란 시를 읽었다. 너무 길다.라는 4음절이 시의 전문이다. 취기가 오른 탓인지 시가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독후감 쓰기로 했다. 아오 구조는 뭐고, 자료 조사는 또 뭐야. 그냥 내 맘대로 싸지를 거야! 아오 신나. 흑흑 우울해. 감정 기복에 손을 맡기고 마음대로 타이핑했다. 실제로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체감상 20분 정도 쓴 것 같다. 20분 만에 7 문단을 썼다. 부담 없이 생각을 쏟아내니 배출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누구 신경도 안 쓰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시발~~~~~~~~~을 외쳤다. 의외로 그렇게 쓴 글이 맘에 들었다. 


글 잘 쓰는 사람이란 수식을 얻으려면 몇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쓰는 동안 신나려면 틀을 넘어야 한다. 뭐 때문에 글을 쓰는지 궁금해졌다. 특별히 잘하는 것 하나 없는 내가 남에게 자랑할 것이 필요해서인가? 아니면 글쓰기 자체가 즐거워서인가? 모든 글 부스러기를 블로그에 올리는 걸 보면 전자에 가깝다. 그래서 후자를 외면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렇지만 막상 쓴 글을 보면 완성도가 뛰어나지 않다. 기준에 맞추려 노력은 했지만, 글 하나에 모든 노력을 쏟는 게 아니고, 점진적으로 발전하자는 적당주의가 들어 있었다. 후자가 맞는 건가 싶다. 결국 중간을 추구하는데, 완성도 있는 글을 쓰는 것은 너무 큰 노력을 요구해서 못 한다. 막 쓰는 것은 창피해서 안 하려고 한다. 그러나 할 수 있다. 결국 억눌린 글쓰기 욕구를 극단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은 막 쓰는 것뿐이다. 


두 번째 의문은 누가 만든 기준에 맞춰야만 내게 잘 쓴 글인가다. 보편적 잘 쓴 글과 내가 만족하는 글이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나 혼자 맘에 드는 글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나만의 착각 속에 살기는 싫다. 남에게 잘 보이고 싶다. 여기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누군가가 제시한 방향에 맞는 글도 쓰고, 나 혼자 즐거울 수 있는 글도 쓰는 것이다. 거시적으로 만족도가 높은 글은 남 기준에 맞는 글이다. 보통 글쓰기 결론과 조금 다른가?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써라!라고 말하는 게 일반적인 조언이다. 그러나 내가 쓰고 싶은 글이란 개념이 모호하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은 즐겁고 싶어 쓰는 글과 남에게 잘 보일 수 있는 글 둘 다다. 그리고 멀리 보면 누군가에게 자랑할 수 있는 요소가 있는 글이 만족스럽다. 이 글은 전자다. 내가 쓰고 싶어서 막 쓰는 글이다. 그러니 안정적 구조, 교훈은 꺼지라고 한다. 나는 속물이고, 남의 인정이 필요하다. 누가 날 인정해주게 만드는 글이 내게 더욱 우수하다. 모든 기준에 부합해서 글쓰기 교과서처럼 '잘 쓴 글'의 표본이 되고 싶다. 결론을 봐도 망할 잘 쓴 글이란 주제도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너무 귀찮다 잘 쓰기가. 그래도 원한다 잘 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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