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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Sep 11. 2017

문과생의 과학 읽기






최근에 책 몇 권을 읽었다. 위키피디아도 좋고, 뉴스도 좋고, 브런치 작가들의 에세이도 좋지만, 한 가지 주제를 길게 이어가는 글을 보고 싶었다. 인터넷을 통해 보는 글은 길어 봤자 워드 30매 분량이다. 넓이에 몰입한 나머지 깊이의 중요성을 잊고 있었다. 이런 생각이 길어지자 독서광인 친구의 책장으로 눈이 갔다. 그녀의 책장은 우리가 흔히 고전이라 부르는 명저로 가득했다. 언젠가는 다 읽겠다 다짐한 유시민 추천 도서도 몇 권인가 있었다. 친구에게 허락을 구해 하나 골라 읽기로 했다. 책장 앞에서 선택 장애가 찾아와 친구에게 결정을 넘겼다. 그녀의 추천 도서는 포스트 민주주의였다. 21세기 여러 국가들이 겪는 민주주의의 부작용과 그 이유를 분석한 책이었다.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를 알려주는 친절함도 있었다. 독서의 맛이 괜찮았다. 친구의 결정에 신뢰를 보내며 두 번째 추천 도서를 손에 쥐었다.


친구는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과학자인 스티븐 호킹의 대표작 '시간의 역사'를 권했다. 이 책을 통해 기본적인 과학 이론을 정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친구의 책장엔 2 가지 버젼의 시간의 역사가 있었다. 하나는 작고 하나는 컸다. 친구가 설명했다. 큰 것이 개정판으로 다양한 시각 자료를 첨부했다. 개정판은 새로운 과학 이론을 추가했고, 잘못된 것으로 밝혀진 내용을 수정했다.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었다. 두꺼운 책을 들고 동네 카페로 향했다.


나는 빨간 책방의 애청자다. 빨간 책방은 책을 주제로 한 팟캐스트다. 읽지 못 하면 듣기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2년 전부터 청취하기 시작했다. 세 명의 패널은 균형 있는 독서를 위한 길잡이가 되어 줬다. 최근 에피소드에서 그들은 과학 도서를 읽어야만 하는 이유를 역설했다. 그들이 떠먹여 준 과학 이야기는 의외로 재밌었다. 그 에피소드 청취를 계기로 독서습관을 돌아봤다. 놀랍게도 제대로 된 과학 도서를 읽은 경험이 없었다. 독서 편식이 심각한 수준다. 친구 빨간 책방 패널에 대한 신뢰로 과학의 문을 두드렸다. 건너편에서 왜 이제 왔냐는 다그침이 들렸다. 걱정을 안고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시각 자료가 애를 썼으나, 내용을 온전히 머리로 배달하는데는 실패했다. 절반을 받고 절반을 반송시켰다. 반송된 지식이 아까워서 몇 번씩 반복해서 읽었다. 그래도 한계가 있었다. 과학 무지렁이가 이해하기엔 허들이 높았다. 왜 이 가장 빠른지, 어떻게 빛의 이동 거리를 측정하는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과정과 시간 등을 말했는데,  납득하지 못 했다. 단순히 진행 방향으로 눈알을 굴려 이해를 배제한 채 읽는 행위에 집중했다. 나중에 뭘 읽었는지 자문하고 이전 단락으로 돌아가는 수고를 반복했는데, 귀찮음이 주는 나름의 즐거움이 있었다.


독서하는 내내 자신이 과학에 무지했음과, 과학은 생각보다 재밌는 분야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전엔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사과와 뉴턴의 이야기를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였다. 글쓰기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란 표현을 비유로 사용했지만, 그 배경을 알지 못했다. 갈릴레오의 피사의 사탑 낙하 실험을 들었을 때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애 어른 구분 없이 아프겠다는 정도의 추론을 했다. 왜라는 질문이 뒤따르지 않아 과학적 사고는 제자리걸음이었다. 시간의 역사를 통해 사고의 톱니바퀴에 살짝 기름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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