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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Sep 11. 2017

띤떵훈 낙서와 놀이 모음집

브런치에는 올릴 수 없었던 수준 낮은 블로그 글 모음







1. 비유 도배하기


조금 전에 쓴 문과생의 과학 읽기란 글을 비유로 도배해보겠다. 나는 누구지? 내 이름을 말해봐. 그래 난 도베르만, 도배하는 사람이지. 컹컹... 왈왈... 으르르르. 시각, 촉각, 청각, 후각, 미각을 복합적으로 사용해야지. 





최근에 책 몇 권을 읽었다. 위키피디아도 좋고, 뉴스도 좋고, 브런치 작가들의 에세이도 좋지만, 한 가지 주제를 길게 이어가는 글을 보고 싶었다. 인터넷을 통해 보는 글은 길어 봤자 워드 30매 분량이다. 넓이에 몰입한 나머지 깊이의 중요성을 잊고 있었다. 이런 생각이 길어지자 독서광인 친구의 책장으로 눈이 갔다. 그녀의 책장은 우리가 흔히 고전이라 부르는 명저로 가득했다. 언젠가는 다 읽겠다 다짐한 유시민 추천 도서도 몇 권인가 있었다. 친구에게 허락을 구해 하나 골라 읽기로 했다. 책장 앞에서 선택 장애가 찾아와 친구에게 결정을 넘겼다. 그녀의 추천 도서는 포스트 민주주의였다. 21세기 여러 국가들이 겪는 민주주의의 부작용과 그 이유를 분석한 책이었다.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를 알려주는 친절함도 있었다. 독서의 맛이 괜찮았다. 친구의 결정에 신뢰를 보내며 두 번째 추천 도서를 손에 쥐었다.


최근에 마음의 양식을 몇 끼 먹었다. 위키피디아도 좋고, 뉴스도 좋고, 브런치 작가들의 에세이도 좋지만, 한 가지 주제를 물고 늘어지는 집요한 글이 보고 싶었다. 인터넷을 통해 보는 글은 길어 봤자 워드 30매 분량이다. 넓이를 편애한 나머지 깊이가 가출했다. 이런 생각이 길어지자 독서광인 친구의 책장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녀의 책장은 명저들의 쉼터, 명저의 부곡 하와이였다. 언젠가는 다 읽겠다 다짐한 유시민 추천 도서도 몇 권인가 있었다. 친구에게 허락을 구해 하나 골라 읽기로 했다. 책장 앞에서 선택 장애가 찾아와 친구에게 결정을 넘겼다. 그녀의 말이 가리킨 책은 포스트 민주주의였다. 21세기 여러 국가들이 겪는 민주주의의 부작용과 그 이유를 분석한 책이었다. 책은 조교가 되어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를 알려줬다. 한 수 배우고 하산하다 산 맛이 좋아 다른 산을 등반하기로 했다. 친구의 결정에 신뢰를 보내며 두 번째 등산 정모 장소를 물었다.




친구는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과학자인 스티븐 호킹의 대표작 '시간의 역사'를 권했다. 이 책을 통해 기본적인 과학 이론을 정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친구의 책장엔 2 가지 버전의 시간의 역사가 있었다. 하나는 작고 하나는 컸다. 친구가 설명했다. 큰 것이 개정판으로 다양한 시각 자료를 첨부했다. 개정판은 새로운 과학 이론을 추가했고, 잘못된 것으로 밝혀진 내용을 수정했다.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었다. 두꺼운 책을 들고 동네 카페로 향했다.


친구는 과학 지식계의 오체대만족, 스티븐 호킹의 대표작 '시간의 역사'를 권했다. 이 책을 통해 과학이랑 베프 먹었다고 말했다. 친구의 책장엔 2 가지 버젼의 시간의 역사가 있었다. 한 역사는 작고 한 역사는 컸다. 친구가 설명했다. 큰 것이 개정판으로 다양한 시각 자료를 첨부했다. 큰 시간의 역사는 역사가 짧고 작은 시간의 역사는 역사가 길다는 역설, 혹은 말장난은 무시하자. 개정판은 새로운 과학 이론을 추가했고, 잘못된 것으로 밝혀진 내용을 수정했다.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었다. 큰 놈을 들고 동네 카페로 향했다.






2. 분량 늘리기


 간단한 이야기를 조금씩 늘려갈 예정. 수식과 설정을 더해서 소설처럼 쓰기. 총 4단계로 만들고, 마지막엔 혼신의 힘을 다해 오버해서 표현하기. 기성 작가의 글처럼 비유 폭탄 쓰기.


1 단계

카페에서 커피를 시켰다.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다퉜다. 카페를 나서는데 핵폭발이 일어났다. 친구를 용서하기로 마음먹었다. 



2 단계

날이 추워 카페로 발길을 옮겼다. 롱블랙 한 잔을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이 고등학교 친구였다. 사이가 좋았었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틀어진 친구다.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10년 동안 얼굴도 보지 못 한 그녀였지만, 나를 알아봤다. 근황을 간단히 물어보고, 과거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어떠한 반성도 하지 않았다. 10년 전의 감정이 되살아나서 화를 냈다. 그녀도 억울한지 내게 화를 냈다. 기분이 좋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도 아무 말하지 않고 가는 나를 바라봤다. 문을 여는 순간, 긴급 공습경보가 울렸다. 모두 가까운 방공소, 지하로 대피하라는 경보였다. 몸이 불편한 친구를 데리고 카페에서 빠져나왔다. 


3단계

한강마저 얼어붙게 만드는 추위가 손을 뻗어 뺨을 할퀴었다. 추위를 피해 가까운 카페로 도망치듯 들어왔다. 석촌호수 산책로에 위치한 분위기 좋은 카페였다. 송파구 시민의 쉼터인 석촌호수의 정경이 계절을 보여준다. 몇 달 전만 해도 북적이는 인파에 발 디딜 틈 없던 곳이었는데, 같은 곳이 맞나 의구심이 든다. 궂은 날씨 탓에 카페 역시 한적했다. 커피와 난방기가 뿜는 실내의 온기를 느끼며 카운터에 섰다. 추운 몸을 녹이기엔 따뜻한 롱블랙 만한 게 없다. 중간 크기의 롱블랙을 주문하고, 히터와 가까운 창가 자리에 짐을 풀었다. 얼었던 두 뺨이 커피 향에 녹았다. 두꺼운 추위의 벽이 허물어지자 주위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돌리다 눈이 크게 떠졌다. 옆 자리엔 낯익은 얼굴의 여성이 앉아 있었다. 10년이 지났지만, 잊을 수 없는 얼굴. 자신도 모르게 짧은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휠체어에 앉은 그녀의 귀에도 내 목소리가 들어갔고,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10년의 장막 사이로 눈이 마주쳤다. 


어, 이진아. 너 이진이 맞지? 

 ... 정운이?

 그래 나 정운이야. 진짜 오랜만이네


그녀를 불러서는 안 됐다. 우리의 마지막이 살갑지는 않았다. 물은 엎질러졌고, 당황함을 숨기기 위해 대화의 끈을 이어서 감정을 덮었다. 어떻게 지내? 직장은? 석촌 호수는 왜 온 거야? 몇 마디 말이 오가며 흐릿했던 옛 사진 위 먼지를 털었다. 그녀는 나를 떠났고, 나는 남아서 아파했다. 그녀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소녀였고, 나는 그녀를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다. 결국 이별의 원인은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귀결이었지만 나는 그녀가 미웠다. 상처는 꽤나 오래 가슴에 남았고, 상처가 아무는 동안 고통 속에서 지냈다. 완전히 아물었다 믿었지만,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 말투, 대화할 때 상대를 빤히 보는 습관이 거인의 손이 되어 나를 고통 속의 시절로 던져버렸다. 상처가 되살아나고 말 속 가시가 점점 뾰족해졌다. 


왜 그때 나를 떠났는지 물었다. 그녀는 그럴 수밖에 없었단 말을 되풀이 했다. 그녀의 두 눈동자는 내게서 반가움을, 그리고 이제는 슬픔을 보는 듯했다. 이제는 웃으며 옛날엔 그랬지라며 추억을 돌아볼 줄 알았다. 한때의 해프닝, 과거의 유치한 자신을 이야기하는 해프닝이어야 했다. 지난 10년 내가 걸어왔던 길은 원점으로 돌아오는 원형 미로였다. 그 시절 교정으로 무대가 바뀌었다. 그녀를 다그쳤고, 그녀는 내가 정말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화가 나서 배역을 버리고 무대를 떠나기로 했다. 됐어, 그만둬. 지겨운 언쟁의 끝을 선언하듯 손바닥으로 탁자를 치고 자리를 일어났다. 그녀는 입을 꽉 다물었다. 차갑던 호숫가의 바람을 까맣게 잊은 듯 씩씩거리며 문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풍선을 바늘로 찌르듯, 칼바람이 상기된 얼굴을 찔렀다. 급격한 온도 변화에도 굴하지 않고 겨울 속에 크게 발을 내디뎠다. 한겨울 추위는 쓸쓸한 그날의 외로움에 비하면 봄이다. 차가운 실내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떠나는 발걸음보다 한 발 앞서 날 선 경보음이 카페 안팎을 덮쳤다. 


-국민 여러분 여기는 국민 안전처 민방위 통제소입니다. 실제 공습경보를 발령합니다. 실제 시간 우리나라에 실제 공습경보를 발령합니다. 


사이렌 소리에 귀가 먹먹하여졌다. 낯선 사이렌의 고음이 뭔가 잘못됐음을 알려줬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봤다. 그녀 역시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이 난리통에서 몸이 불편한 그녀가 마주한 당혹감은 자신 이상일 것이다. 길었던 사이렌 소리가 멈추고 안내 방송이 이어졌다. 무언가에 홀린 듯 그녀에게 달려갔다


-극장, 운동장, 터미널, 백화점 등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영업을 중단하고 사람을 대피시켜 주십시오. 교통경찰과 훈련요원은 모든 국민이 지하 대피소로 대피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시기 바랍니다. 통제소의 안내에 따라주십시오. 이 방송은 실제 상황입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신속하고 질서 있게 지하 대피소로 대피하시길 바랍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카페의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현실을 해석하고 있었다. 어떤 놀라운 이야기보다 놀랍고, 어떤 당황스러운 이야기보다 당황스러운 현실이기에 상황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넋 나간 사람들의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고요의 폭풍이 깨진 순간은 바로 다음이었다. 모두의 핸드폰이 일제히 울렸다. 천둥소리에 반사적으로 귀를 막듯, 핸드폰 진동이 보내는 두려운 사실을 막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알람엔 긴급 알림 문자가 왔다. 


[00 텔레콤 긴급 알림] 금일 13시 21분경, 북한에서 용산 한미연합군 사령부를 타깃으로 핵무기 (히로시마급 추정) 한 발을 발사. 13시 24분 폭발 예정. 추가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용산, 강남, 서초 등지의 지역에서 최대한 벗어나길 바랍니다. 


글을 다 읽기 무섭게, 전파가 통하지 않는다는 알림 문구가 화면을 갱신했다. 고개를 돌리기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휠체어 손잡이를 꽉 잡았다. 차가운 손 위로 그녀의 떨리는 손이 올라왔다. 그녀의 지압에서 불안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4단계


못 쓰겠다.







3. 로컬 잡지사 투고


 '잡지사에 투고 한 번 해보지?' 


오늘 뭐하냐는 친구의 질문에, 글 쓰러 밖에 나간다고 대답했다. 전날도 글 쓰러 나가고, 그 전날도 글 쓰러 나갔다. 그 사실을 아는 친구는 전업 작가 다 됐다는 농담을 던졌다. 직업인과 비슷한 빈도로 쓸 거라면, 취미 이상으로 만들 것을 권유했다. 돈 받고 글 쓰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었다. '못 할 것 없지'라는 대답을 했다.


어떤 일이든 보상이 필요하다. 착한 일을 하면 칭찬받아야 하고, 일을 하면 돈 받아야 하고, 친구 생일 선물을 주면 생일날 선물 받아야 한다. 경제적, 정신적 에너지를 소비해 어떤 행동을 할 때 적합한 반응이 요구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이 정도로 많이 썼으면 상응하는 심리적 만족이나 경제적 대가가 필요하다. 소수의 블로그 구독자나 다른 플랫폼 구독자의 칭찬 정도론 부족하다.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 제대로 된 보상이 없다.


글 쓰는 데 투자한 시간이 인정받길 원했다. 파운틴에 가입했고, 브런치에 작가 등록을 했다. 여전히 부족하다. 적어도 동네 잡지에라도 정기적으로 투고하고 소정의 돈을 받는다면 모를까. 내 글엔 괜찮은 구석이 있다고 믿는다. 그게 착각인지 타인에게도 같은 반응을 불러오는지 궁금했다. 잡지사에 투고하는 것은 그에 대한 대답이 되리라 믿었다. 시의적절한 권유가 아닐 수 없다.


만약 돈 받고 투고를 한다면, 지금까지 써온 글과는 달라야 한다. 더 치열하게 사유해야 하고, 자료 조사를 해야 하고, 퇴고해야 하고, 구성을 짜야한다. 돈은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여겨도 무방하다. 그런 귀한 돈을 받는데, 지금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타이핑할 수 없다. 전문 글쟁이처럼 보여야 한다. 교보문고 가서 출판 서적 폈을 때 볼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의식의 흐름 기법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나 혼자 대화할 수 없다. 구글과 먼저 상의한 다음에 결과를 내야 한다. 가진 게 미천하다 보니 지식의 보고 구글 형님에게 손을 벌려야 한다. 그게 아니면 직업인 수준의 실력을 드러낼 수 없다. 


전국에 출판하는 메이저 잡지에 쓸 수준을 못 되지만, 동네 주민들을 위한 잡지에 칼럼을 싣기는 부족함이 없다. 긍정 에너지를 모두 끌어올려 자격 요건을 충족한 사람이 됐다. 인정이 이 정도로 고팠나? 최근에 쓴 글을 보면 인정받고 싶어 미친 사람 같다. 사실 내 글을 원하기만 한다면 칼럼 투고도 무보수로 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중요하다. 학벌처럼 글쓰기에도 타이틀이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실제 만난 사람에게 취미로 글 쓰고 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글쓰기란 취미가 멋진 척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왕에 밝혀질 것이라면 멋진 수식이 필요하다. 저 지역 잡지사에 투고합니다. 








4. 예술을 뭐라고 생각하세요?


예술인 모임에 나가면서 예술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아진다. 많은 기회를 얻으면서도 명확하게 이게 예술이다 라고 말할 수 없다. 객관적 기준의 예술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내 주관의 예술을 말하는 것임에도 어려움을 느낀다. 이번 시간은 자신의 예술관과 정의를 정립하는 글쓰기다. 


우선 사전적, 학술적 정의를 나열한다. 예술은 문화의 한 부분으로 창작, 감상 활동과 결과물의 총칭이다. 감상하는 것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하나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예술을 해석하는 것은 인문학이다. 예술의 중심 개념은 아름다움이다. 이 아름다움이란 모호한 개념을 놓고 크게 두 가지 갈래가 있다. 주관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과 객관적 아름다움, 그러니까 우리 시대에서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미의식을 표현한 것들이다. 주관적 아름다움, 아이디얼리즘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헤겔이고, 객관적 아름다움, 리얼리즘을 주장하는 대표 인물은 아리스토텔레스다. 여전히 두 입장이 공존하고 있다. 예술이란 영어 단어(Art)의 의미는 기술이다. 한자어 예술 역시 기술이란 의미가 포함된 단어다. 어원으로 해석하자면, 무언가를 창조하고 생각을 표현하는 기술이 예술인 셈이다. 


헤겔의 미학을 연구한 리치오토 카누토에 따르면 예술을 7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연극 회화 무용 건축 소설 음악 영화 순이다. 요즘에는 사진을 8 번째, 만화를 9 번째에 두는 것으로 의견을 통일했다. 10 번째 항목에 무엇을 놓을지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결국 예술의 범위는 점점 늘어난다. 회화나 연극, 춤 모두 예전에는 저급한 것으로 취급받았다. 예술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그 시대상과 문화, 인물, 사건 등의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해 가치를 평가한다. 지금 예술이라 평가받지 못 하는 장르도 언젠가는 예술이 될 수 있고, 예술 장르 중 같은 표현이라도 가치가 변할 수 있다. 


세상의 정의에서 예술이 이거라고 정확히 정의 내리길 꺼려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가변적이고, 주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고등 예술 저급 예술을 구분하는 것도 언젠가는 의미 없는 일이 될 수 있다. 대중 예술이 상업화된 예술로 자본가의 영향을 많이 받아 저평가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반박할 거리가 많다. 예술이라 불리는 것들 중에 자본의 논리와 전혀 무관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 예술은 거의 없다. 먹고살아야 예술도 존재한다. 예술의 소비자가 누구냐에 따라 예술의 등급을 나누는 경향이 있다. 


이런 입장 속에서 더 공감 가는 쪽에 손을 들며 주관을 쌓아야 한다. 큰 맥락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얼리즘보다는 헤겔의 입장이 더 와 닿는다. 절대적인 진리, 신을 부정하고 적극적이며 자기 주관적인 삶의 중요성을 역설한 니체에게 매력을 느끼는 나로선 당연한 생각이다. 절대불변의 가치는 없고, 모든 것은 바뀐다. 변화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두고, 누군가의 가치 평가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것이 나의 예술관과 가깝다. 권위자가 말하는 가치가 절대적일 순 없다. 역사가 말해주듯이. 결국 예술을 간단히 말하면 '탐미'가 되겠고, 주관적이고 다채로운 아름다움에 대해 표현하고 생각을 나누는 것이 예술 향유가 아닐까 한다. 그러나 예술임을 자신에게 납득시키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예술이라 인정하지 않고 하는 행동은 예술이 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을 예술로 불러야만 하는 불상사가 생긴다. 최소한의 기준을 자각으로 둔다. 아름다움에 몰입하지 못 한다면 부족함이 있다. 온전히 아름다움을 인식하고 즐겨야만 예술이 아닐까? 같은 맥락으로 누군가에게 아이돌 직캠 감상이 예술 활동일 수 있다. 자신이 확고하게 예술이라고 믿는다면 예술인 것이다.







5. 글 쓰기 싫은 날


 보통 카페에 와서 랩탑을 펴면, 무언가를 쓴다. 오늘은 의욕이 없다. 랩탑을 펴서 블로그 창을 띄웠지만 내키지 않는다. 구상이 귀찮고, 주제 선정이 귀찮다. 내게 글쓰기의 재미는 귀찮음을 포용한다. 매번 그렇지는 않단 걸 깨닫는다. 그러면서도 이를 주제로 타이핑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다. 내 글엔 규칙이나 기준이 많다. 문단은 최소 5개, 각각 3줄을 넘어야 한다. 논리적이어야 한다. 문장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표현을 지양해야 한다 등등. 글이 짧으면 어떻게든 몇 문장 끼워 넣는다. 보기에 빈약하지 않아야 한다. 몇 가지 글쓰기를 억압하는 것들이 있다. 이런 기준이 그중 하나다.


2년 전에 글쓰기 모임 활동을 시작하며, 잘 쓰고자 하는 욕심이 생겼다. 중간은 해야 한다며 다그치고 글 구상과 퇴고, 자료 조사에 임했다. 최근에 두 번째 글쓰기 모임의 실질적 리더가 됐다. 참여하는 인원이 적어 딱히 '운영'이라 불리는 활동을 하진 않는다. 글 쓰고 싶을 때, 언제 어디서 하는지 고지하고 누군가 오면 같이 쓰는 정도다. 그러나 실력 있는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 잘 써야 한다는 욕심이 강해졌다. 의식의 흐름 방식으로 쓴 글의 경우엔 회원들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글쓰기 모임을 만든 사람으로서 글에서 만큼은 그들보다 뛰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허접함이 드러나면 안 된다. 이런 부담감이 두 번째 억압이다.


기력도 없고 피곤하다. 전날 많이 자서 수면에 부족함이 없을 텐데도 그렇다. 외출 몇 분 전에 식사를 한 탓인 것 같다. 라면 한 그릇에 밥까지 말아먹었다. 배부르게 먹으면 몸이 나른하다. 몸이 섭취된 막대한 칼로리를 처리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친구는 음식물에 있는 대부분의 칼로리가 소화 활동만으로 소비된다고 한다. 그 정도로 격렬한 활동이니 진이 빠지는 게 당연하다. 몸의 피로에 공감하며, 다른 곳에 집중하지 못 하는 게 당연하다 말한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평소와는 다르다. 


글 쓰다 말고 딴짓하기를 반복한다. 앉은 자세가 불편해서 양다리의 위아래를 바꿔가며 꼰다. 유튜브에 접속해 노래를 켠다.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서도 카톡을 확인한다. 아~ 쓸 말 없다. 그만 쓰고 싶다. 속으로 되뇐다. 한 문단만 더 쓰고 끝내자며 스스로 다독인다. 거의 다 왔다. 이제 조금만 더 쓰면 5 문단은 채운다.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5 문단은 있어야지. 내가 만든 기준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해야지. 


누구도 쓰라고 강요하지 않는데, 왜 이렇게 강박적으로 무언갈 쓰고 읽으려 할까? 되도록 많은 생각을 남기려 한다. 집에 있으면 집중이 안 된다는 이유로 글을 쓰지 않는다. 집에 머무는 날의 자신의 보이는 열등한 생산성이 싫어서, 그 보상 심리로 외출하는 날엔 무언갈 꼭 쓰려한다. 글쓰기에 있어선 수집가 기질이 있다. 허공에 비산 할 생각의 조각들을 꽉 붙잡아 전자 신호로 바꾼다. 글에는 그것들이 담겨 있다. 여러 조각을 맞춰 완성된 나를 보고 싶어서인지 모른다. 블로그의 늘어가는 글을 보면 흐뭇하고 만족스럽다. 그 만족 때문에 오늘 같은 무기력한 날마저 글 쓰는 게 아닐까? 







6. 와인 드링킹


 집에서 와인을 싸왔다. 스타벅스 구석에 앉아서 와인을 마시며 글을 쓰고 있다. 공중도덕이 부족하다. 허용되지 않는 행위이기 때문에 안 하는 게 맞다. 도덕성 결여지만 불가능을 불태워 가능으로 만들었다. 다른 고객들에게 불쾌한 기분을 주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티 나지 않게 마시고 있다. 얼마 전에 과일 쥬스를 구매했다. 그 통을 재활용했다. 과일이 그려져 있는 패키지에 보라색 액체가 들어 있으니, 누구라도 포도 쥬스라 생각할 것이다. 포도로 만든 것은 맞기 때문에 완벽한 거짓은 아니다. 약간의 알콜이 있는 것만 빼면 말이다. 와인과 글쓰기의 조합은 꿀이다. 손가락이 마음대로 자판 위를 누빈다. 까다로운 기준을 박살내고 과감히 문장을 늘린다. 


와인은 합리적인 음료다. 용량 대비 효율이 좋다. 맥주로 알딸딸함을 느끼려면 4 병 이상은 마셔야 한다. 와인은 500ml면 충분하다. 주스 공병엔 1L의 액체를 담을 수 있다. 1/3 정도를 마신 상황인데, 벌써 기분이 좋다. 앞으로 더 좋아질 수 있다. 2번 문단은 와인의 효율에 대해서니 조금 더 글을 남겨야 한다. 와인은 비싸다는 편견이 있다. 한국에선 롯데마트에서 이벤트 할 때 만 원짜리 와인을 사곤 했다. 만 원이면 맥주 12캔, 소주 10 병 정도를 살 수 있었다. 그런 계산을 하며 만든 편견인 것 같다. 호주 와서는 오히려 가성비 갑 알콜이다. 군이라고 불리는 팩 와인을 사면, 몇 달 내내 마실 수 있다. 군은 질 낮은 대용량 와인을 말하는 속어로, 4L에 15불 정도 한다. 한 병에 13불 하는 한국 소주에 비하면 양반이다. 알콜 함유량을 기준으로 보면, 최강의 가성비다. 물론 비싼 건 비싸다. 안 사면 된다. 


와인을 자주 마시지만 잘 알지 못 한다. 그래서 훌륭하다. 와인 맛을 아는 친구들의 경우, 싸구려 와인은 입에 맞지 않아 못 마신다고 까탈스럽게 군다. 나야 100불 와인이던 5불 와인이던 맛 차이를 모른다. 소비뇽 블랑, 로제, 쉬라즈 등 종류는 뭐가 그리도 많은지. 적당히 떫고 적당히 달면 그걸로 된다. 이름 기억하기도 어렵다. 결국 싸고 양 많은 와인 하나 사서 두고두고 편하게 마실 수 있다. 기준이 없는 정도여서 웬만하면 말한다. '오우 맛있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른 돼지가 행복하다. 와인에서 만큼은 돼지이고 싶다. 


깊게 숨을 내쉬면 코에서 포도 향이 물씬 풍긴다. 입 안에서는 기분 좋은 떫음이 맴돌고 있다. 와인을 즐기는 삼 단계가 있다. 향으로, 맛으로, 목 넘김으로. 의식하고 먹으면 3 단계로 맛볼 수 있지만, 의식 안 하면 그냥 마신다. 싸구려 와인에 삼 단계는 사치다. 한국에 와인이 보급된 시기는 1990년대다. 일제 강점기 때는 극소수 사람을 위한 사치품이었다. 여전히 이미지 위주의 홍보와 스노비즘 환자들의 터무니없는 가격의 와인 소비가 미디어에 노출되며 사치품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싸구려 대용량 와인을 몇 년 동안 마시면서, 내게 서민의 친구의 이미지를 갖게 됐다. 


취기가 좀 떨어진 건지 논리와 구조의 안정성을 신경 쓰고 있다. 초반에 술술 나온 글이 갑자기 정체한다. 이 문단은 와인의 이미지, 이 문단은 와인의 가격대, 이 문단은 와인 취향에 대해 써야지. 그러다 보니 다른 쓰고 싶은 내용이 있어도 문단 주제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제한다. 나의 메타인지능력 풀파워로 가동해서 억지로 논리 기술 가동을 멈춘다. 얼굴에 열이 오른다. 아마 거울을 본다면 볼 빨간 서른 살을 볼 것이다. 얼굴이 빨개지면 여드름 흉터가 부각된다. 더 못생겨 보여서 싫은데, 어쩔 수 없다. 잘생기길 포기하고 즐거움을 취한다. 여기서 취한다는 말은 갖겠다는 뜻이다. 


예전엔 술 마시면 감성적으로 돼서 허세 글을 남겼다. 멋진 비유를 들어가며 생각을 표현했다. 청춘의 아픔, 청춘의 고민, 청춘의 방황 등을 말이다. 어려운 한자어와 그 자체로도 감성 터지는 단어들을 사용했다. 이제 청춘 안정기에 들었는지, 그때의 표현은 나오지 않는다. 사실 쓰기도 싫다. 






7. 스시



 12:46분 시작


 내 모니터 스피커 1700 스시, 넌 알아도 못 사지. 스윙스가 수장으로 있는 저스트뮤직의 2017 컴필레이션 앨범, 우리효과의 'Sushi'란 곡을 듣고 있다. 저스트뮤직의 뮤지션들이 각자의 개성을 살려 곡의 맛을 낸다. 개인적으로는 블랙넛의 일본어, 한국어 혼용 벌스가 좋다. 일본어와 한국어로 라임을 맞추는 것은 드물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일본어를 사용해서 재치 있게 포부를 전했다. 스시란 곡을 듣다 보니, 내게 있어 스시는 어떤 인상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럼 스시라는 말에 뒤따르는 이미지를 적어보겠다. 


 4년 전, 호주 땅을 밟게 되며 시작한 일이 스시집 키친 핸드였다. 아침 일찍 출근해 스시를 말았고, 낮에는 튀김 요리와 점심 특선 요리를 만들었다. 그전부터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말할 때 스시를 첫 번째로 꼽았다. 생선을 좋아하지도, 회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초밥을 최고의 음식으로 꼽는 자신이 이상했다. 그러나 초대리한 밥에 올라간 회는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한국에선 고급 음식이란 인상이 강했기 때문에 그 격이 올라간 이유도 있다. 초밥집에서 일하며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매일 맛볼 수 있다 믿었다. 그러나 호주의 스시는 한국의 초밥과 느낌이 사뭇 달랐다. 제대로 된 니기리 스시는 일본 회전초밥집이나 일반 레스토랑에서 판매했으며, 스시 레스토랑이라 불리는 곳에선 김에 싼 노리마키를 중심으로 팔았다. 니기리 스시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침에 만들어놓은 제품을 포장해서 그날 하루 종일 판매했기 때문에 퀄리티가 낮았다.


 결국 호주에서 스시는 바쁜 직장인이나 돈 없는 학생들이 가볍게 한 끼 때우는 음식이다. 스시라 하면 대부분이 김말이 초밥을 떠올린다. 한국인이 갖고 있는 이미지 속 스시는 '니기리'라는 수식을 붙는다. 초밥을 직접 만들면서 얼마나 많은 설탕이 들어가는지 알게 됐다. 초대리를 만들 때마다 설탕을 포대째로 넣었다. 결국 스시에게 정크푸드 이미지를 씌운 호주인들의 입장을 이해했다. 건강식과는 거리가 있었다. 스시집에서 보내는 반년 동안 스시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의 수좌에서 내려와야 했다. 


 호주에 오기 전, 일본에서 일 년을 보냈다. 절약을 생활화해서 외식을 거의 안 했지만, 주변 가게 사장님들과 회식을 하는 경우엔 빼지 않았다. 한 달, 혹은 두 달에 한 번, 이자카야나 스시집에서 파티를 했다. 그중 인상에 남는 초밥집이 있었다. 프랜차이즈 초밥집이 아닌, 오랫동안 동네에서 자리를 지킨 개인 영업장이었다. 프랜차이즈와 다르게 대량으로 식재료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 단가가 높을 만도 한데 꽤나 합리적인 가격에 초밥을 판매했다. 게다가 당시까지 갖고 있었던 초밥의 이미지를 크게 바꿔놨다. 일본에선 밥 위에 올라가는 생선이나 알, 고기 등의 재료를 네타라고 부른다. 그 네타의 두께가 통념을 완전 박살 냈다. 연어의 두께가 2cm 정도로 가로로 봤을 때 밥 반, 네타 반이었다. 밥과의 조화가 환상적이었고, 식감은 어찌나 좋은지 입에 넣자마자 녹아 없어졌다. 


 스시집을 떠나온 지 어느새 3년 하고도 반이 지났다. 다시 스시는 좋아하는 음식 순위를 매길 때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멜번에 와서 다양한 국적의 음식을 접하다 보니, 세상엔 많은 선택지가 존재함을 깨달았다. 저마다의 맛과 특색으로 입을 즐겁게 해준다. 그래서 일등 자리는 공석이 됐다. 다만 5년 넘는 외국 생활을 돌아볼 때 스시는 좋은 소재가 된다. 스시집의 풍경, 스시의 모양과 맛을 떠올리며 즐거웠던 당시가 떠오른다. 재밌는 게 음식 얘기를 하면 그 음식이 먹고 싶어 진다. 오늘 저녁은 초밥을 먹어야겠다. 


1시6분 끝.  





8. 스피드 레이서


3:13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비트를 타는 아웃사이더와 마찬가지로, 누구보다 빠르게 하얀 액정 위에 검은색 글씨를 새긴다. 타이머를 맞춰 놓고 준비 시작. 100미터 달리기 경주처럼 심판의 총성이 울리면 전력 질주한다. 퇴고도 필요 없어. 많은 것을 털어놓을 거야. 달리기와 다른 점은 많은 발걸음으로 족적을 남기는 것이다. 달리기에서 큰 보폭으로 결승점에 도착한다면, 나는 정해진 거리를 같은 시간에 더 많은 발걸음으로 도착한다. 매일 20분이란 게시판도 빠르게 쓰는 훈련을 위해 만들었다. 이글도 3시 13분에 시작했다고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끝내는 시간을 체크해서 글 마지막에 덧붙인다. 목표 시간인 20분 안에 5개 전후의 문단을 박아 넣어 오늘도 내가 이겼다며 자축한다. 


  오늘도 속주를 위해 랩탑을 챙겨 카페로 향했다. 가는 길에 예전에 쓴 글을 훑어봤다. 브런치 글이 가독성이 좋기 때문에, 브런치를 통했다. 브런치는 상대적으로 글이 적다. 시작점이 블로그보다 늦기 때문이다. 몇 번의 스크롤 움직임으로 첫 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의미부여란 글이었다. 새로운 플랫폼에서 쓰는 첫 글이므로 글쓰기 자세와 지향해야 할 이상을 다뤘다. 드문드문 좋아요 버튼이 눌려서 어느 정도인지 몰랐는데, 첫 글엔 좋아요 표시가 12개나 있었다. 요즘에 쓰는 글에는 1,2 개가 전부다. 언제 이렇게 많은 좋아요가 달렸지? 신기함을 느끼며 글을 읽었다. 도대체 어떤 점이 좋아요 수의 차이를 만들었을까 궁금했다. 


 일 년 가까운 시간, 많은 발전이 있었다 자평했다. 우선 많이 썼다. 페이스 무너지는 일 없어 꾸준히 써왔다. 단지 그만큼의 열정을 쏟진 않았다. 꾸준함을 유지하기 위해선 부담을 덜어야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빠르게 쓸 수 있는 글 위주였다. 빨리 쓴다고 해도 크게 모자라단 기분이 안 들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라며 평가하기 때문에 더 신경 쓸 필요를 못 느꼈다. 동호회 공통 주제로 쓰는 글 역시도 빠르게 썼다. 남들과 비교해서 모자라단 생각을 했던 과거엔 며칠을 써서 퇴고하고 준비했다. 그러나 자신감이 붙고, 익숙해진 지금은 적당한 기분으로 빠르게 써서 공통 주제를 제출한다. 이 정도만 해도 부끄럽진 않겠다. 


 예전 글을 보며 새삼 놀랐다. 막연히 경험이 덜한 당시기에 글이 별로일 거라 지레짐작했다. 내가 썼지만,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인지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나 되려 요즘에 쓴 글보다 나았다. 짜임새도 있었고, 뭔가 더 정돈된 인상을 줬다. 구성도 오래 했고, 퇴고도 많이 했기 때문이다. 덧붙여 가벼운 마음으로 쓰는 지금과 다르게 조금 더 글 쓸 때 진지한 태도를 갖고 있었다. 목적의식이 강했다. 더 깔끔하고 인상적인 글을 써야지. 누가 봐도 잘 썼다고 생각할 정도의 퀄리티를 갖자. 그 기준을 맞추기 위해 자료 조사도 열심히 했다. 지금은 '자 손 한 번 풀어볼까.' 머릿속에 있는 것을 단순하게 쉽게 전달하기 위해 툭툭 던진다. 


 몇 가지 변명을 하자면, 빠른 글쓰기는 꾸준한 글쓰기를 위한 노력이었다. 만약 부담을 갖고 기준을 높이면 글도 몇 개 못 썼을 것이다. 편하게 쓰는 성향 때문에 이렇게 다양한 주제의 글이 나올 수 있었다. 굉장한 글을 써야지 라고 생각했다면, 현실과의 괴리에 좌절하고 랩탑을 꺼버렸을 것이다. 두 번째 변명은 글쓰기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변명이라기보다 글쓰기의 목적성에 대한 이야기다. 내게 쓰는 행위엔 발전 없는 삶, 소모되는 하루에 대해 반성하는 의미, 혹은 치유의 의미가 있다. 치유 시간에 되려 상처 입으면 목적과 맞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에게 창피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 기대치를 맞춰놓고 그 안에서는 마구잡이로 지른다. 투수라고 치면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 폭투하는 셈이다. 물구나무서서 던져도 스트라이크, 뒤로 던져도 스트라이크, 굴려 던져도 스트라이크, 땅에 바운드해도 스트라이크다. 심판이 너그러워서 웬만하면 볼 판정을 안 한다. 냉철하게 비판하는 타자도 없다. 야 똑바로 던져!라고 누군가 말해주지 않는 한 폭투를 계속할 것이다. 사실 내 투구에 누군가 불만을 표출하면 그에 따른 변명을 할지 모른다. 


 직접 보고 느껴야 변한다. 과거의 나는 꽤나 괜찮은, 나름 울림 있는 글을 썼구나. 뿌듯한 한편, 그 글들을 요즘 글을 향한 회초리로 사용한다. 요즘엔 구성에 노력을 쏟지 않아 글의 메시지가 가진 힘이 약하다. 어딘가에서 들어볼 만한 내용으로 점철된다. 구성에 시간을 쏟고, 글감에 힘을 싣는 자료가 많아야 메시지에 힘이 실린다. 대충 구색은 맞췄으니 됐다. 글쓰기가 어느샌가 구색 맞추기가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이런 글을 쓰는 지금도 사실 큰 위기의식은 없다. 그래서 이런 주제에서도 스피드를 즐긴다. 한때 화제였던 샛노란 머리의 오렌지족 양아치처럼, '야, 타!'라고 외친다. 블로그 창이 열리면 손가락에 시동을 걸고, 네비에 목적지 찍듯이 1분도 안 돼 모든 문단 구상을 끝낸다. 그리고 시작 시간을 표시하는 동시에 엑셀을 밟는다. 


3:43






9. 바쁜 게 싫다


 지난 3주간 바빴다. 주에 35시간 정도 일했다. 남에겐 여유로워 보일지언정 나는 버거웠다. 3주 만에 첫 휴일이다.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쉬어야 안정을 느낀다. 주말에는 학교를 가니 평일에 쉬어야 한다. 평일에 일이 많지 않은 덕분에 지금까지 무리 없이 생활이 유지됐다. 모처럼 찾아온 휴일을 보람 있게 보내고자 한다. 오후 1시에 전신 마사지를 예약했고, 그때까지 글 쓸 요량으로 카페에 왔다. 


 사람은 간사하다. 일이 없을 때는 조금이라도 더 벌고 싶었다. 회사 헤드 오피스는 고객 니드가 있어야 연락을 준다. 이런 메커니즘을 이해하면서도 왜 이렇게 일을 못 따오냐고 투정 부렸다. 하루에 3개씩은 줘야지. 하나가 뭐야. 고객 정보 3개를 받아야 하나를 딸 수 있다. 3개 중에 하나는 잠수를 타고, 나머지 두 개는 직접 견적을 내러 간다. 50% 확률로 견적이 채택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봤을 땐 잠재 고객 3명 중 한 명이 내 것이 된다. 일주일에 최소 이사 청소 하나, 레귤러 고객 한 명 정도 늘리고 싶어서 일주일에 고객 정보 6개쯤 받길 원했다. 매니저에게 반을 보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원하는 잠재 고객 정보는 12개였다. 계산하면 하루에 2,3 개씩 받아야 하는데, 그 정도로 많이 받지 못 했다. 


 지난 반년 이런 형태가 유지됐다. 그러나 3주 전부터 이상하게 견적 성공 확률이 높아졌다. 고객에게 청구하는 금액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고객 요청도 많아지고, 견적 성공률도 올라가고, 실제 청소를 했을 때 고객 만족도 높아서 의기양양해졌다. 반대로 우리 매니저는 견적 성공률이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는지 당분간 자신은 신규 고객을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어쩌면 자신감이 고객에게 보였는지 모른다. 견적을 내러 가도 위축되지 않고 고객에게 내가 원하는 금액을 말한다. 다소 비싸지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약속한다. 


 "여기 내 견적이야. 기본 이사청소는 얼마고, 엑스트라 청소에 대해서는 이 정도 금액을 청구할 거야. 다른 업체에 비해 다소 비싼 감이 있지만, 나는 그들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그리고 부동산에서 네가 온전히 계약금을 받을 수 있게 보장할게. 만약 청소에 문제가 있으면 ok 될 때까지 추가금 없이 고쳐줄게."


 높아진 성공률과 더불어, 예전 고객들이 다시 연락을 주는 일이 많아졌다. 해외에 나갔다 온 고객, 새 집을 얻을 고객 등. 다시 그들에게 정기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일주일에 이틀 일하던 내가 오일을 일하게 됐다. 결국 새로운 일을 당분간 그만 받고, 조금씩 템포를 올리려 했다. 그러나 매니저가 처리하지 못 한 일까지 맡게 되면서 점진적으로 노동의 강도를 올리려는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막상 돈을 벌고, 고객이 많이 생기니 새로운 계약 성사가 달갑지만은 않았다. 


 몇 해 전만 해도 장시간 일했다. 주 60시간 근무도 무리 없이 했는데, 이제는 몸이 휴식에 익숙해져 40시간도 버겁다. 지난날을 떠올리면서 인간의 적응하는 능력을 높게 평가하게 됐다. 빡셌던 직장을 떠나 무직이 되면, 불안함에 어찌할 줄 모른다. 빨리 일하고 싶어 손이 근질거리고, 라면 한 봉지 사는 게 죄스럽다. 반대로 6개월 내리 놀다 보니 하루 8시간 일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완전 손 놓기 놀기도 싫고, 남들만큼 일하기도 싫다. 그렇지만 남들만큼 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자신을 게으른 사람으로 만든다. 적정 수준 일하고, 그것을 평범의 기준으로 바꿔야 한다. 일단은 바쁘고 싶지 않다. 






10. 하와이안 커플



 싸이월드 배경음악을 바꿨다. 여자친구와 맞췄는데, 요즘 인기 있는 허밍어반 스테레오의 하와이안 커플이란 곡이다. 누가 봐도 커플 티 나는 선곡이다. 여자 친구는 같은 과 동기다. 남중 남고를 나왔기에 전에는 여자를 접할 기회가 적었다. 그녀는 신입생 중에서 가장 예뻤다. 그녀의 신장은 170cm 정도로 멀리서 봐도 눈에 띄었다. 게다가 어른스러운 몸매와 다르게 얼굴은 귀염상이어서 반전의 매력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학기가 시작하고, 그녀에게 많은 남자들이 꼬였지만, 운 좋게 내가 그녀의 남자친구가 됐다. 내 순수한 모습이 좋았다고 한다. 


 싸이월드 방명록에 그녀 친구들이 어떤 글을 남겼는지 매일 확인했다. 나에 대한 이야기는 없나 궁금했다. 그러나 가벼운 인사뿐이었고, 조금 깊은 이야기는 모두 비공개였다. 어쨌든 이런 예쁘고 착한 여자가 첫 여자친구란 사실이 감사했다. 그녀 또한 내가 첫 남자친구라 말했다. 우리는 스무 살의 풋풋함을 즐겼다. 학교는 그녀와의 데이트 장소였다. 사실 우리는 전문대생이었고, 다들 공부에 잼병이었다. 그녀를 만날 수 있는 하루하루가 감사했다. 어떤 날은 학교를 째고 롯데월드에 놀러 갔다. 성인이 됐다는 자각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는데서 오는 짜릿함이 데이트의 흥분을 돋우었다. 


 교제 기간을 늘어 우리는 어느새 2학기의 2학년이 됐다. 다들 졸업 준비로 분주했다. 어느덧 일 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고, 우리도 조금씩 풋풋함이 사라졌다. 어엿한 선배로서 위엄을 갖추었다. 그녀는 면세점에 인턴으로 채용돼서 2학기 수업을 안 나와도 됐다. 결국 그녀 대신 친구들과 캠퍼스를 걸었다. 공부엔 여전히 흥미가 없었기 때문에, 재수강만 듣지 말자는 각오로 널널하게 학교 생활을 했다. 그녀의 싸이월드에 들어가 글을 남기고, 사진을 퍼가는 일은 빼먹지 않았다. 


 어느 날 그녀는 싸이월드 사진첩과 방명록을 비공개로 돌렸다. 들어가도 더 이상 하와이안 커플이 들리지 않았다. 우리가 함께 담긴 사진들을 그녀의 사진첩에서 볼 수 없었다. 연락도 조금씩 뜸해졌다. 휴일에도 몇 시간씩 연락이 안 됐다. 피곤해서 한 숨 잤다는 말이 문자의 시작이었다. 그녀가 면세점 일로 많이 바쁘고 피곤하다는 것을 알았다. 괜히 신경 쓸 일 늘리고 싶지 않아서 그런 그녀에게 별 말하지 않았다. 주말에도 그녀는 일을 했기 때문에, 만날 수 있는 날이 한 달에 2,3번 밖에 되지 않았다. 그녀의 휴일인 월요일이 유일한 데이트 날이었는데, 학교를 빼먹지 않으면 만날 수 없었다. 게다가 학교는 대구에 있었고, 그녀를 만나려면 3시간 40분짜리 시외버스를 타야 했다. 버스 터미널에 가는 시간을 포함해 왕복 9시간을 이동에 썼다. 


 우리가 장거리 연인으로서 하는 일은 매일 서로의 싸이월드 방명록에 안부를 남기는 것이 다였다. 그마저도 안 쓰는 날이 생겼다. 졸업이 두 달 정도 남은 어느 날, 그녀가 방명록에 장문의 글을 남겼다. 요지는 헤어지자는 것이다. 만날 시간도 없고, 자신을 만나러 시간과 돈 써가며 서울로 오는 게 미안하다. 몸도 마음도 힘들어서 연애에 시간을 쓸 수 없다. 내가 싫어서가 아니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첫 여자친구였기에 붙잡고 싶었지만, 그녀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어렵게 결정을 했을지 생각하니 되려 미안할 정도였다. 그렇게 일 년 반의 교제가 끝났다. 나도 싸이월드 배경음을 바꿨다. 


 한 달 정도 시간이 지났다. 그녀와 나는 더 이상 일촌이 아니었다. 그녀와 일촌인 과 동기가 내게 말했다. 그녀에게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인터넷 창을 몇 번 넘겨 새로운 남자친구를 보게 됐다. 건너 들으니, 면세점에 자주 들르는 손님이었다고 한다. 나이는 서른으로 서울 소재 중견 기업에 다니고, 자동차도 있는 남자였다. 일본어가 유창해 일본 출장도 자주 가는 인물이었다. 우리와 다르게 서울에 있는 4년제 명지대학교 졸업생으로 똑똑하기까지 했다. 실은 나와 헤어지기 전부터 만나왔다고 했다. 배신감과 무력감이 몰려왔다. 그전까지 생각하지 않은 자신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보게 됐다. 공부와 담 싼 전문대 2학년생, 꿈도 없고, 능력도 없는 21살 청년이었다. 이혼한 부모님은 두 분 다 일용직 노동자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처지다. 그녀에게 뭐라 화를 내고 싶었지만, 초라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학교를 끝마치고 군에 입대했다. 






 인터넷을 보다 우연히 하와이안 커플을 듣게 됐다. 옛날 생각이 났다. 아직도 연락하는 과 동기가 그녀의 소식을 전해왔다. 면세점에서 20대를 다 보내고, 지금은 회계사 사무실에서 경리로 일한다.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고, 남자친구에게 받은 명품 선물을 자랑한다. 예쁜 외모로 능력 괜찮은 회사원들을 몇 명 만났다고 했다. 자기 소비 지원해줄 더 나은 신랑감 찾다가 결국엔 연말에 중소기업 과장이라는 30대 후반의 남자와 결혼식을 올린다고 덧붙였다. 십삼 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녀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다. 그녀와의 이별은 내게 많은 욕심을 갖게 만들었다. 학벌도, 돈도, 지식도, 능력도, 직업도, 심지어 인기도 얻고 싶었다. 의경 생활을 했는데, 경찰대 출신 중대장이 공부할 대원들을 지원해줬다. 일과가 끝나고 새벽 1시까지 공부방을 이용할 수 있게 해줬다. 기대마에서 대기할 때, 개인 정비 시간에도 틈틈이 영어 책을 읽었다. 전역과 동시에 워킹홀리데이를 가기로 정했다. 일 년 동안 번 돈으로 4년제 대학교 편입해서 학비로 쓸 생각이었다. 고참이 되자 눈치 보지 않고 하루 10시간 이상을 공부에 쓸 수 있게 됐다. 직원들도 기특하게 여겨 격려를 해줬다. 매일 5시간 이상 영어 공부를 했고, 남은 시간엔 서울대생을 위한 권장도서 100권을 읽었다. 미국 대사관 경계 근무를 설 때, 직원의 허락을 맡고 교보문고에서 책을 샀다. 처음엔 더뎠지만 점차 책을 이해하고 읽는 속도가 빨라졌고, 전역 전에 100권을 다 읽을 수 있었다. 남은 시간엔 화술책과 인간관계론 서적을 팠다. 군주론과 괴테의 파우스트 두 권만 챙기고 나머지는 부대에 기증하고 전역했다. 


 전역 후에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 공사장 알바 2달 하고 모은 300만 원을 들고 호주로 떠났다. 영어 공부는 많이 했지만, 막상 대화는 안 됐다. 생활비가 없었기 때문에 한국인 사장 밑에서 한 달 정도 일했다. 일도 성실히 하고, 손님들에게 싹싹하고 정중해서 사장이 좋아했다. 일이 끝나면 집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외국인 친구들과 대화를 하거나 영어 공부를 했다. 외국인들과 같이 살다 보니 입까지 트여 한 달 만에 말하기 실력이 늘었다. 한 닭만에 호주 사람이 경영하는 카페와 레스토랑 일을 구하게 됐다. 시급 13불로 올려준다는 한국인 사장님께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시급 22불짜리 카페, 레스토랑 일을 하게 됐다. 그리고 5개월 만에 2년 치 학비를 모았다.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하면서 이북으로 된 한글 책도 읽었다. 군대에서 가져온 독서 습관이 지속돼 매주 2권씩 읽을 수 있었다. 


 그 후 10년 넘게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영어 공부도 마찬가지였다. 어딜 가나 똑똑한 사람, 인기 많은 사람이란 수식이 따랐다. 그러는 동안, 계획을 바꿔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학교를 나오는 것보다 현지 대학을 나오는 것이 이점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1년간 모은 3천만 원으로 새벽 청소 사업을 시작했다. 남은 돈으로 학생 비자를 주는 주말 학교에서 비즈니스 공부를 했다. 처음에 고전했지만, 적극적으로 병원, 학교 같은 곳에 찾아가 명함을 돌렸다. 각 매니저에게 10분 정도의 시간을 내달라고 요청하고, 수락한 곳에서는 나에게 청소를 맡겼을 시에 어떤 이익이 있는지 설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객이 늘었고, 직원도 5명 정도가 됐다. 한 달에 순이익 만불, 한국돈 천만 원 정도를 벌게 됐다. 학비를 내고도 한참 돈이 남았다.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한 덕에 학교 수업도 금방 익숙해져 어려움 없이 코스를 마쳤다. 


 호주 생활 3년이 지나고 대학에 입학해 경영학을 배울 수 있었다. 영어는 못하지만 성실한 40대 동업자 형님을 찾아 사업을 맡겼다. 고객과의 의사소통과 간단한 청소 뒤처리만 하고 수익의 30퍼센트를 갖기로 했다. 남은 시간은 학교 수업과 예습, 복습에 투자했다. 도서관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일상을 반복하니 모든 수업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상위 5% 성적으로 졸업장을 받았다. 수중에 남은 돈이 없었지만 교수님의 적극적인 권유로 더 공부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언제고 돈을 벌 자신이 있었다. 모든 사업에 대한 권리를 동업자 형님에게 넘기고 1억 5천만 원을 받았다. 그 돈으로 3년간 석사 공부를 했다. 법학 대학과 경영대학이 합쳐진 사업 행정 코스로 많은 논문을 써야 했다. 독서 습관이 많은 도움을 줬다. 대학에 입학하며 원서로 책을 읽게 됐고, 여러 배경지식을 알고 있는 덕에 더 짜임새 있고 교수들이 좋아할 만한 논문을 쓸 수 있었다. 돈이 다 떨어질 무렵, 석사 과정이 끝났고 수석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외국 경영 학생에겐 비자가 문제였다. 귀찮게 스폰서 비자 제공하며 외국인을 쓸 회사는 많지 않았다. 회사 입장에서 많은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회사에 꼭 필요한, 유능한 인물이 되면 문제는 해결된다. 석사 마지막 학년에서 호주 대기업 비즈니스 부서 인턴으로 3개월간 일할 기회를 얻었다. 일하는 매 순간 일에 집중했고, 몰래 usb로 회사의 주된 거래 자료를 뽑아서 집으로 가져왔다. 모든 사례를 읽고 또 읽었다. 회사의 강점과 약점이 무엇인지, 어떤 리스크가 있고 어떤 방식으로 해결했는지 도표로 그려 분석했다. 또한 현재 최적의 투자처는 무엇이고 어떤 장애물이 있는지 생각했다. 그 대처가 호주 정부와 다른 이해집단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반응을 불러올지도 예상했다. 교수님에게 논문에 대해 피드백을 받고, 살짝 사례를 바꿔 고민 중인 문제에 대해서도 자문을 구했다. 일주일에 두 번 나가는 회사에서 할 일은 별로 많지 않았다. 잡무를 보거나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피고, 간단한 과제를 받아 처리하는 정도였다. 인턴쉽이 끝나는 마지막 주에 맞춰 회사 비즈니스 매니저에게 메일을 보내 10분 간 시간을 내주길 요청했다.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한 달 동안 준비한 자료 워드 100장 분량의 리스크 매니지먼트 플랜을 제본했고, 20분 분량의 ppt도 준비했다. 환경, 인권 단체와 정부의 입장을 정리했고 나름대로의 대처법을 준비했다. 면담 시간에 발표를 했다. 학교를 졸업했고, 같은 회사 기획 부서에 시니어로 취직했다. 영주권을 얻게 되고, 몇 번의 이직을 거쳤다. 이제는 회계사 경리인 그녀의 연봉을 매 달 벌고 있다. 



  옛날 생각을 하다 보니 노래가 끝났다. 


--

 물론 소설임. 소설 쓰려고 했는데 문체가 가면 갈수록 바뀌어서 수기처럼 돼버림. 






분량으로 조진다는 생각으로 블로그에서 썩고 있는 글 10 개를 모았다. 장난스럽지만 조금 더 나 같고 날 것 느낌이 나서 좋은 1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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