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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Sep 20. 2017

우리 아버지


 



 아버지는 옛날 사람이다. 아이폰이 발매되고 강산이 한 번 변했지만, 여전히 2g 폰을 고집하는 투지를 보여준다. 언젠가 스마트폰으로 바꿀 것을 요구했다. 몇 가지 장점을 들어 바꿔야 하는 당위를 말했다. 외국에 있는 아들과 문자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화상 대화도 가능하며, 계산기와 인터넷을 통해 생활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여가 시간엔 게임을 즐길 수 있고, 무엇보다 바꿔도 큰돈 나가지 않는다. 돈에 연연하는 양반이라 경제적인 부분을 추가로 설명했다. 데이터를 많이 쓰지 않는 아버지의 경우 보급형 저가폰으로 개통할 시 매달 2만 원 정도만 부담하면 된다. 그가 지금은 만 원대라며 제안을 거절했다. 핸드폰 앞자리 011이 그의 대쪽같은 절개를 보여준다. 


아버지는 새로운 일을 하지 않는다. 자신이 알고, 해온 것들을 고수한다. 폴더폰은 일부다. 식생활에서도 도전은 없다. 이하응의 재림으로 외세를 철저히 배척한다. 그가 먹는 외국 음식은 짜장면이 전부다. 그마저도 국적이 불분명한 음식이다. 자식과 함께 살던 때엔 피자 한 조각 정도는 먹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없다. 동네 주민 아무개 아저씨가 준 나물을 시골에서 보내준 들기름에 무쳐 먹는다. 별미라면 복날에 보신탕을 먹는 정도다. 그의 입맛은 6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기에 당연한 일이다.


아버지는 매일 새벽에 2시간씩 조깅한다. 그는 당뇨를 앓고 있다. 인슐린의 분비가 부족하다. 소변볼 때 포도당 덜 내보내기 위해 몸 관리를 한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 하는 모습의 이면엔 성실함이란 아름다운 수식도 있다. 일 년에 몸이 아픈 하루 이틀을 제외하곤 항상 신발끈을 질끈 맨다. 그의 일상엔 의외가 거의 없다. 정해진 루트를 벗어나는 일이 드물다. 새벽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풀내 진동하는 식탁에서 아침을 먹고, 새벽일을 나가서 이른 오후에 돌아온다. 동네 어르신들과 약주를 하시고, 6시 무렵엔 TV 앞에 이부자리를 펴고 6시 내 고향을 시청한다. 수저를 움직이며 자신의 일상과 동떨어진 인물들의 일상을 보는 일상을 즐긴다. 8시가 되면 핸드폰과 TV를 끈다. 잠을 자는 다음날 새벽 3시까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기 위함이다. 어떤 배움과 새로움도 이 단단한 일상을 비집고 들어올 수 없다.


나는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았다. 내가 아는 그의 인생은 이렇다. 어릴 적부터 공부에 흥미가 없었고, 포부도 없었다. 그릇이 소박한 사람이다. 고등학교 땐 하키부라는 이유로 고등학교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군대를 전역하고 어깨너머 자동차 정비를 배웠다. 조그만 구멍가게를 빌려 카센터라는 간판을 올렸다. 야매로 차를 손봤는데, 고객들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차에 대한 지식도 없었고, 제대로 배운 경험도 없었다. 사업하는 외삼촌의 부름을 받고 간판을 내렸다. 동생의 남편이 사는 모습이 안쓰러웠던 것 같다. 삼촌이 건설한 아파트 단지에서 소장 직함을 달고 이런저런 잡일을 도맡았다. 삼촌의 심부름을 하며 몇 년을 보냈다. 어머니와 이혼한 마흔 쯤에 소장 직위를 내려놨다. 그리고 목수일을 몇 년 하다 고물상으로 종목을 바꿨다. 어쩌다 보니 오게 된 도시에서 고물업자가 되어 정착했다. 그렇게 17년을 살았다.


나는 아버지를 나와 별개의 사람으로 봤다. 아버지가 고물업자로 자리를 잡은 무렵에 그와 살게 됐다. 아버지는 당시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었다. 어머니 곁을 떠나 몇 년 만에 만난 아버지는 애 딸린 젊은 아주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다방을 경영했는데, 꽤나 거칠었다. 아버지는 집요한 구석이 있다. 술만 마시면 아주머니에게 시비를 걸었고, 다른 남자 만난 것은 아닌지 의심을 했다. 아주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둘은 소리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며 싸웠다. 매일 밤이면 방문 너머로 신경질적인 남녀의 목소리와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컴퓨터 헤드폰을 집어 들고 게임 볼륨을 올렸다. 콩가루 집안이구만... 다른 세상 사람인 양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혀를 차며 모니터에 집중했다. 가정환경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길 원했다. 그들처럼 교양 없는, 못 배운 사람 범주에 속할 생각이 없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무시하려 했지만, 새로운 인격을 만들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의 인생이 기구했다. 고물 실린 지저분한 트럭 문을 열고 내리는 사람이 우리 아버지가 아니길 바랐다. 


나는 아버지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게 쓰는 돈을 아까워했다. 무언가 배우고 싶다, 책을 사야 한다, 소풍 때 입을 옷이 필요하다 말을 하면 돈이 없다는 말로 거절을 표했다. 어머니가 매달 넉넉한 용돈을 보내줘서 부족함은 없었다. 다만 아버지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 그가 양육에 신경 쓰고 있다는 증거로 사용하고 싶었다. 꼭 필요한 곳이라면 마지못해 지갑을 열었다. 그러나 '꼭 필요한'의 기준이 너무 높았다. 고등학교 시절 허리가 아파서 접골원을 다닌 적이 있었다. 일회 시술에 5만 원을 내야 했는데, 아버지는 이를 고깝게 여겼다. 아버지를 원망하고 싶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전까지 아프면 안 됐다. 아쉬운 소리를 덜 해야 덜 실망한다. 21살 군입대를 기준으로 경제적인 도움을 거의 받지 않았다. 


올해 초, 외국 생활을 핑계로 오랜만에 아버지를 찾았다. 그전에 몇 차례인가 한국을 찾았으나 아픈 어머니 병간호를 이유로 아버지 얼굴을 보지 못 했다. 어머니 장례가 끝나고 여유가 생겨 아버지를 찾았다. 겸사겸사 친구들도 만났는데, 친구들과 체류 시간의 대부분을 보냈다. 벌써 가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서울에 처리할 일이 많다고 대답했다. 찜찜함을 안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 며칠 뒤 아버지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한국에 동행한 여자친구와 아버지를 찾았다. 당뇨라 먹지도 못 하는 케익을 생색용으로 사갔다. 주식 거래하는 증권사에서 보내준 베이커리 3만 원 쿠폰을 활용했다. 점심은 여자친구가 샀다. 이 정도면 최소한의 아들의 도리는 했다고 위안했다. 이제 불효자 아니라고 못 박았다. 터미널 가는 택시를 잡기 전에 아버지 팔을 잡았다. 살이 있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앙상했다. 다부지고 단단한 그의 몸은 이제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내색하지 않았다. 단지 중간은 하는 아들이라는 자각을 얻고 서울로 돌아왔다.


독립 후에 한 번도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아쉬운 점은 많았지만, 그는 그 나름대로 아버지의 도리를 했다. 대학 학비를 내줬고, 20대 중반인 자식이 방문하면 차비 명목으로 10만원 정도의 용돈을 줬다. 나는 긍정적이고 매사 감사하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구두쇠에 무신경한 그가 이 만큼 한 것도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바르게 자랐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부모에게 잘하는 아들이 되기로 다짐했다. 60이 다 된 그가 여전히 몸 쓰는 일을 하고 무식하고 명성도 없고 큰돈을 벌지는 못 해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가 나의 아버지임을 떳떳하게 천명하는 것이 멋지고 스마트한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저희 아버지는 힘든 상황에서도 자식을 위해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사셨습니다. - 라는 말은 사실 아버지를 올리기 위함이 아닌 나 자신의 인간성을 드러내는 표현이었다. 최소한의 역할을 한 것이지, 희생과 열의를 쏟은 것은 아니다. 결혼식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여자친구의 아버지는 명문대 출신에, 영어를 잘하고, 자기 분야에 지식이 많고 명예와 권력이 있다. 네이버에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신문 기사와, 논문, 그의 업적 등이 화면에 뜬다. 내 아버지와 전혀 다른 인물이다. 아버지가 안쓰러웠다. 안쓰러워하는데서 죄책감을 느꼈다. 죄책감을 없애기 위해 미래의 장인에게 떳떳한 모습을 보였다. 우리 아버지는 고물상이고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이지만, 나는 그가 자랑스럽다. 당신과 똑같이 자식을 위해 애써온 훌륭한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듯이 어깨를 활짝 폈다. 


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공작이 된다. 꼬리를 펼치듯 실체 없는 자부심을 드러냈다. 씁쓸한 끝 맛은 마르고 주름진 아버지의 잔상을 불러왔다. 정말 안타깝다. 아버지를 존경할 수 없어서. 어버이날 아버지 계좌로 300만 원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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