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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Sep 23. 2017

신춘문예 당선작 비평

안지은 - 생일 축하해





 종종 신춘문예 당선작을 찾아본다. 내 또래 문학도의 성취를 알아볼 수 있다. 문학도라고 자신을 표현하기엔 코웃음 나오는 부분이 많다. 많이 읽고 쓰지만, 문학과 친하지 않다. 장르가 어떻든 잘 쓴 글을 좋아한다. 내 잘 쓴 글의 기준은 꽤나 좁아서 기성 작가나 어디서 글 좀 쓴다고 하는 사람들의 글도 성에 차지 않는다. 특히 소설과 시의 모호함과 비논리성, 좁은 세계관 그리고 표현의 과함이 싫다. 자, 여기가 펀치라인입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문장을 보면, 그 자신의 관념에 갇혀 문학적 내공 쎈 척하는 헛손질 같다. 신춘문예는 기성이 되고픈 기성 워너비들의 대축제다. 역설적으로 기성이 되기 위해서 기성이 갖지 못한 것들을 보여줘야 한다. 가진 것보다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의욕을 보이나, 그것은 허세다. 몇 년 전에는 와 신춘문예 당선작이라고? 그럼 검증된 실력자군. 타이틀의 권위에 종속되어 비판의 칼을 떨어트렸다.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설령 내 해석이 틀렸고, 오독이라 해도 상관없다. 겉만 단단한 주관으로 권위를 박살 낸다. 신춘문예 당선작을 읽는 것은 그런 의지의 표명이다. 되려 거칠게 자판을 친다. 그래 너희들이 또래 중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사람들이지? 문인들이 인정했다고 해서 내가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어디 한 번 그 잘난 작품 갖고 와봐. 그러다 2016년도 신춘문예 시 당선작 생일 축하해를 읽었다.



생일 축하해                               - 안지은


걷던 길에서 방향을 조금 틀었을 뿐인데, 신기하지

낯선 골목에 당신의 얼굴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니

네게선 물이 자란다, 언제 내게서 그런 표정을 거둘거니

누군가가 대신 읽어준 편지는 예언서에 가까웠지

막다른 골목길에서 나의 감정을 선언하니

벽이 조금씩 자라나고, 그 때에

당신은 살아있구나, 눈치 챘지

문장의 바깥에 서서

당신은 긴 시간동안 사람이었지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야

언젠가 손을 맞잡았던 적이 있지, 짧게

우리라고 불릴 시간은 딱 그만큼이어서

나에겐 기도가 세수야

당신을 미워하는 건 참 쉬운 일이지

오래 마주보고 있기엔 당신의 눈동자는 너무나 투명해

표정은 쉽게 미끄러지고

벽을 등지고 걸으면 내 등이 보이는 오늘

누구랄 것 없이 녹아 흘러내리지만

언제나 당신은 젖지 않지

내가 살아 있는 것이 당신의 종교가 되길 바랄게

기일 축하해,



그래 너 잘 걸렸다. 내가 시에 조예가 없고, 감성이 메마른 문학 허접이라도 목소리를 낼 줄 안다고. 일단 삶과 죽음을 소재로 사용한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아. 소재 자체가 내뿜는 이미지가 강렬해서, 소재가 이렇게 말한다. '자 이제 나 굉장한 것 말한다. 진짜 엄청난 걸 보여줄 거야. 한껏 무게 잡을 거니까 방해하지 말고 잘 봐봐. 우오오오... 암흑의 다크니스' 이미 너무 많이 쓰여서 식상하고, 어지간해선 자의식 과잉으로 보인다. 다루기 힘든 소재다. 결과적으로 작가는 잘 못 다뤘다. 차라리 관념의 끝으로 가서 모호하게 주제를 다루는 게 어땠을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예 파악할 수 없게 만들어서 내 나름대로 해석하고 추론할 수 있게 말이다. 그러나 그랬으면 신춘문예에 당선을 못 됐겠지. 마지막 문장을 보고 맥이 빠졌다. '기일 축하해, ' 삼류 반전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느껴졌다. 반전은 예측하지 못 한 일이 일어나야 맛이 산다. 너무 친절하게 내용 다 설명한 상태로 이런 반전이 있어라고 말한다. 결국 가벼운 글이 더 가벼워졌다. 사실 전문에서 죽음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 문장을 반전이라기보다 시인의 힘 뺀 것 같지만 힘 엄청 들어간 한방으로 보는 게 맞다. 그 얕은 생각이 눈에 보여서 비유와 추론의 맛이 약하다. 


내용을 말한다. 이 시는 삶과 죽음의 대화로 보인다. 삶 속에서 죽음의 존재를 마주하고, 일상에서 죽음을 떠올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 최상단(제목)에 있는 단어와 마지막에 있는 단어, 생일과 기일이 대비된다. 생일이 기일이고 기일이 생일인 시의 말은 죽음과 삶은 항상 공존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너무 상투적인 죽음이 있기에 삶이 보람 있고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의 반복이다. 그 주제를 반짝이게 다룬 것도 아니다. 가볍고 낮은 사유와 비유의 세계에서 무심한 연기를 하며 혼신의 펀치를 날렸다. 펀치의 위력이 가소롭다. 삶이 죽음의 종교가 되길 바란다는, 뻔한 가치 도치도 맛이 없다. 사설에 나왔다면 맛있었을 것 같은데, 상징과 비유의 예술인 시에서는 뻔한 패턴의 반복, 김동현 앞에서 김창렬의 싸움 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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