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련과 이미상을 중심으로
이 소설은 사회적 약자로서 모멸적 경험을 겪는 수진이 (문자 그대로) ‘언어’를 획득하면서 자기의 언어-세계를 구축/획득해 나간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서사 줄기가 가로놓여 있다. 하나는 수진은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의 원장으로부터 이른바 ‘부리기 좋은 사회적 약자’로 취급된 바 있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수진은 직장에서 자신을 “초대졸”이라 소개할 줄 아는 ‘수미’와 비교되며 임금으로 차별받는데, 훗날 수진은 수미로부터 초대졸의 뜻을 대충이나마 듣게 되면서 ‘동대학’이 “동국대 동이 아니라 같을 동이란다. 너도 어디 가서 기 안 죽으려면 알아”* 두라는 이야기까지 건네 듣는다. 이후 수진은 자신이 새롭게 알게 된 단어를 노트에 적어 나가기 시작하고, 그 시점에 위의 ⅰ의 인용에 해당한 서술자 B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서사 줄기는 그녀의 좁디좁은 원룸에 얹혀사는, 예술가라고 자신을 소개했으나 알고 보니 불법촬영범죄 전력이 있는 남자친구와 관련돼 있다. 점차로 언어를 획득해 나가는 수진이 “밤의 베란다”에서 소설을 쓴다는 것을 눈치챈 남자는 ‘글 쓰는 그녀’를 모멸한다.(““우리 수진이, 집필 중이야?”/남자가 킥킥 웃었다.”)** 이 장면에 이르러 첫 번째 서사 줄기와 두 번째 서사 줄기가 마주친다. 곧이어 회식 자리에서 수진이 소설을 쓴다는 걸 알게 된 원장은 그녀에게 “취해 살지 말라”며 그녀의 위치를 거듭 확인시키며 그녀를 멸시한다.
*이미상, 위의 글, 156쪽.
**이미상, 위의 글, 166~167쪽.
이제 수진은 어떤 선택을 하는가? 그녀는 자신의 세계에서 이러한 억압자의 언어를 행사하는 이들을 몰아낸다. 조금 더 유비적으로 말하자면 억압자의 ‘언어’(질서, 구조)를 몰아낸다. 그러나 그 영향을 받음으로써 그렇다. 이 과정이 불현듯 수행되고 있었음은 그녀가 병원을 관두고 남자친구를 쫓아내는 장면에 ‘이르러서’가 아니다. 서술자 B가 그녀의 이야기에 메타적 관점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진행되었음을, 독자는 서사의 클라이맥스에 이르러서야 알게 된 것뿐이다. 게다가 “로맨스에 의지하기보다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한 방법이자, 미지의 여성과 동맹을 맺는 선택과 판단의 창구”***로 선택되었다고 해석된 바 있는 수진의 소설 쓰기는, 그러므로 한 여성이 외부의 언어를 자기의 그것으로 환유하여 능동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 그 자체이자 결과로 드러난다.
***김은하, <페미니즘 이후의 문학-이미상의 『이중 작가 초롱』〉, 《문학동네》 2023년 봄호, 68쪽.
그런데 이 소설 쓰기는 소설 속 캐릭터 수진의 행위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이미 이 소설 자체로 제출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녀의 언어가 확장되는 것의 메타적인 의미를 끊임없이 환기시키고 이 글이 마치 수진이 쓰는 소설과 다름없음을 여러 겹으로 보여 주는 서술자 B의 개입에 주목해야 하는 까닭 역시 바로 이 때문이다. 타인의 언어에 지배되었던 수진이 점차로 자기의 언어를 자체적으로 구축해 가는 과정에서 그녀의 세계는 온전히 그녀의 언어로 구성될 가능성을 지닌다.
또한 이는 수진이 ‘여성’으로서 경험하는 세계에 대한 주체적 언어화와 무관하지 않은데, 이때 ‘소설의 서술자 B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다시금 가져와 볼 필요가 있다. 앞서 서술자 B는 마치 미지의 인물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만약 이 소설이 수진이 ‘수진’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자기 이야기를 메타적으로 재구성한, 온전히 그녀 자신이 획득한 언어의 규칙으로 우뚝 세운 세계라고 한다면, 이 서술자 B는 이 소설을 쓰고 있는 ‘수진’인 것이 아닐까?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수진의 소설 쓰기의 형식이, ‘외부의 수진’(언어화 이후의 수진)과 ‘캐릭터 수진’(언어화의 과정을 거치는 수진)으로 나뉘어 있으며, 이 둘은 완전히 분리할 수 없으나 완전히 일치시킬 수도 없는 불편한 일체감 혹은 결합된 이질감을 불러일으키는 ‘분열된 언어’ 그 자체로 제출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서술자 B의 정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