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설 속 삼인칭 서술 양상과 ‘당사자성’의 확대 가능성을 논하며
intro. 시점(point of view)의 문제
‘내가 그렇게 말했다’와 ‘그가 그렇게 말했다’는 어떻게 다른가.
하나는 일인칭 서술, 하나는 삼인칭 서술이다. 두 문장이 하나의 상황에 대한 ‘다른 표현’이라고 할 때, 이 두 문장이 지니는 차이는 단지 그뿐일까? 전하려는 상황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으니, 주어가 달라졌을 뿐일까? 나는 이 글에서 두 문장에 의해 이야기된 것이 ‘다른 것’임을 주장하려고 한다. 두 문장에서 갈음된 것은 ‘주어’에 불과해 보이지만 이는 단순히 ‘누구’가 아니라 ‘시점(point of view)‘의 차이에 따른 태도의 변화를 내포한다. 해당 발언을 하는 발화자의 관점에 의해 사건이 판단되고 해석되어 전달된다는 사실은 인물의 교체가 아니라, ‘시점’의 측면에서 볼 때 인물 간 가치관의 차이 이상을 함의한다. 특정 문제의식을 어떠한 캐릭터의 해석을 경유해 말할 것인가(‘나는~’) 혹은 보다 객관적 진술이 가능한 서술자를 설정하여 어떤 전망 내지는 태도를 강조할 것인가(‘그는~’)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물과 서술자의 말과 태도가 곧 작가의 그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말하게끔 하는 서술자를 통해 ‘어떤 식으로’ 이야기하기로 결정했는가 하는 점은 독자로 하여금 작품에 현실을 되비췄을 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어떤 것인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때 ‘필요한 것’이란 ‘결핍된 것’과 교집합을 이룬다. 이때 ‘(결핍된) 필요한 것’이란 그저 비어 있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비어 있으나 다른 마땅한 것으로 채워져야 할 비어 있음이다. 그것은 시간이 걸리거나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등의 이유로 현실에서 즉각적으로 채워질(해결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식의 개선이나 해결이 필요하기는 하며, 그렇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 자체만으로 의미 있다는 데 방점이 찍힌다. 즉 현실의 결핍은 완전하게 해소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 결핍된 것을 이러한 식으로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시킨다는 점이 중요하다.
만약 현실에서 처리될 수 없는 어떤 공백이 서사의 ‘시점’을 통해 제안될 수 있다면, 서사가 지닌 현실에 대한 허구성 내지는 환상성은 바로 이 공백에 대한 하나의 안(案)을 제안하고 보여 주고 실천한다는 점에서 재평가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최근 서사에 대한 여러 비평적 제안들, 가령 페미니즘 서사나 퀴어 서사에 대한 독해 또는 돌봄의 정치, 포스트 휴머니즘적 접근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진단하고자 하는 시도들은, ‘문학의 허구적 자율성’ 내지는 ‘허구적 장치로서의 문학’의 문제로 돌아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서사적 요소의 설정을 통해 드러나는 태도로부터 우리가 어떠한 현실을 요청하느냐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