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설 속 삼인칭 서술 양상과 ‘당사자성’의 확대 가능성을 논하며
‘대(大)서사 시대’의 삼인칭 말하기와 당사자성의 확장
피터 브룩스는 최근 저서*에서 서사가 남용되고 때론 오용되는 시대에 필요한 것은 서사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읽는 방법과 관점임을 강조한 바 있다. 오늘날 서사는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서사는 무언가를 말하고 듣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전 과정에 ‘어떻게’라는 방식으로 개입함에 따라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편향된 논리를 구축할 수도 있는 인지의 도구로 이해된다. 때문에 우리는 서사의 활용과 이해를 더욱 면밀한 차원에서 살펴 나가야 한다. 나는 피터 브룩스의 이러한 주장을, 서사가 실제 삶에 영향을 미치며, 우리가 자신을 자신이라고 인식하는 과정에, 또 사회를 사회라고 인식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미묘한 인식의 한 방법이라고 이해한다. 그렇다면 쓰인 것이 중요한 만큼 읽는 것이 중요하고, 읽은 것을 통해 무엇을 말하느냐 또한 중요할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 ‘허구적 장치’에 대해 말하는 것이 곧 서사가 현실과 교차적 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전제를 승인하는 선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즉 서사라는 ‘재현된 현실’은 그것이 현실에 토대를 두되 ‘서사’라는 규칙 위에서 다시 구성된바 ‘형상화된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실재 현실에 기반한 관념적 현실, 달리 말하면 허구적 세계다. 그것은 곧 현실이 아니지만, 감춰진 현실의 일면을 드러낸다. 그런 의미에서 서사는 현실이 아니며 현실이다.
*피터 브룩스, 『스토리의 유혹』, 백준걸 옮김, 앨피, 2023.
이러한 문학적 재현의 성질에 착안하여 작품이 ‘보여 주는 현실’이 얼마나 잘 재현되었는가를 비평의 중요한 기준점으로 삼아 왔다면, 이제는 그것이 ‘서사’라는 점을 좀 더 분명하게 인지하여 약간 다른 질문을 해야 할 것 같다. 재현의 양태 그리고 장면과 사건 자체에 대한 재현의 범주를, 서술의 측면으로 넓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대로, 문학에서 시점이란 해당 사건을 보여 주는 문학의 메타적 태도를 보여 주는 장치일 수 있다. 이에, 서술자의 설정 문제를 중심으로 작품을 읽는다면 어떤 이야기가 가능한지에 대한 분석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서술자는 현실을 해석하고 재현하는 과정에서 (벤야민식의) ‘이야기꾼’의 역할을 담지한다. 이를 설명하고자 함에 서사화와 자아의 구성에 대한 피터 브룩스의 논의를 조금 더 참조해 보자. 피터 브룩스는 서사화하는 것이 곧 자아를 만든다는 주장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러한 입장에 따르면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자아를 구성하고 세계를 체험한다. 자아는 주체 그 자체가 아니라 ‘언어’로 존재하며 그 이상의 것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언어화할 때 비로소 주체적 인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이야기’함으로써, 언어화된 형태로 자신을 인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언어화하느냐에 따라, 즉 어떤 서사로 펼쳐 놓느냐에 따라 현재 자신의 자아 및 그것을 구성하는 외적 요소(세계, 타인)와의 관계 설정을 ‘확인’할 수 있고 또 새로 쓸 수도 있다. 이는 종내 스스로가 써 내려가는 현실 인식인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서사이고 이 과정에 개입되어 있는 외적 요소를 어떻게 파악하고 어떻게 다뤄 나가는지를 보여 주는 포괄적 형태의 ‘서사’인 바, 곧 자아의 확장적 메타 인지의 결과다.
**피터 브룩스, 위의 책의 1장 「이야기가 넘치다: 서사에 매혹된 세계」를 참조.
이렇듯 자아가 서사에 따라 구성되고 발견되고 돌출되는 것이라면, ‘서술자’ 또한 그러한 자아-서사의 일부일 수 있지 않을까? 자아로서 서술자를 이해하고자 할 때, 이는 작가나 인물이 아닌 ‘전달자’, 일면 이야기꾼의 자아를 지닌 서사적 장치이며, 인물이 아닌 ‘이야기’를 중개하며 상정된 발화자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우리의 ‘자아’를 확장하는 서사적 장치에 해당한다. 따라서 우리는 인물이나 사건 자체를 통해 서사의 ‘재현’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전달하는 ‘서술자’에 의해 이것이 중개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즉 우리가 문학이라는 ‘상정된 현실’ 및 ‘상정된 자아’를 통해 현실을 다시금 통찰할 수 있다는 믿음은 서술자에 의해 재현되는 세계에 대한 이해 속에서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작품이 곧장 세계인 것은 아니나 우리는 그것을 중개하는 서술자적 자아를 ‘통해’ 세계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내러티브화한다. 그러한 영향 속에서 우리는 서사를 통한 전망 따위를 도모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