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건너온 유태인 건축가의 야망과 고통에 대하여.
※ 스포일러 있음.
※ 아래 이미지들의 출처는 왓챠피디아.
이동진 평론가의 2025년도 첫 번째 별 다섯 영화는 브래디 코베 감독의 <브루탈리스트>이다. 미국으로 건너온 유태인 건축가의 야망과 고통을 다룬, 세 시간 반이 넘는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웅장한 작품.
이 영화의 주인공 라즐로의 삶에서 확인할 수 있듯, 누군가의 실력과 성공, 그리고 행복은 저마다 독립적이다. 앞 문장에서 이미 눈치챘겠지만 이 건축가의 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는데, 그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 사이의 복잡한 관계가 방금 언급한 격랑의 대표적인 증거이다. 이에 대해 하나씩 소개하자면, 다음의 네 단락이 된다.
홀로코스트라는 고난을 거쳐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려는 그에게, 해리슨은 운명처럼 다가온 존재였다. 비록 첫 만남에선 라즐로의 건축적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거칠게 소리만 질러댔으나, 시간이 지나 알게 된 그의 기량과 성취에 끌려 먼저 손을 내미는 사업가의 선택은, 분명 호혜적이고도 현명한 판단으로 보였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고용인들과 피고용인들이 그러하듯, 둘 사이에도 자연스레 불편한 갑을 관계가 형성된다. 여기에 더해 자신의 어머니를 기념하고자 대형 건축물들을 건립하려던 해리슨의 갸륵한 결심은 어느샌가 금전적인 고민에 덮여버렸고, 고대하던 완성의 그날은 점점 희미해져만 갔다. 한 때는 서로를 누구보다 신뢰하던 이들이 어느덧 각자를 극도로 경멸하는 모습은, 저절로 나의 흘러가버린 인연들과 겹쳐져 씁쓸한 웃음을 짓도록 만들었다.
다행히도, 라즐로의 힘겨운 시간 속에는 그 물리적 거리와 상관없이 언제나 에르제벳이 함께했다. 비록 간신히 재회한 아내의 건강은 꽤 악화된 상태였지만 그 내면은 무척이나 단단했기에, 자신의 남편을 함부로 대하는 강력한 고용주에게 겁 없이 맞설 수 있었다. 특히 해리슨이 라즐로에게 어둠 가운데 몹쓸 짓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휠체어 없이 그의 저택에 찾아가 그동안 고요히 묻혀있던 만행을 숨김없이 공표하는 장면은, 스크린을 응시하는 모든 이들을 완전히 압도한다.
그렇다면 조카 조피아는 그에게 과연 어떤 존재일까. 이 영화의 에필로그에서, 늙고 병약한 라즐로 대신 거대한 건축물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은 바로 말없던 그녀이다. 설계부터 완공까지의 그 기나긴 세월 속에 담긴 수많은 상처들을 숨긴 채, 조피아는 오로지 영광만을 대중에게 설파한다. 그녀의 이러한 연설이 그를 조금이나마 위로했을지 아니면 또 다른 아픔을 안겼을지에 대해, 영화는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둘 다 일지도.
이 글을 적다 보니, 서두에 언급한 이동진 평론가의 언택트톡을 포함해 극장에서 다섯 시간 넘게 <브루탈리스트>를 관람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은 상당한 시간을 쏟고도 아쉬워하지 않을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되새긴, 뿌듯하고도 멋진 하루로 내 머릿속에 소중히 남아있다.
2025. 03.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