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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 베어스>(자파르 파나히) 리뷰/감상문

선의의 거짓말에 따른 좌절과 후회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자 대담한 예술.

by 우언타이

※ 스포일러 있음.

※ 아래 이미지들의 출처는 왓챠피디아.


이란의 영화감독 자파르 파나히의 <노 베어스>는 선의의 거짓말에 대한 작품이다. 이를 감상한 관객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영화의 제목부터 이를 상징한다. 곰이 나타난다는 허구로 그가 위험한 길을 가지 못하도록 막는 마을 주민의 눈빛에선, 그 어떠한 악의도 발견되지 않는다.


감독이 스스로를 연기하는 이 영화에는, 이란 내의 한 연인과 국경 밖의 또 다른 커플에 대한 서사가 존재한다. 먼저 전자에 대해 말하자면, 이는 이미 정혼자가 있는 여인과 사랑에 빠진 남자와 그 정혼자 사이의 다툼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서로를 애정하는 남녀가 남몰래 함께 있었음의 증거를 감독이 사진으로 남겼놓았는가라는 물음은, 마을에 커다란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후자는 파나히가 원거리에서 만들고 있는 터키 배경의 영화 촬영 중 벌어지는 사건에 관한 내용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배우들 역시 한 쌍의 커플이며, 이들은 터키에서 함께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두 남녀가 여권을 쥔 채 같이 출국할 수 있음을 약속하기란, 그들의 처지로 미루어보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난처한 상황 속에서, 감독은 과연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모두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그가 이에 대처하는 방식은, 양심의 가책을 무릅쓰고 거짓으로 대답하는 것이다. 이는 사진에 관해서는 암시적으로, 여권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감독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국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부 파국에 이른다. 우리는 그가 느꼈을 절망과 후회를, 스크린 속 마지막 장면에 담긴 침묵에서 확실히 인지하게 된다.



자파르 파나히는 국가의 억압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이 담긴 영화들을 꾸준히 공개해 왔으며, 그 가치를 전 세계에서 널리 인정받아온 탁월한 창작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분투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현실의 문제들 앞에 놓인 그의 좌절감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것. 그리고 <노 베어스>는, 이를 다루는 솔직한 고백이자, 서글픈 탄식이며, 대담한 예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025. 04.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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