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에 대한 병리적 집착과, 정신적 합일의 숭고함이 공존한다.
※ 스포일러 있음.
작가 최진영의 <구의 증명>은 무척 아이러니컬하다. 터무니없는 테마를 다루면서도 서정적인 분위기를 놓아버리지 않고, 연인 사이의 간절한 열애에 관해 적었음에도 즐거움보다는 고통에 더 주목하며, 육체에 대한 병리적 집착을 보여줌과 동시에 정신적 합일의 숭고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야말로 기묘한 소설이자 뒤틀린 문학이다.
그런데, 이토록 거침없으면서 야심만만한 글만이 선사할 수 있는 꽤나 기이한 감동이 있다. 개운치 못한 뒷맛과 떨칠 수 없는 불쾌함 속에서 누군가의 절실한 진심은 자신의 의미를 작게나마 읽는 이의 무의식에 아로새긴다. 다시 말해 아홉 번을 고개 젓도록 만들어도 한 번의 끄덕임만큼은 보장하는, 이 독특한 작품에 대한 나의 의견은 아래와 같다.
만약 내가 이 서사를 설계했다고 상상해 보면, 모두가 파격적이면서도 비윤리적이라 여겼을 그 소재는 집필의 마지막 단계에서 채택되었으리라 예측한다. 피 터지게 애정하는 이의 시신을 망설임 없이 뜯어먹는 엽기적인 장면들이 없다 해도, 이 이야기의 어떤 점들은 나름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어버이의 부재에도 넘치는 사랑이 곁을 지켜주던 한 소녀의 열렬함과, 무능력한 부모의 존재로 인해 고단한 날들을 견뎌야 하는 한 소년의 어두움을 각각 새하얗게 비어있음과 새까맣게 채워짐으로 대조시킨 간명한 상징들이 바로 그러한 포인트이다.
통상적인 연애소설들이 따르는 몇 가지의 전형적인 작법들을 자연스레 위반함 또한 인상 깊은 부분이다. 담과 구의 서로를 향한 연정이 외부에 의해 힐난받는 시기는 이들의 유년 시절이라는 점과, 비열하고도 냉혹한 세계를 버티는 자들의 지난한 삶에 대한 의지가 유독 질기면서도 형형함을 강조하는 것 역시 내게는 개성적인 내용으로 느껴진다.
다만, 이러한 요소들만으로 이루어진 한 권의 도서가 과연 서점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가라는 필연적인 질문을 고민해 보면, 어쩐지 망설임 끝에 침묵하게 된다. 아마도 이 지점에서, 예술가는 자신의 모든 창작적 능력을 세상에 증명해 보이고픈 욕구와 마주했으리라 짐작한다. 이에 따른 위험하고도 도발적인 그 선택은, 불호와 불 같은 호의 대립, 비추천과 장대비 같은 추천의 양립이라는 흥미로운 결과를 이끌어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책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명작 내지 수작의 반열에 오를만한 정도는 아니라 측정하지만, 무료한 날들 가운데 한 번쯤 집중하여 읽어 볼 만한 재미는 지녔다고 평가한다. 특히 누군가와의 열정적인 대화를 희구하시는 분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독서가 될 것이다.
2025. 03.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