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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와하나 Aug 14. 2022

[ 가출하겠습니다 ]





  20살 처음 커피를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부산에서는 유명하다는 여러 곳의 카페를 돌아보고 난 뒤, 온갖 문화의 중심지이자 대한민국 수도에서의 커피 트렌드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마다 음식 특색이 있듯 서울은 좀 다를까? 하는 의문에서였다. 집에는 '가출합니다, 서울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쪽지 하나 달랑 남기고 KTX 타고 서울로 상경했다. 서울에 도착하자 불이 나도록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은 내게 어머니는 가정에 불만이 있냐부터 시작해서, 무슨 고민이 있느냐, 어릴 때 하지도 않던 가출을 그 나이 먹고 하냐라고 다그쳤다. 서울 구경이 하고 싶어서 그냥 올라왔다. 다시 내려갈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 라고 전하자 어머니는


"니 또라이가, 구경 잘하고 온나"


라며 전화를 끊으셨다. '가출합니다'는 적지 말 걸 그랬다.




KTX 역에서 이제 막 내린 나에게 서울의 첫 광경은 6월 뜨거운 햇 살과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무더운 열기 그리고 서울역 계단에서 여름을 만끽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노숙자 분들 있었다. 계단에 누워 보헤미안의 영혼을 지닌 몇몇 분들이 웃통을 까고 누워 유유자적하게 선텐을 즐기시고 계셨고, 다른 한쪽 계단에서는 술판이 벌어져 있었다. 게다가 KTX 정문 바로 옆으로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흡연을 하고 있었다. 이때는 흡연 부스도 없었다. 담배 냄새와 더불어 어디선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찐한 찌린내와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넓은 차도, 수많은 인파들 그리고 서울의 무더운 여름 날씨는 내게 공황장애를 선사했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데 역과 역 사이가 왜 그리 거리 먼 것인지, 흔들리는 정신을 부여잡고 첫 번째 목적지인 이태원에 도착했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라바짜(Lavazza) 커피를 취급하는 곳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크 아웃했는데, 그 당시 가격이 6,000원이었다. 무려 12년 전인데도 말이다. 흠칫 놀랬지만 이것이 서울의 물가인가 하며 침착한 척 결제를 하고 길을 나섰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고급 레스토랑에서 커피 한잔을 테이크 아웃하고 나왔던 것. 어쩐지 주문받는 사람이 의아하게 보긴 하더라. 무작정 서울로 올라 간 터라 어디로 향할지 정해놓지 않아서 무작정 서울을 누비고 다녔다. 그렇게 정처 없이 홍대와 신촌, 압구정, 인사동, 이태원을 누비고 내려온 날. 카페 투어에 재미를 붙여 그날을 기점으로 해마다 서울에 올라가 핫하다는 카페를 다녀오고 있다. 심각한 길치이지만 지금은 몇 번 다녀왔다고 혼자서도 잘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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