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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어야 Nov 03. 2023

내가 왜 시골에 살게 되었을까?

23년을 한 장소에서 태어나고 자라기까지는 도자기가 늘 함께였다.


성인이 되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본가가 어딘지 물어본다. 질문을 계기 삼아 내가 시골에 살게 되었는지 적어보기로 했다.



"내가 왜 시골에 사냐면요"



우리집은 편의점 하나 구닥다리 동네슈퍼 하나 없는, 산 아래 드넓은 논밭뷰와 흐르는 강물이 자랑인 시골에 있다.


2014년 첫 아이폰을 사용한 날, 마당 정원에 뛰어가 엎드려서 찍어본 사진이다. 엉뚱한 사진이어도 애착이 많은 사진이다.



시골에 살게 된 최초의 배경부터 말하자면, 엄마아빠가 귀촌생활을 꿈꾸고 시골에 온 것은 절대 아니다. 엄마는 도시에서 자랐고 공예미술을 좋아했다친구도 무지 많았고, 시끌벅적한 풍물패 동아리 회장단도 맡았던 우리 엄마, 그런 엄마가 26살에 시골 생활을 원했냐고? 절대 아니다. 엄마는 아직도 입시시절에 그린 데생을 가지고 있는데, 엄마는 다시 보니까 너무 못 그렸다고 하지만 내 눈엔 너무 잘 그려진 그림이었다. 이렇게 끼가 많은 엄마가 시골을 원했을 리가 없다. 조형학과를 다닌 엄마의 주전공은 도예학이다. 엄마 역시 도자기를 전공했고, 실기도 무지 잘했던 학생이었다고 한다.(엄마한테 들었다.)


이전에 말한 적 있듯 아빠는 도예가다. 도예가 중에서도 장작가마로 도자기를 굽는 전통 도예 작가이다. 사실 할아버지도 전통 도예가였기에 가업으로 이어가고 있다. 누누이 말하지만 아빠는 '스님'이 될 운명이었는데, 부처가 '우리'랑 꼭 만나라고 스님의 길로 인도하지 않은 것 같달까. 암튼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인 건 확실함과 별개로 인내력이 굉장하고 또 그만큼 느긋함을 추구한다. 그래서 흙을 고르는 일, 물레를 차는 일, 가마에 불을 때는 모든 일이 아빠와 정말 잘 맞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엄마와 아빠는 '도자기'로 만난 인연이다. 엄마는 대학 졸업 후 얻은 직장에서 출퇴근을 하며 오고 가다 우연히 할아버지 작품을 보게 되었고, 또 우연히 동기가 그곳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잠시잠시 핑계삼아 전시 일을 돕다 정식으로 일하게 되었고 그 일에 빠져 아빠를 만났다고 했다. 그렇게 엄마는 아빠를 만났고, 아빠가 작업하는 모습도 당연히 봤을 거다. 엄마는 아빠 작품을 제일 좋아한다.(물론 아빠도 제일 좋아한다. 엄마는 늘 아니라고 웃어넘기지만. 무튼 그렇다.) 엄마는 아빠 작품을 보면서 도예과를 전공한 작가로서 응원할 정도로 멋진 작품이라고 한다. 아빠는 물레를 잘 차고 엄마는 조각을 잘하니까. 그래서 아빠를 믿고 이 시골에 함께 들어왔다.(간혹 엄마도 아빠 옆에서 작품 활동을 하지만 정말 일부랄까. 그래서 그거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엄마를 대상으로 은밀한 취재를 한 후 남겨보도록 하겠다. 은밀한 취재인 이유는 내가 이 글을 쓰는 걸 적어도 내 주변에선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랄까.) 



분청사기는 아빠와 닮아있다. 백자와는 다른 분청사기의 멋은 일상과 가까운 순박함이다. 아빠 역시 순박한 사람이다.



작가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한적한 시골이 필요했고, 자리를 잡기 위해 여러 과정들이 있었지만, 그 조건을 갖춘 지금 우리집이 작업터이기도 하다. 




내 멋대로 만든 장작가마 터 잡기 조건

1. 가마 연기로부터 마을 주민들이 불편함을 느껴선 안 된다.

2. 흙과 불과 나무, 바람 자유로운 환경이어야 한다.





잘 모르면서 끄적 적다 보니 겨우 2개뿐이라 도예가 딸로서 민망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좋은 기운이 깃든 공간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집은 바로 뒤에 산이 있는 마을 끝집에, 집을 오려면 꼭 건너야 하는 다리 강과 이어지는 물이 흐른다. (그래. 풍수지리로 따지면 배산임수의 터가 우리집이다.) 확실한 건 넓은 공간을 원했고 그에 따른 현실적인 문제가 컸겠지만 그 사정까지 자세히 알지는 못하는 나는 이 정도만 적어본다.


내가 엄마 뱃속 안에서 수영하면서 놀 때 아빠랑 엄마는 벽돌 하나하나 만들고 쌓아 가마터를 만들었다. 물론 이전에도 아빠는 도자기를 만들었지만 아빠 '가마'가 생기기까지 시간이 꽤나 걸렸다. 그래서 집에 애착이 가장 많은 건 아빠랑 엄마일 거다. 어렵게 땅을 얻고 지금의 모습으로 가꿔내기까지 많은 손길이 닿았다.(너른 마당을 지금처럼 깨끗하게 관리하기까지 엄마 아빠가 얼마나 부지런했는지 다 커서야 느꼈다. 심지어 4명의 자식까지 케어하면서.) 그렇게 '집'은 큰 '꿈'을 가지고 시작되었고, 지금은 우리 역시 '꿈'을 꾸게 만들 수 있는 곳이 되었다.



가마 뒤편에서 찍은 노을이었다. 늘 이런 따스한 순간들을 눈에 담을 수 있어 또 한 번 감사하다고 인사한다.



눈 떠보니 시골에 태어났기에 내가 선택할 순 없었지만, 내가 이런 사고를 할 수 있던 모든 원인은 작가 생활을 하는 부모 아래 시골에서 재미나게 컸기 때문이다. 6인 식구가 모두 다 함께 풍족한 해외여행을 다니고, 패션을 좋아하는 내가 명품을 손쉽게 살 정도로 부유하진 않지만 이 정도로 성장한 걸 보면 나름 시골생활 상위 1%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이야기에 배경지가 될 뿐이지만, 이 이야기는 나의 뿌리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말해주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렇게 부모님의 과거를 들어보면 더 깊은 것들을 알게 되기도 한다. 엄마와 아빠도 나처럼 어린 시절이 있었고 결혼을 하기 전까지 서로의 삶을 살다 왔을 거라고. 부모님과의 의견 다툼이 생길 때, 화가 나더라도 나와는 다른 환경에서 자랐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엄마 아빠도 자식으로서 성장해왔다고.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부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적다 보니 드라마가 별 내용이 아닌 것 같다. 이런 각자의 사소한 이야기들이 모이면 그게 드라마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P.S. 디어마이프렌즈 ost 트랙 중 하나인 'Hello My Romance'를 들으면서 글을 쓰는데 글이 술술 써졌다. 같이 들어봐도 좋을 것 같아 남겨본다.    https://youtu.be/nJKa1AwapGI?feature=shared 


2023.11.03      날씨 맑음     기록 : 악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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