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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어엄마 May 02. 2023

그 집 아빠의 육아 비밀

스칸디 육아는 가라, 동유럽 육아가 왔다!

독일남자 K는 전혀 생선을 먹지 못한다. 70년대생인 그는 맞벌이 부모님 대신 할머니 손에 자랐다. K의 생선 혐오에 대해 커가면서 여러 가지 이론들이 식구들끼리 회자되었으나, 마른 생선 썰이 가장 유력하다. 어린 K가 잘못을 할 때마다 할머니가 커다란 마른 생선으로 K를 쫓아다니면서 마구 때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K는 할머니에게 앙금이 있지 않다.  오히려 K와 할머니는 매주 같이 축구경기를 시청할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K의 고백에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그리고 다들 곧 알 수 없는 표정과 함께 깊은 체벌의 추억에 잠겼다. 그리고는 나는 어릴 때 양육자에게 뭘로 맞아 봤다 썰 풀기 대회가 시작되었다. 폴란드 아버지를 둔 A는 허리띠, 베트남 이민 2세 B는 아버지에게 대들었다가 슬리퍼가 날아왔다고 했다. 80년도에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구두 주걱이었다. 


그 당시 양육자들에게 아이들은 손으로 몇 대 치면 화면이 돌아오는 아날로그 티브이 정도였던 것 같다. 맞아야 사람 되고 정신을 차린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했던 시절이었다. 요즘에는 스마트 티브이의 화면이 제대로 안 나온다고 OLED화면을 손으로 쾅쾅 쳤다가는 석기시대 돌 깎는 노인 취급을 받을 것이다. 양육방식이란 건 진화하는 것이고 옛날 방식을 예전에 통했다는 이유로 계속해나갈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런데 최근에 본  두 아빠들의 육아는 힘들게 살던 그때 그 시절 옛날 어른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그게 참 신선했다.  



얼마 전 금쪽이는 지구의 날 기념으로 유치원에서 일주일 내내 환경보호에 대해 배웠다. 깡통과 상자를 가져가서 토끼 모양 연필꽂이를 만들었다. 토요일 아침에는 배움의 마지막 실천으로 동네 쓰레기 줍기 행사가 있었다. 하지만 이 행사에는 80명 원아 중 고작 11명의 잠이 덜 깬 아이들만 참석했다. 


이 행사 주최에 가장 주도적이었던 사람은 우리 유치원에서 학부모 대표를 맡고 있는 딸 둘 아빠다. 이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몬테소리 학교 교사로 대안적 교육에 매우 관심이 많다. 항상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보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지지해 주는 것을 강조한다. 키가 190에 긴 머리를 상투로 묶고 다니셔서 눈에 확 들어온다. 항상 친환경 브랜드의 옷을 입고, 비싼 덴마크 자전거로 딸들의 통학을 돕는다. 독일 힙스터 아빠의 교과서 같은 분이다. 


우리 동네 유치원 학부모 대표님이랑 비슷하게 생긴 남자의 무료 사진


그리고 힙스터 아빠는 애들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긴 다리를 구부려 기후변화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하지만 노력이 무색하게도 딸들은 전~혀 쓰레기 줍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아이들은 재미없다고 피곤하다고 징징 거렸다. 유치원 놀이터 담장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왜? 왜 해야 돼?"만 반복했다. 


힙스터 아빠네만 그런 게 아니었다. 만 2세부터 6살까지의 자녀를 데리고 귀한 토요일 아침에 유치원 행사에 참여한 "교육에 관심 많은" 부모님들은 쓰레기 줍기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 대신 동네 여기저기에 숨어 있는 쓰레기들을 모았다. 우리 집 아이도 협조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집에서 가지고 나온 장난감을 가지고 화단에서 소방차 놀이를 한다고 뛰어가버렸다. 뻘쭘해진 나도 역시 아이 대신 주섬주섬 쓰레기를 주워서 선생님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핫도그와 바꿨다.  


그러나 딱 한 집은 아이를 설득해서 쓰레기를 줍게 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광경은 너무 담백하여 비현실적일 정도였다.  


"배고파? 일을 해야 돼. 빨리!! 저기 저 핫도그 보이지? 핫도그를 먹으려면 쓰레기를 줍는 거야."


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 아빠의 독어에는 강한 동유럽 억양이 묻어 있었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아빠의 외침에 아이는 후다닥 쓰레기를 모았다. 나와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저거다! 애가 양육자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저 모습! 왜 요즘 다들 저게 안되지? 


친환경 건축으로 상을 받은 유치원 건물 앞에서 펼쳐진 이 광경을 보고 깨달았다. 왜 지금 와서 아이한테 친환경 어쩌고 구구절절 설명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냔 말이다. 지난 일주일 내내 애들이 유치원에서 배운 게 그건데. 결국 우리 집 금쪽이는 힘들다 어쩌다 말싸움만 하다가 핫도그만 먹고 집에 돌아왔다.



금요일에는 아이와 함께 두 번째 무용 수업을 들어갔다. 금쪽이는 저번 주에 무섭다 창피하다 못하겠다며 나와 싸우다가 막상 무용을 해보니 재밌다고 했다. 수업 장소에 들어가자마자 누나들과 훌라후프를 하면서 놀았다. 저번에 놀이터에서 나를 심란하게 했던 우크라이나 모자도 수업에 들어왔다. 확실히 두 번째 수업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많이 줄었다. 


밖에 기다릴 공간이 없어서 양육자들이 교실 뒤에 앉아 수업을 지켜보았다. 내 옆에는 컴퓨터를 가져와 열심히 업무를 보고 계신 아버지 하나가 있었다. 가운데 서 있는 파란색 바지를 입은 키 큰 남자아이의 아빠인가 보다. 그리고 7살 정도 되어 보이는 이 아이는 수업 시간 45분 내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엉엉 울면서 말이다. 다른 아이들이 펄쩍펄쩍 개구리 점프를 해도, 선생님이 공중 다리 찢기 시범을 보여 탄성을 자아내도, 원래 있던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손을 바지주머니에 넣은 아이는 뒤에서 컴퓨터만 들여보고 있는 아빠를 힐끗힐끗하면서 계속 눈물을 흘렸다. 

울지 마 T.T


꼼짝 안 하고 울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으니 내가 다 안쓰러웠다. 왜 쟤 아빠는 애한테 수업을 참여하라는 소리를 안 할까? 선생님은 왜 가만히 있지? 한국 같으면 선생님은 물론이고, 아이랑 같이 온 양육자뿐만이 아니라 처음 보는 사람들까지 뒤에서 응원할 텐데 말이다. 


"철수야! 가서 해봐, 재밌어!"

"선생님! 철수 잘할 수 있죠? 그래, 그래. 선생님 손 잡고, 옳지!"


뭐 그런 둥가둥가 말이다.


수업이 끝나자 옆에 앉은 아빠는 컴퓨터를 닫았다. 아이는 어느새 울음을 그쳤고, 아빠에게 말없이 걸어왔다. 아빠는 전혀 얼굴표정에 변화 없이 낮은 어조로 한 마디 했다. 우크라이나 말 같아서 전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대강 눈치를 보니 집에 가자, 뭐 이런 거 같았다. 


2층에서 나선형 계단으로 내려오며 이 신기한 부자들을 관찰했다. 둘 다 자전거를 타고 왔는지 헬멧을 고쳐 쓰고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아이도 그렇고 아빠도 그렇고, 아주 편한 얼굴이었다.




요즘 많은 아이들이 정신과를 찾는다. "유리로 된 아이"를 쓴 독일 아동정신건강전문의 미하엘 빈터호프 박사에 따르면 아이들에게 부모가 맞춰가는 요즘식 육아로 인하여 아이들의 행동 양상이 18개월 수준에 멈춘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경우 아이들은 커가면서 ADHD 등의 문제가 계속 생긴다. 


빈터호프 박사를 포함한 많은 의사들 (한국 육아 바이블 삐뽀삐뽀 119 하정훈 선생님 역시 비슷한 주장을 하시는 것을 들었다)은 옛날식 육아의 장점을 많은 이들이 잊고 있다고 얘기한다. 아이들은 적당한 타율성과 어려움을 경험해야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다. 명확한 원칙과 더불어, 힘듦을 극복한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불안감이 낮아져서 오히려 육아가 쉬워진다. 애들이 좌절을 하면 하게 놔두고, 양육자가 먼저 나서 장애물을 치워주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래야 아이들의 행동이 영아기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성장한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 "악어엄마"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엄마는 왜 우리를 꼭 껴안아 주지 않아요?”
“너희가 다칠까 봐.”
악어 엄마가 울퉁불퉁한 얼굴로 말했어.
“그래도 너희에게서 한시도 눈을 뗀 적은 없단다.”


물론 세상에는 엄마가 아주 많다. 한국 엄마도 있고, 독일엄마도 있고, 동유럽 엄마도 있다. 비바람 맞지 않게 알을 품어 주는 펭귄 엄마도 있고, 알만 낳고 그냥 가버리는 타조 엄마도 있다. 그리고 악어 엄마는 아이가 원하는 걸 다 못해준다고 미안해하지 않는다. “비바람을 막아 주지도 먹이를 잡아 주지도 않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볼 뿐 눈을 떼지도, 아주 눈을 감지도 않지.” 그렇지만 아기 악어들은 잘 자란다. 


아이가 울면서 45분을 꼼짝 않고 서 있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업이 끝나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냥 집에 데려가는 아빠. 일을 해야 먹을 수 있다는 아주 원초적인 원칙을 강조하며, 절대 먼저 나서 아이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주지 않는 아빠. 이런 투박한 동유럽 아빠육아를 보자 악어 엄마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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