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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어엄마 Nov 15. 2023

네덜란드 기후시위의 한국 어린이

놀이터에 갔더니 그레타 툰베리가

남편이 잔업 시간이 많아서 연말까지 써야 하는 휴가가 2주가 넘는단다. 집에 있기에는 좀 아까워서 암스테르담 사는 친구에게 혹시나 하고 문자를 보냈다. 고맙게도 어디 가지말고 자기네 집에서 자고 가란다. 준비할 것도 없다. 그냥 옷이랑 세면도구를 작은 배낭에 챙긴다. 많이 걸을 것이기 때문에 캐리어는 안 가져간다. 


휴대용 카시트도 챙겨간다. 방석만한 크기인데 독일 안전 기준도 다 통과한 제품이다. 친구가 기차역에서 픽업해 준다고 해서기도 하고 기차에 앉아 창밖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4살 작은 꼬마에게 아주 유용하다. 



우리 집은 자동차가 없다.


우선 우리는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는 대도시에 산다. 나는 집에서 일하고 남편은 걸어서 20분 거리에 직장이 있다. 나는 대학생 때 부터 운전을 했고, 남편은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운전을 잘한다. 핸들 확확 돌려가며 눈으로 대충 보고 한 큐에 주차하는 거 보면 진짜 감탄이 나온다. 그런데 둘 다 자동차를 소유하지 말자고 너무 쉽게 합의를 봤다. 


자동차를 포기하는 것은 개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탄소 중립 실천 방안 중 하나라고 배웠다. 하지만 자동차를 운전하는 비건과 소고기를 먹는 자전거 이용자 중에 누가 더 탄소 배출을 하느냐는 논쟁이 결론이 안 나는 걸 보면 탄소배출량을 정확히 계산하는 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어쨌건 우리 가족은 고기는 완전히 포기 못해서 자동차를 포기했다. 


골치 아프고 귀찮은 건 딱 질색인 나에게는 아예 이런 식으로 탄소 배출을 막아버리는 방법이 딱이다. 가방에 넣고 집에 무겁게 들고 가져와야 되므로 뭘 많이 살 수도 없다. 강제로 미니멀리즘이다. 사람들이 애 키울 때 자동차 필요하지 않냐 어쩌고 했는데, 아마 미래에도 필요 없을 거 같다. 학교니 축구 클럽, 수영장 등등이 다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다. 정 필요하면 공유 자동차 서비스를 이용한다. 




이번에도 배낭 하나 매고 남편과 아이와 함께 네덜란드로 여행을 갔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은 거의 5년 만에 오는데 엄청 좋아졌다. 페리 선착장에 가서 배도 몇 번 타니 아이가 신나했다. 날씨도 오랜만에 화창하고 파란 하늘이 너무 예쁘다. 그래도 11월 바람은 제법 매서워서 반대쪽으로 나가기로 했다. 출구가 어딘가 찾는데 피켓을 든 사람들이 보인다. 


"여보, 원래 시위는 탁 트인 광장에서 하는 거잖아. 저 집 따라가면 되겠다."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을 따라갔더니 길이 나왔다. 역시 난 타고난 길잡이 어쩌고 자뻑하고 있는데 어라, 우리 주위에 피켓을 든 사람들이 가득하다. 사람들이 유인물을 나누어 준다. 기후 시위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행진 중이다. 갑자기 아이가 쉬가 마렵단다. 가까운 맥도널드에 들어갔더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피켓 들고 있는 사람들도 꽤 있는 거 보니 중간에 우리처럼 들어왔나 보다. 남편이 배가 고프다면서 대체육으로 만든 버거를 먹겠다고 주문을 하러 가고선 감자튀김만 들고 돌아왔다. 기후 시위대가 맥도널드에서 밥 먹는 게 좀 양심에 찔렸는지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 채식 버거가 다 떨어졌단다.


아이에게 밖에 시위대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했다. 


"엄마, 지구가 아파?" 

"응, 그래서 장난감 살 때도 잘 생각해야 해. 플라스틱 장난감은 재활용 잘 안되거든."

"엄마! 그럼 우리 놀이터에 가자!"


앗, 이런 커브볼이. 


그리하여 암스테르담에 간 가족은 놀이터를 찾으러 가게 되었다.



가까운 곳으로 검색해 보니 국립 박물관 뒤에 괜찮은 놀이터가 하나 있단다. 지하철 역으로 내려갔더니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집에서 만든 피켓을 들고 너도 나도 기차를 기다린다. 아이들 얼굴엔 무지개가 그려져 있고 아빠는 북극곰이 그려진 피켓을 들고 있다. 역에서 올라오니 드럼 소리가 요란한 클럽 음악이 들린다. 아까 봤던 시위대들이 국립 박물관 쪽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다시 엉겁결에 시위대와 함께 행진했다. 아이 데리고 걷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은 속도다. 공사 중인 건물에는 기후 활동가들이 올라가 현수막을 설치하고 사람들은 환호를 지른다. 길가에는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사람이 나무 바스켓에 잔뜩 담긴 사과를 나누어 준다. 축제 분위기다. 평화롭고 호기롭다. 우리집 꼬맹이도 덩달아 박수도 치고 구호도 따라한다. 


"미래를 위한 할머니"라는 단체 (Omas for future) 도 보았다. 깜찍한 그림을 얼굴에 그려 넣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같이 피켓을 들고 기후 정의는 사회 정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거야 말로 진정한 스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기후변화 시위를 훌륭하게 해낸 아들을 위해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도로는 시위대로 꽉 차 있어 좀 돌아서 가보니 작은 놀이터가 보였다. 시위에 참가했던 아이들이 깃발과 플래카드를 치워놓고 신나게 미끄럼틀을 타고 있었다. 떨어지면 꽤 아플 것 같은 높이인데 그냥 손으로 잡을 만한 게 별로 없는 채로 나무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독일하고 비슷하면서도 다른 시스템이다. 아들이 그네를 타러 달려가니 다른 가족 역시 대기 중이었다. 네덜란드 아빠가 같이 타면 된다면서 아들을 그네에 앉혀 주었다. 한국 아이와 네덜란드 아이가 같이 앉아 그네를 타고, 한국 엄마랑 네덜란드 아빠가 높이 그네를 밀어주었다. 


옆에서는 시위대들의 깃발이 보였다. 팔레스타인 국기도 지나갔다. 요란한 음악 소리와 시위대의 환호가 들렸다. 




나중에 뉴스를 검색하니 우리가 참가한 것은 네덜란드 역사 상 가장 큰 기후 관련 시위였단다. 또한 놀이터가 위치했던 국립박물관 앞에서는 그레타 툰베리가 연사로 나서며 팔레스타인과 아프가니스탄 출신 여성들과 함께 무대를 나누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본 네덜란드 환경운동가가 무대에 뛰쳐 올라가 툰베리에게 "나는 환경 관련 시위하러 온 거지 정치적 견해를 들으러 온 게 아니다" 라며 마이크를 뺏으려고 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전세계에 송출되었다.


 

출처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1116049.html


환경 문제가 정치랑 분리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팔레스타인과 같은 복잡한 문제까지 더해지면 환경운동가들의 짐이 너무 커진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 두 사람 모두의 입장이 모두 수긍이 갔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거리에 나가 소리 지르는 것 만으로는 부족해도 한참 부족함을 깨달았다. 


하지만 시위에 나갔다가 잠이 들어 버린 아이들을 안고 행진하는 부모들과 조부모들을 보았다. 그리고 엉겁결에 시위에 참가했지만 뜻은 같은 한국 어린이가 있었다. 칙칙하기로 유명한 유럽의 11월, 햇빛이 짱짱 나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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