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해온 항해의 항구인 목적노릇. 30/08/25.
.zaka.thewowooki.비움kenōsis.과.채움plēroō.
.διώκω.diōkō.디오코.쫓기는.노릇.30/08/25.
.오늘도 여전히
다조급한 긁힘과 쫓기는듯한 diōkō 날섬이
찌푸린 하늘 느닷 소나기 쏟아지는 날씨같게 느껴집니다.
하루종일의 시간속에 하나의 이슈를
극복해 내기위해서 집중해야만 하는
하강의 소모 .
팔다리와 목까지 저려올 정도의 긴장속에서도
오늘만을 위해서 아니라
향.해온 항.해의
항.구인 목적에
다다르도록 어찌라도 곧 끝내고 싶은 ,
그 완성의 시간을 맞이하고 싶어하는 심정이
어쩌면 이제의 다조급한 긁힘과
쫓기는듯한 diōkō 날 섬을 만들어 내는가
여겨집니다.
다른 고백으로는
어쩌면 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라는,
사실 내 힘으로는 거의 불가능해 보이지만,
주어주신 소명이라 붙잡고만 있음에 대한
"두려움" 이라 까지 할수 있습니다.
.삶의 기준삼은 성경에는 늘
상반되나 쌍둥이같은 반전을 내포하는
의미들을 공존시켜 놓으셨습니다.
.비움. kenōsis. 케노시스. κένωσις.
.채움. plēroō . 플레오. πληρό.
.나를 비움으로 신의 영광을 채움.
이라는 극적인 대비가
다만 현실에는 그러하지 못해도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는 실로
얻어내고 싶은 성배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공연연출감독으로서
크리에이티브를 구현하고자 할때는
늘..
무언가로 채우려 합니다.
무언가로 채워야만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나서야 비울수 있는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정석적인 방식으로 볼 때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먼저 비운다면
그 무엇으로 보여줄 것인가
에 대한 질문에 쉽사리 답을 하지 못합니다.
.진리와 작품을 동등하게 수용할 수 있다면 ,
과연 그것이 받아들여 질 수 있을까 ,
작품이 감당할 수 있는
진리의 크기는 어디까지 일까 ,
얼마만큼일까를 측정할 수는 있을까 하는
작품의 궁극적 존재이유를 마련함에 있어
나의 비움과 채움을 어떻게 취해야할지
쉽사리 답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한 화두가 오늘도 여전히
다조급한 긁힘과 쫓기는듯한 diōkō 날섬이
제 안 inner에 도사리고 있는 이유입니다.
.예술가로서의 예술가치 궁극에
이르고자 함 이전 ,
궁극에 이를 작품과 그로인한 창의자적
깊이를 언제되서야 갖출수 있을까 하는
끝없는 소용돌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멀었나 봅니다.
.zero.ro부터 복잡함의 미학이기.異.
@alphaMega.shin.gakai. 알파메가.신.가카이.
30/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