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오기 전 부동산에서 우리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 회장님이 아주 열성적이라고 하시던데.. 그래서 회장님이 되시자마자 아파트 입구에 이상한 석고상(?)을 세우셨으며 음악을 틀어 놓기 시작했다고 얘길 들었는데.. 그분의 힘(?)을 체감 중이다. 아름다움을 좋아하시는 분인 듯하다. 아무래도 그 석고상은 아무래도 아무래도 내가 아무리 이해하고 아름답다고 나에게 주문을 걸어봐도 잘 안되는데... 근래에 가장 마음에 드는 그분의 취향을 만났다.
아파트 입구에 튤립 화분을 주욱 놔두시고, 길가 화단에도 1m 간격으로 튤립을 한 송이씩 심어놓은 것.
(생각해보니 진짜 그분의 취향인지, 원래 아파트의 전통인 건지,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결정된 것인지, 아파트 소장님의 취향인 건지 확실히 모르겠네)
아이들을 데리러 왔다 갔다 하며 튤립 보는 재미에 한껏 행복이 올라왔었다. 그런데 나처럼 행복만 느끼면 되는 것이지 튤립이 한 송이씩 없어져가는 것이다. 속상하게... 아파트 뒤쪽 화단은 아예 한 줄 자체가 없고... 나뭇잎은 그대로인 듯한 것으로 보아 꽃만 꺾어간 것 같았다.
열이 받나 안 받나.
그러다 또 나를 돌아봤다. 언제 내가 이렇게 꽃을 좋아했다고. 이런 거 하나 때문에 뭘 이렇게 열 받아하나?
생각해보니 꽃을 좋아했던 기억이 별로 없다. 집에 화분이 있어도 결국엔 돌아가시게 만든 것은 나였고, 꽃바구니가 집에 와도 사람들이 그렇게도 많이 하는 꽃 말리기 한번 해본 적이 없다.
언제 내가 이렇게 꽃을 좋아하게 되었지? 왜?
나이가 먹었나 보다...;;;;;
앞자리가 바뀌어서 그런가 보다....
슬픔이 몰려왔다. 이제 내가 꽃을 좋아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아니, 취향이 바뀌는 것으로 보아 늙어가고 있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웬 청승이고...ㅋㅋㅋ라고 나중에 몇 년 후에 한참 바쁠 때 이 글을 읽으면 그렇게 얘기하겠다.
한편으로는 꽃을 볼 여유가 나에게 있었나? 없었던 것 같다. 이제야 꽃을 볼 여유가 생겼구나?라고 시간의 사치를 누리는 것에 행복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나저나. 이 글을 쓰려는 것은 이것이 아니다. 요즘 글을 실용적으로 썼더니 영.. 글이 산으로 가는군. 의식의 흐름대로 써볼 거다. 오늘은 기필코. 쓰다가 만 글들이 너무 많아서 그냥 글의 완성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나에게 다짐하며 쓰는 글이거든.
아무튼 그 튤립들이 하나둘씩 없어질 때마다 내 마음속도 뻥뻥 뚫리는 것만 같아 우리 집에도 꽃을 사서 꽂아두기로 했다. 이 근처 꽃집이 어디 있었나... 찾아보니 응? 내가 맨날 왔다 갔다 하는 길에 꽃집이 있었다. 이런 무심한 사람을 봤나. 나꿍이를 픽업해서 집에 가는 길에 꽃집에 들렀다. 장미꽃 한 송이에 천 원쯤 하려나...라는 순진한 생각으로 말이다.
나 : 꽃 좀 주세요.
꽃집 이모 : 뭘 드릴까요?
나 : 아................. 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뭔 꽃이 있나요? ;;;;;;;;;;;;;;;;;
진짜 꽃 산 적 없는 여자스럽다. 남편도 나도 꽃 살 돈으로 맛있는 거 한번 더 사 먹자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꽃이란 자체를 잘 몰랐던 것이다.
나 : 한 송이에 얼마나 하나요?
꽃집 이모 : 이건 수입이고 이건 국산이고... 블라블라...
나 : 아........ 뭐가 이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웃음만 나온다. 네가 고르면 되지! 그걸 왜 가게 이모한테 묻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니가 가서 이쁜 거 사러 가놓고 묻는 이유가 뭐지? 이제야 답답~~ 하네.
꽃집 이모 : 만원치 정도 드릴까요?
나 : 네
꽃집 이모 : 이 정도 색이면 될까요?
나 : 헐! 꽃이 이렇게 비싸요?
나도 모르게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진상녀가 되어버렸다.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이렇게 비싸다는 말이 나오다니. 옛날에 대학교 앞에서 장미꽃 100송이에 1만 원에 팔지 않았었나? 그것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때가 이미 20년 정도 되었다.ㅋㅋㅋㅋㅋㅋㅋㅋ 20년 전 시세를 생각하고 있었구나 릴리야. 그때는 학교 앞 당구장도 30분에 500원 했었단다. ㅋㅋㅋ생각해보니 장미꽃 한 송이에 1000원 할 것으로 예상하고 갔으니 뭐 그 정도면 양반은 맞네 ;;;;
아무튼 내가 산 만원치 꽃이다.
아... 꽃이 이렇게 비싼 것이었구나. 난 화단 옆 튤립이 없어진 것을 보상하기 위해 우리 집에 꽃을 한 다발 사 와서 가득 꽂아놓으려고 했는데 내 머릿속 생각만큼 꽃을 꽂아두려면 20만 원 치는 사야 할 것 같았다.
일단 집에 꽃은 꽂아두고 나의 마음을 보상하기 위한 무엇을 찾기 시작했다.
꽃 도매시장에 가보자.
꽃 도매시장을 검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생각한 만큼의 꽃을 내가 생각하는 가격에 사려면 도매시장을 가면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생각보다 도매시장은 우리 집에서 멀지 않았다. 꽃의 가격을 인터넷으로 서치 해보니 내가 꽃 집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였다. ㅋㅋㅋㅋ 우리 집 앞 꽃집 이모 돈 좀 버시겠네 싶기도 하고 말이다. 꽃 도매시장은 고속버스터미널에 있었고, 차 타고 50분쯤 가면 되었다. 시간도 아이들 학교를 보내 놓고 훌쩍 갔다 오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을 사 온 지 3일째가 되었다. 우리 집에 사 온 꽃은 만발했다. 볼 때마다 너무 이쁘다. 꽃 도매시장을 가겠다고 마음먹은 그날부터 까꿍이는 온라인 수업이라 계속 집에 있어 내가 도매시장에 갈 겨를이 없었다. 근데 말이다. 이제 헷갈리기 시작한다.
ㅇ 내가 과연 꽃 도매시장에 가서 꽃을 한 아름 사 오면 그 꽃을 난 잘 즐길 수 있을까?
ㅇ 집안에 만개하는 것까진 좋은데 다 시들고 나면 또.. 그건 내 숙제잖아. 그때는 난 도매시장까지 가서 내 마음속 꽃의 양만큼 사온 나를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ㅇ 거기까지 가서 꽃을 사 오는 것보다 차라리 우리 집 앞에서 꽃을 조금씩 사 와서 계속 꽂아두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래서 사람은 마음먹었을 때 바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답은 다음 주 바로 일단 도매시장 가서 내가 궁금한 것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 구매 후에 한번 집에 한아름 데리고 와서 꽃을 원 없이 보고 처리까지 해보고 난 이후에 다음을 결정하자는 거다. 뭐든 상황이 가능하다면 실행해보고 난 뒤에 후회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계속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꽃이 뭐... 몇 억씩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너무 궁금하고 난 지금 시간도 되니 가보고 결정하도록 하겠다.
아오. 늦바람이 이래서 무섭다.
평생 꽃을 멀리하고 꽃을 본 척도 안 하던 내가 굳이 차를 50분씩 운전해서 가서 꽃을 사 오겠다고 마음먹은 것 보면 말이다. 내가 퍽 신기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