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릴리 Apr 26. 2021

당장 사직서를 던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 nastya_gepp, 출처 Pixabay




아이들이 집에 왔을 때 활짝 웃고 있는 엄마의 모습. 안정된 아이들의 모습. 





평생 일하는 엄마를 두고 어릴 적 내가 제일 바랬던 엄마의 모습을 실행 중이다. 만약 지금 일을 하고 있었다면, 이런 코로나 상황이고 뭣이고 아이들을 어떻게 시간을 때우느냐를 생각했을 것이다. 작년까지도 그랬다. 아니.... 직장 다닐 때 아이를 키우며 항상 그랬다. 나의 체크사항은 항상 아이의 보육의 공백이 있는지 없는지였다. 그게 우선순위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 혼자 둘 수 있는 나이도 아니었고. 아이들의 정서와 상관없이.



휴직을 했다. 엄마가 집에 있다 보니 아이들이 한없이 나약해진 것일 수도 있다. 학원을 가지 않아도 집에 엄마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집에 있고 싶어 한다. 학원에 가기 싫어한다. 비판적인 눈길로 '너희가 엄마가 집에 있어서 그래! 엄마가 직장에 가봐. 어떻게 할래? 학원 갈 수밖에 없겠지?'라고 생각하며 아이들의 하루 생활을 보니 생각보다 힘들다. 학원을 그냥 가기만 가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학원 하나에 숙제 한 뭉테기, 학교 온라인 수업에 대한 숙제 한 뭉치. 학원을 하나만 다녀도 아이는 지친다. 특히 3학년 아이는 학교에 갔다 오는 날은 책가방이 무겁디무겁다. 무게를 달아보니 7kg다. 학교 등교수업과 온라인 수업을 병행하다 보니 학교에 책을 두고 다닐 수 없다. 아이는 하루하루 교과서와 공책을 모두 들고 다닌다. 지친 몸으로 하교하고, 영어숙제를 시작하고, 허겁지겁 영어학원을 간다. 갔다 오면 6시. 그제서야 한숨 돌린다. 아직 학교 숙제를 하지 않았다면 이제서야 시작해야 할 것이고, 아직 수학 공부조차 시작도 하지 않은 시간이 6시다. 아이는 언제 놀고 언제 쉬지? 아이를 이제껏 수학 공부를 시키지도 않고, 영어학원 하나만 보냈다. 두 달을 그렇게 놀리니 이제 내가 두렵다. 과연 이게 맞나? 내가 복직하게 되면 아이는 또 어딘지 모르게 학원을 더 다녀야 할 것이고, 그때 갈 수 있는 학원이 있어야 할 텐데... 둘째 아이 또한 비슷한 생활이다. 영어숙제 후 영어학원, 태권도 학원. 영어학원 가지 않는 날은 또 다른 무엇들. 하루가 바쁘다. 그래도 학원 중간중간 집에 들르면 내가 집에 있다. 아이들은 집에서 간식도 먹고, 좀 쉰다. 학원 가기 싫은 날은 가끔씩 안 가기도 한다. 복직하면 아이들의 정서함양과 상관없이 학원 뺑뺑이로 돌아가야 한다. 엄마가 밖에 있으니 아이들을 보살필 여유가 없다. 그냥 학원가!라고 얘기할 것 같다. 아니면 학원 가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 집에서 자기주도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가는 수밖에. 




  아이들이 나에게 '엄마, 이제 일하러 가'라고 얘기 듣기 전까지는 아이들과 함께 있어주고 싶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집에 돌아왔을 때 '학교 잘 다녀왔어?'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과감히 상상해봤다. 내가 사직서를 던지고 난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1. 은행과 직장 대출 : 현재 엄청난 대출을 내 명의로 하고 있다. 그걸 한순간에 다 갚아야 한다. 난 이제 무직자니까. 무직자의 신용으로 빌릴 수 있는 돈은 지금과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2. 신용카드 : 무직자에게 신용카드 발급이 가능할까?



3.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도감 : 지난주에도 절실히 깨달았다. 직업의 소중함을. 신용카드 명세서를 확인하며, 결제일 전에 선 결제하며. 마이너스 통장에서 돈을 빼도 내가 돌아가면 그 돈을 금방 갚을 수 있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만약 진짜로 돌아갈 곳이 없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마통에서 돈을 뺄 수 있을까?



4. 나 릴리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는 존재감 : 생각해 보니 나를 얘기하는 것 중 큰 부분이 직업이었다. 나의 직업이 나에게 없어진다면 '가정주부'라는 직업만 남는다. '현모양처'. 사회적으로 가정주부라는 직업이 아주 대접받는다면 은행에서도 대출을 쉽게 해줬겠지. 내 직업이 없어진다면 온전히 '릴리' 그 자체로 만 남아 나 혼자 스스로 빛나야 한다. 지금의 직업을 가질 때까지 인생의 아주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어야 했다. 나의 소중한 시간을 그만큼 투자했으니 나를 얘기할 때 내 직업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 직업의 우산을 버리고 다른 우산을 고르기까지, 스스로 빛날 수 있을 때까지 난 또 나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야 할 것이다. 내 직업을 가질 때에는 그래도 엄마 아빠 밑에서 엄마 아빠가 주시는 용돈과 밥, 집에 살면서 편안하게 나만 생각하며 노력하면 됐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 가족을 함께 챙겨가며 나의 노력과 시간을 써야 한다. 




장점은 또 있다. 


1. 아이들이 하교 후에 집에 오면 엄마가 있다. : 불 꺼진 집에 혼자 들어와서 불을 켜는 일.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들어오기 싫은 것. 많이 해봤다. 다행히 동생이 있어 함께 한 일도 있었다. 그런 집에 나의 아이들이 혼자 불 켜게 하고 싶지는 않다. 아이들이 '엄마 이제 날아가도 돼.'라고 얘기할 때까지. 내가 원할 때까지. 그 후에는 나도 또 날아오를 거다.


2. 내 명의를 쓸 수 있다. : 그놈의 겸임금지, 겸직금지 조항 땜에 부딪치는 게 한두 개가 아니다. 뭘 시도해보려고 해도 명의 땜에 시도할 기회조차 없다는 게 싫다. 


3. 지금 내 존재감 보다 더 큰 존재감을 가질 수 있다는 기대감. : 40살 될 때까지 지금의 직업과 함께 살아왔는데, 100살까지 산다면 남은 60살은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도 되지 않을까?



  무엇보다 아이들이 많이 걸린다. 확실한 것은 사직서를 던지고 난 이후 1번 - 대출 관련은 확실히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큰돈이 어디서 갑자기 뿅 나오겠노. 난 복직을 해야만 한다. 대출이 없어질 때까지는. 대출을 어떻게 빨리 갚을 수 있을지는 지금도 노력 중이고, 공부 중이고, 실행 중이다. 그때까지는 불평불만 그만하고 주어진 현실에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정답이다. 



  글을 쓰다 보니 남편에게 무지하게 미안해졌다. 직장에서 힘든 일이 있는지 없는지 난 모르겠다. 묻는 자체를 싫어한다. 직장과 가정이 확실히 분리된 우리 남편. 그에게는 나와 같은 흔들림이 없을까? 어떻게 저렇게 꿋꿋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직장 하루 갔다 오면 하루치 불평불만을 남편에게 쏟곤 했는데. 휴직 후에는 돌아가기 싫다고 징징댔는데 남편은 단 하루도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고 얘기했던 적이 없다. 내가 그만두고 싶다고 하면 '그만둬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봐. 내가 있잖아.'라고 얘기했던 고마운 사람이다. 그가 나에게 큰 나무가 되어줬듯이 나도 그에게 기댈 수 있는 호수가 되어야겠다는 낡디낡은 쓰잘때기 없는 구절이 생각난다. 



  그래. 일단은 오늘을 행복하게, 꽉꽉 채워 보내자. 보람차게. 





작가의 이전글 꽃값이 원래 이렇게 비쌌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