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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Apr 28. 2021

매일 계단 오르기 - 별거 아니네. 모든 시도의 시작도

© geralt, 출처 Pixabay



나날이 살이 찌고 있다.

아이고오

매일 1만 보 가까이 걷고 있음에도 살이 찌는 것은 분명히 많이 먹기 때문이다. 유럽 여행 때처럼. 오랫동안 많이 걷고 걷고 또 걸었음에도 유럽여행 한 달 후 한국 돌아왔을 때 난 10kg이 쪄있었다. 정말 까무잡잡한 탱실탱실한 건강한 돼지가 되어있었던 것. 그때도 지금과 비슷한 상태였던 것 같다. 많이 걷고 많이 먹고. 어쩜 그리 크루아상이 맛있던지! (살 다시 쪄도 되니 또 가서 크루아상을 아사삭 먹고 싶다. 크)

아무튼 살이 찌고 있으니 화가 난다. 집에 있으면서 이래저래 호작질만 하고 뭐 하나 짠하는 것도 없는데 거기다 살까지! 이게 뭐야. 그런데 운동은 하기 싫고. 어쩌란 말임? 

  하루를 들여다보았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집안일을 한다. 집안일 후 앉아 컴퓨터를 켠다. 커피 한 잔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배가 출출해진다. 케이크를 꺼내온다. 떡을 꺼내온다. 빵을 꺼내온다. 커피 한 잔을 더 뽑아온다. 또 케이크를 꺼내온다. 그러다 아이들을 데리러 간다. 뭐 살찔 수밖에 없네. 쩝.

1. 간식을 줄이기로 했다. 

  운동을 하기 싫으니 먼저 쓸데없이 먹는 간식을 줄이기로 했다. 치즈케이크가 한판 남아있으면 엄청 고민할 뻔했는데, 다행히 필라델피아 치즈케이크 한 판을 야금야금 다 잡수셔서 새로 사야 할 때가 되었다. 사지 않았다. 냉장고도 복잡해지니까. 빵이 집에서 떨어지면 죽는 줄 알았는데 안 사봤다. 일주일쯤. 안 죽었다. 떡은 애써 안사고 있었는데 엄마가 직접 쑥을 뜯어서 떡을 해서 어제 대량으로 보내주셨다.(이게 좀 고민이다. 냉동실을 안 복잡하게 유지하려면 얼른 먹어야 하는데.. 떡은 다이어트의 적이라던데...) 암튼 엄마가 보내주시기 전까지 없어도 살 만했다. 

  엄마로부터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커피가 다이어트의 적이라는 것. 아메리카노는 살 안 찌는 거 아녀요? 0칼로리인데?라고 생각하며 하루에도 몇 잔씩 아메리카노도 먹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마시고 가끔씩 라테도 만들어 먹었는데. 그리고 '이건 살 안 쪄'하며 흐흐흐 웃었었는데 엄마가 갑자기 커피가 살이 찐다고 말씀하시는 거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다 보니 손이 벌벌 떨린다. 커피 자체는 살이 안 찌는 것은 맞는데 커피가 위장에 들어가면 끊임없이 위장을 흥분하게 만든단다. 위장이 흥분되어 있으니 계속 음식을 찾게 된다는 것. 처음에는 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커피를 마시면 케이크가 생각났고, 보이차를 마시면 케이크가 생각나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면 빵이 먹고 싶었고, 생강차를 마시면 그냥 그것만 마셔도 오케이였다. 흠... 왠지 신빙성이 있는데? 그래서 당분간 커피도 마셔보지 않기로 했다. 

2. 엘리베이터 이용을 줄이기로 했다.

집이 이제는 12층이다. 저층에 살다 고층으로 오니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이 그렇게 길 수가 없다. 어차피 살도 찌고, 운동도 해야 하니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에 조금씩 올라가 보기로 했다. 처음부터 12층 올라가야지 생각했으면 하지 않았을 텐데 어차피 기다리는 거 3층까지만 올라가 볼까? 5층까지만 올라가 볼까? 그러다 보니 쉽게 12층에 올라오는 거다. 시간도 3분?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그렇게 계단 오르기를 시작해보니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이제는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집에 오는 길은 그냥 계단으로 올라온다. 하루에 3,4회씩은. 운동 부족을 느끼고 있었는데 제법 몸이 좋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체중계에 올라가지 않는 것은 안 비밀. 좌절할 것 같다. 그래도 꾸준히 하다 보면 몸무게는 안 빠질지언정 몸이 단단하게는 변하겠지. 




모든 시작이 그런 가보다. 그래서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도 있나 보다. 오늘부터 시작!이라고 마음먹으면 나 같은 아이는 오히려 그 부담감에 시작이 어렵다. 시작인 것 같지 않게 스며들듯이 시작해보면 부담감도 없고, 한번 시작해본 일이니 계속하는 것이 두렵지도 않다. 계단 올라가기처럼 말이다. 

요즘은 무슨 일이든 '건드리기'를 열심히 하고 있다. '무슨 일이든 성과를 내야 해!'라고 생각하고 '오늘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건드리니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시작하는 것조차 두려웠다. 오히려 '아니면 말지 뭐'라고 생각하고 건드려보니 모든 것이 쉽고 재미있다.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내용과 너무도 다른 내용이지만 이게 편하고 좋다. -결국 이렇게 해봤는데, 목표가 중요해라는 얘길 나중에 하면 안 될 텐데.. - 시작조차 두려워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그냥 지나갔다면 아예 내 것이 아닌 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번 발을 걸쳐보니 이건 ok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니 오히려 내 앞에 펼쳐진 많은 것들 중에서 선택 범위가 줄어든다. 

'그래서 뭐 할 건데?'라고 물으면 아직 답은 없다. 계속 선택지의 번호를 줄여나가기를 할 거다.

'언제까지 건들기만 할 건데?' 시간이 흘러가니 dday는 잡아둘 필요를 느낀다. 다행히 난 어쩔 수 없는 dday가 있다. 휴직 종료 시점까지. 

생각보다 쉬운 일도 있고, 생각보다 어려운 일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건드림 속에서 느낀 것은 '인터넷이 전부가 아니다.', '무조건 움직여봐라.', '눈 꼭 감고 한번 해봐라.'라는 것이다. 

오늘도 열심히 건드려본다. 이러다 보면 뭐 하나 툭 튀어나오겠지. 얼른 튀어나와라. 얼른 튀어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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