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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Mar 10. 2021

내 아이가 세상에 나올 때까지 - 나의 출산 이야기

© carlonavarro, 출처 Unsplash

  주변 친구들보다 빨리 결혼을 했고, 빨리 아이를 가졌다. 출산 경험에 대해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없었다. 나에게 출산 경험을 알려줄 것은 맘카페와 책 뿐. 그 곳에서는 출산징후에 대해 자세히 쓴 글이 많았다. 주기적으로 진통이 온다, 갑자기 너무 아이가 빨리 나와서 혼자 분만실에 들어갔다, 많이 참으면 안된다 등등. 이 글들을 보고 출산 하는 날을 머릿속 상상까지 완료.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아이만 낳으면 된다. 


  출산예정일 3주전부터는 출산해도 괜찮으니 조급증 릴리는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출산예정일 한달도 전부터 아이가 세상으로 나온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몸의 변화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왠걸. 출산예정일이 되어도 책과 맘카페에서 나온 출산징후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출산예정일 후 2일째 정기검진일이 되어 병원에 갔더니 의사선생님도 "아이가 작으니 좀 더 기다려보시죠." 그 다음 정기검진도 갈 수 있었다. "아이가 나올 생각이 없네요. 기다려보시고 안되면 다음 정기검진일 때에는 수술날짜 잡죠.". 아이는 37주째부터 뱃속 몸무게가 계속 그대로였다. 2.9kg. 그래서인지 의사도 급하지 않게 생각하셨다. 더 클 생각이 없는 아이라고. 


  출산예정일 한달도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출산예정일 후 9일째까지 아이는 세상에 나올 생각을 하지 않다니. 난 출산예정일 9일째에 포기를 배운다. 언젠가 원이가 (까꿍이 태명) 나오고 싶으면 나오겠지. (돌이켜 생각해보면 산모가 가져서는 안되는 위험한 생각이었지. 아이가 얼마나 뱃속에서 클 줄 알고!) 남편도 그랬던 것 같다.


  출산예정일 후 10일째. 우리는 아무런 의심없이 영화를 예매했다. "뿌라진 화살"(우리엄마는 부러진 화살을 이렇게 부르셨다.) 언제 아이가 나올거란 기대 조차 없다. 아이가 나오기 전에 영화 하나라도 더 봐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배가 주기적으로 아프다는데 배도 안아프고. 그리고 외출 직전 갔던 화장실. 팬티가 이상하다. 흠. 배는 안아픈데 이상하네? 이런 건 글 속에 없었는데. 



자기야. 병원 가보자.


  이미 남편도 아이가 나올 때 되면 나오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별로 놀라지 않는다. "그래, 병원 갔다가 영화보러 가자."



엄마, 병원 갔다가 영화보고 집에 올께요.


  이런 낭창한 아이들을 봤나.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놀란다. 



출산예정일 후 10일째인데 아직 아이가 나오지 않았어요? 
양수가 터졌네요. 
진통이 없으니 유도분만을 합시다. 
무통주사 맞을래요? 


  흠. 선생님. 저 영화를 예매하고 왔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뿌라진 화살 보고싶은데요...........ㅋㅋㅋㅋㅋㅋㅋ


  생각보다 상황은 빠르게 흘러갔다. 우리는 결국 극장을 가지도 못했고, 친정에 가지도 못했다. 그 다음날 새벽 엄마를 병원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미 양수는 터졌고, 억지로 아이가 나올 수 있게 유도분만 주사를 맞았기에 나에게는 시간이 많았다. 무통주사를 맞을 시간. 남들은 너무나도 진행이 빨라 무통주사 맞을 시간도 없었다던데.. 난 시간이 충분했고. 무통주사 약발이 안 먹는 사람도 많다는데, 난 약발도 기가막히게 잘 맞아 아이를 낳는 1,2시간 말고는 진통에 힘들어할 시간도 없었다. 그럼에도 아이가 나올 그 순간 남편에게 


다시는!!! 출산하지 않을거야!!!!!!!!!!!!!!!!!

  라고 소리쳤다. 결국 또 출산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우리 원이는 까꿍이가 되었다. 순탄하게 세상에 나왔던 아가는 마치 하늘이 나에게 준 선물같은 아기였다. 잘 먹고 잘자고. 아기를 키우며 원래 힘들었던 것은 똑같이 힘들었으나 다른 사람처럼 잠을 안잔다거나 안 먹어서 내 마음이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10살이 된 지금. 요즘이 난 그때보다 더 힘들다. 출산할 때 몸고생을 안해서 그런가, 맘고생이 시작된 것 같다. 우리 잘 지내보자 까꿍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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