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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Jan 25. 2021

나에게 주는 선물

병원을 나서며


감사했다.

대구에서 이 곳을 올 때엔 버스를 타고 ktx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힘들게 다녔었는데.

우리집에서 차로 4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상쾌한 기분은 잠시뿐.



그곳에 들어가니 예전 그 기분은 그대로였다.

아무리 속을 멋지게 꾸며놨어도 여전히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여전하다.

쉴새없이 침대를 미는 사람들이 지나갔다. 링거를 꽂고 걸어가는 사람들은 그래도 다행이다.

그 때 나도 그랬었지..



하필 암병동이라니. 아직도 그 곳에 대기하고 있는 사람 중에선 내가 제일 어리다.

그래도 이제는 사람들이 날 쳐다보는 눈빛이 날카롭지는 않다.

2004년 여름. 나만 뚫어져라 쳐다보던 눈빛들이 아직 생생하게 생각나는 것을 보면 그때 나는 진정 어렸었나보다.

새삼스레 나이가 들었음이 감사했다.


이 검사는 예민해서 
침을 삼킬 때에도 조심해야 하고 
재채기가 나올 것 같으면 비상벨 눌러주세요 
잠시 중지하고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요.



건조하게 말하는 간호사 언니. 동생같아 보이기도 했는데... 말의 의미는 무서웠다.





그때도 그랬다.

쉬운 거니까. 금방 끝날 거라고.

그건 순전히 의사 입장에서 쉬운 거였지

당하는 나와 우리 가족 입장에서는 최악이었다.














적응되지 않는 그 시간이 드디어 지나갔다.

언제나와 같이 나에게 주는 선물로 커피를 샀다. 그 속에서 무서움을 잘 이겨낸 나에게 주는 위로의 선물이다.

커피 가격은 10년전과 별반 다를바없다.

그 때 그 커피값은 엄청 비쌌는데.. 커피값은 내가 느끼는 병원의 기운만큼이나 변함이 없다.


집에 오면서 언제나와 같이 엄마아빠께 전화를 했다.

검사를 받고 왔노라고.

잘하고 왔다고.

또 의사선생님은 "3년 후에 다시 봅시다"라고 얘기할 것 같다고.




벌써 이 곳을 다닌지도 20년이 가까워져 온다.


대구-서울을 왔다갔다하며 우리 엄마아빠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뿌리고 다니셨을지.

검사간격이 점차 벌어지며

내가 결혼을 하면서..

엄마아빠는 비로소 편안하게 주무실 수 있으셨을테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나만 있었던 게 아님을 다시 느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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