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주는 선물

병원을 나서며

by 릴리


감사했다.

대구에서 이 곳을 올 때엔 버스를 타고 ktx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힘들게 다녔었는데.

우리집에서 차로 4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상쾌한 기분은 잠시뿐.



그곳에 들어가니 예전 그 기분은 그대로였다.

아무리 속을 멋지게 꾸며놨어도 여전히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여전하다.

쉴새없이 침대를 미는 사람들이 지나갔다. 링거를 꽂고 걸어가는 사람들은 그래도 다행이다.

그 때 나도 그랬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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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암병동이라니. 아직도 그 곳에 대기하고 있는 사람 중에선 내가 제일 어리다.

그래도 이제는 사람들이 날 쳐다보는 눈빛이 날카롭지는 않다.

2004년 여름. 나만 뚫어져라 쳐다보던 눈빛들이 아직 생생하게 생각나는 것을 보면 그때 나는 진정 어렸었나보다.

새삼스레 나이가 들었음이 감사했다.


이 검사는 예민해서
침을 삼킬 때에도 조심해야 하고
재채기가 나올 것 같으면 비상벨 눌러주세요
잠시 중지하고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요.



건조하게 말하는 간호사 언니. 동생같아 보이기도 했는데... 말의 의미는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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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그랬다.

쉬운 거니까. 금방 끝날 거라고.

그건 순전히 의사 입장에서 쉬운 거였지

당하는 나와 우리 가족 입장에서는 최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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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응되지 않는 그 시간이 드디어 지나갔다.

언제나와 같이 나에게 주는 선물로 커피를 샀다. 그 속에서 무서움을 잘 이겨낸 나에게 주는 위로의 선물이다.

커피 가격은 10년전과 별반 다를바없다.

그 때 그 커피값은 엄청 비쌌는데.. 커피값은 내가 느끼는 병원의 기운만큼이나 변함이 없다.


집에 오면서 언제나와 같이 엄마아빠께 전화를 했다.

검사를 받고 왔노라고.

잘하고 왔다고.

또 의사선생님은 "3년 후에 다시 봅시다"라고 얘기할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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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이 곳을 다닌지도 20년이 가까워져 온다.


대구-서울을 왔다갔다하며 우리 엄마아빠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뿌리고 다니셨을지.

검사간격이 점차 벌어지며

내가 결혼을 하면서..

엄마아빠는 비로소 편안하게 주무실 수 있으셨을테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나만 있었던 게 아님을 다시 느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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