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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Jun 21. 2021

아이는 어떻게 키워야 하나요? (feat. 성장환경)



© nmqseps, 출처 Pixabay




독박육아를 하는 중이라 하니 동생이 조카와 함께 집에 놀러왔다. 이렇게 감사할 수가... 동생과 함께 오랜만에 이야기도 오래도록 나누었다.



내 동생은 참 용감한 아이다. 직업의 카테고리가 달라서일까. 동생은 이직도 자주 했고, 지금도 승승가도를 달리고 있는 멋진 워킹맘이다. 요즘은 일이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직업에 대한 회의가 든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그저 멋진 동생이다. 어떻게 저 자리까지 올라갔을까. 그 아이의 의지는 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그럼에도 조카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사랑을 주는 좋은 엄마다. 나의 조급함과 다르게 아이가 준비될 때까지 비록 뒤돌아서 한숨 쉬는 한이 있어도, 차분히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까지 가지고 있다.



우리 둘은 만나면 곧잘 심각한 이야기를 나눈다. (다른 자매들도 그러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신세한탄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이 시간이 소중하고, 큰 깨달음을 준다. 특히 같은 환경에서 자라왔으나 다른 성향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양육환경과 그로 인해 결정지어지는 자녀의 성향에 대해 우리 둘은 아주 열심히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 동생과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눈 것은.


왜 우리는 이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을까.
우리에게 행복의 임계치는 너무도 높다.
어디에서 왔을까.


동생과 나의 공통점을 꼽아본다면

- 같은 환경에서 자랐다. (이게 공통점인가? ㅋㅋㅋ 자매인디..)

- 동생도 나도 남들이 보기에는 참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

- 동생도 나도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

- 왜 더 잘하지 못할까 스스로 채찍질하며 살아간다.

- 과연 무엇이 행복인지, 현재 행복한 상황이어도 잘 모를만큼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동생과 나의 차이점은 성향이 다르고, 행동반경이 다르며, 바이오리듬 자체도 다르다는 것이다. 가지고 있는 능력도 다르다.


그런데 항상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기를 원하며, 나에게 채찍질하며 계발하고자 했던 내가 동생에게도 똑같이 있었다. 현실에 부족함을 느껴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갔지만 동생은 만족한 적이 없다. 다시 그 곳에서 점프 업. 점프 업. 그렇게 힘겹게 현재의 자리에까지 최선을 다해 올라갔다. 이제쯤이면 만족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도 항상 부족함을 느낀다는 거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동생도 그렇다는 거다.



우리가 이런 성향을 동시에 갖게 된 것은 무엇일까? 둘이 입모아 결론냈던 것은 '양육환경'이었다. 보고 자란 것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는 거다. 실제로 생각해보면 우리 부모님은 평생 만족을 모르고 살아오셨다. 맞벌이였고, 치열하게 살았다. 그 자리에 만족한 적이 없었다. 어느 자리에 올라가면 더 높은 자리에, 또 더 높은 자리에. 더구나 두 분이 같은 직업이었기에 퇴근 후 가족과 함께 있으면서도 항상 직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셨다. 우리가 어릴 때엔 좀 더 직업상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한 방법을 논의하셨고, 어느 정도 후에는 승진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가족 모두 밥을 먹을 때에도 대화의 주제는 언제나 '누가 승진했다더라.', '누가 ~성과를 냈다더라.', '앞으로 우리는 ~해서 ~하자.'등등의 이야기였다. 내가 어떤 것을 잘해서 좋은 성과를 냈을 때에도 아빠는 "그래. 다음에는 더 잘하도록 해라."라고 말씀하셨다. 어느 정도하면 만족이 되는 것인지, 정말 잘하고 있는지 인정받은 기억이 별로 없다. 동생도 그랬다.



인정욕구. 칭찬받고 싶은 욕구.

그것이 우리 둘이 지금 이 자리에까지 오게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말이다. 둘 다 이렇게 만들어진 우리의 성향에 대해 우리가 만족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언니는 이런 성향이 좋나?
아니. 니는?
아니.



행복의 임계치에 낮은 사람은 항상 행복이 가득한 것처럼 보인다. 일상에 만족하며,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고, 주변 사람도 실제로 그 행복을 받는다. 과연 동생과 나의 행복의 임계치는 대체 어디길래 우리는 끊임없이 만족하지 못할까. 어느 정도가 되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있을까.



우리 둘이 결론을 낸 것은

나는 내가 성장한 환경과는 다르게 아이를 키우겠다.

일상생활의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엄마인 나부터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고 만족하는 것을 아이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결론.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일상을 보내고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끊임없는 인정욕구가 일상에 최선을 다하고, 좀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작은 것에도 행복했고, 만족했다면 지금의 우리는 존재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이런 생각에 좀 더 생각이 더해져 큰 의문이 또 생긴다. 사람의 삶에 행복이란 무엇이며 성공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가? 무엇이 옳은가? 하하하하하하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허탈한 웃음이 나오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생각의 끈을 놓고 처음으로 다시 돌아간다. 아이를 키우는 데 가장 중요하고, 근본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모든 것을 아이가 보고 자라고,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나와 동생만 봐도 자명하다. 일상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상승욕구를 가지고 있는 우리. 상승 욕구를 가지고 있어도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힘든 과정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릴 적 부모님이 우리가 원하는 만큼 칭찬해주시지 않았어도 우리는 스스로 노력했었다. 태어날 때부터 이런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인가? 사람은 누구나 다르니까? 그럼 가정교육이라는 말도 필요없겠고, 아동학대의 영향에 대해서 신경쓸 필요도 없겠지.. 아마도 칭찬은 아니었어도 적어도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계시는 부모님의 관심,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작은 성공의 기쁨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지 않았을까.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도 잘하고 있느냐/못하고 있느냐를 판단할 수 없다. 아이가 어떻게 크는 것이 잘 크는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아이 스스로 해야할 일이지, 내가 결정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모범적인 아이의 형상을 만들어 우리 아이에게 주입시키려고 해도 아이는 그것을 따라주지 않을 뿐더러, 내가 생각한 그것이 옳은 것이 아닐 거라는 것이 가장 크다. 다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이에게 좋은 환경(좋은 환경도 과연 무엇인지 헷갈린다....ㅠㅠ 학군지? 시골? 과연 어떤 환경???), 모범적인 행동을 하는 엄마가 되기, 다양한 기쁨을 만날 수 있게 다양한 경험을 허락하는 허용적인 마인드,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아이가 사회적으로 피해끼치지 않는 올바른 생각의 씨앗 전해주기 등등일 것 이다.



놀랍게도 동생과 나는 우리가 자라온 것처럼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다. 부모님의 싫었던 부분까지도 스스로 놀라면서도 나도 모르게 행하고 있었다. 동생도 그러하다고 했다. 아이를 내가 커온 것과 다르게 키우고 싶다면 의도적으로/ 아주 큰 노력을 하여 다른 엄마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만 무엇이 옳은지 잘 모르기에 어떤 방향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옳은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 우리 둘의 결론.



적어도 내가 성장할 때 나의 상처를 대물림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 진짜...;;;; 무슨 글을 쓰려고 했던 것인지... 글을 쓰다쓰다 결론은 안나고, 머릿속은 복잡하고. 그냥 발행합니다.



** 이 글을 쓰며 무엇이 아이를 키울 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느냐에 대해 골머리를 썩고 있을 때 만난 기사다. 층간소음으로 고통받으신 분이 윗집에 보낸 편지 이야기. 이 글을 읽으며 무릎을 탁 쳤다. 이런 것이 엄마가 아이들에게 해줘야 할 것이구나.....



기사도 공유합니다.


https://news.v.daum.net/v/20210621083445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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