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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Jun 30. 2021

여성에게 아이란? 여성에게 가정이란 어떤 존재일까?


© scoutthecity, 출처 Unsplash




  오랜만에 그녀를 만났다. 오랜 시간 휴직을 하고 있는 그녀. 둘 다 휴직맘인 상태로, 겉모습은 동네 아줌마인 상태로 만났다. 20대의 그녀. 유난히 반짝반짝, 모든 일에 똑부러졌던 그녀가 동네 아줌마라니. 그녀에게 아주 안 어울릴 것 같은 옷이 동네 아줌마였는데.. 유난히 잘 어울린다. 모든 일에 똑부러진 그녀의 성향이 육아에도 적용했으리라. 조심스레 언제 복직할 거냐고 물으니 앞으로도 기약이 없다고 했다. 한동안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공부를 계속하고 있냐 하니 그렇지 않다고 했다.




  복직하지 않는 이유를 물으니 복직 후 삶에 대해 말한다. 본인의 성향상 일에 너무도 집중할 것이며(그녀의 성향은 일에 영혼까지 빼주고도 남는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할 것이며 그 아이들을 함께 돌볼 남편은 어떻게 할 것이며.. 더구나 복직 후 직업에 충실하기 위해 쓰는 자질구레한 돈을 제외하니 손에 쥐는 돈이 백만 원 남짓. 차라리 복직하지 않고 아껴 쓰는 것이 가족을 위해서 나은 선택이라 했다. 차라리 열심히 공부해서 투자활동을 통해 얻는 수익이 가족의 행복에 훨씬 나을 것이라 했다. 또, 거리상 복직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사직하지 않는 이유를 물으니 나랑 같다. 대출 때문이다. 대출을 이어가기 위해 겸임 겸직이 불가능한 직업을 휴직인 상태로 영위해야 한다고 했다. 뭐라고 하고 싶으나, 겸임 겸직 금지조항 때문에 할 수가 없고, 대출 때문에 그만둘 수도 없다고 했다. 






  반짝했던 그녀의 20대를 아는지라 가족이 대체 무엇인지, 아이란 여성에게 어떤 존재인 건지, 동네 지나가는 아줌마들은 과연 어떤 20대를 살았던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아이는 소중한 존재인 것인지... 




  아침마다 우는 아이를 달래며 출근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헤어지기 싫다고 울면 우는 대로, 엄마 잘 다녀오라고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도 마음이 아팠다. 아마 내년도 마음 아파하며 출근하겠지. 함께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녀에게 '자신'이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일까? 우리 엄마에게 '자신'이라는 존재는? 나에게 '자신'이라는 존재는? 동네 아줌마도, 교문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며 활짝 웃는 그녀들도 한 가정의 이쁨과 기대를 듬뿍 받으며 성장했을 것이다.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며 그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힘든 공부시간을 이겨냈을 것이다. 성적이 미래를 결정짓는다고 생각했던 지난날, 미래가 어두워질까 봐 기대에 못 미친 성적을 보며 슬퍼하기도 했을 것이다. 한없이 예뻤을 20대를 즐기며, 더 큰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했을 것이다. (나만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생겨 갑자기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두어야 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도저히 아이 케어가 되지 않아 일을 그만둘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어쩔 수없이 일을 그만두던 날, 자신의 미래가 단절되는 것보다 당장 right now, 내 아이의 케어가 해결되었다고 행복했을 것이다. 




  차라리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미래 꿈을 그저 현모양처로 생각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더라면 아이만 키우고 있는 현실에 만족하며 살까?




  난 나의 딸, 까꿍이의 찬란한 미래를 상상했지, 아이를 키우며, 주부의 모습으로 생활하는 것을 상상한 적이 없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지, 자녀를 예쁘게 키우는 것이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런 생각이 평생 일했던 엄마에게서부터 왔을지라도 말이다. 까꿍이가 커서 어느 순간 아이를 갖게 되고, 아이 케어를 위해 일을 그만둔다고 한다면.. 난 싫을 것 같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생각하며 까꿍이의 미래가 없어지는 것처럼 느껴져 한없이 슬퍼질 것 같다. 




  그녀의 부모님도 똑같이 생각하지 않으셨을까. 멋지게 키워놓은 딸이 가정주부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깝다고 말이다. 그녀에게는 지금이 최선이며 최상의 선택일지라도 말이다.   




  여성에게 가정이란 무엇이며, 아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여성이 스스로 설 수 있을까? 아이를 키우는 기쁨을 느끼면서도 직장 여성으로서 편안한 마음으로 일할 수는 없을까? 여성도 평생 일해야 한다는 나의 생각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유독 우리나라만 이런 것인지... 이런 현실이 미래에도 지속된다면.. 잠자고 있는 까꿍이를 보며 갑자기 슬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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