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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Jul 05. 2021

아이가 학교에서 작품을 가져왔을 때






나꿍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집안 곳곳 돌아다니며 전기절약 카드를 테이프로 붙였다. 또, 우리 가족 행사가 적혀있는 아이스크림 작품을 냉장고에 붙였다.



엄마~ 이 카드 보고 전기절약하세요.
엄마~ 이 아이스크림에 적혀있는 행사가 중요하니까 냉장고에 붙여 둘게요.

그 작품을 볼 때마다 아이는 흐뭇해한다. 학교에서 힘들게 색칠했다며, 힘들어도 끝까지 참고 했다고 자랑스러워한다.





비꿍이가 퇴근했다. 비꿍이가 약간 얼굴이 일그러진 채로 종이 구겨진 것을 휴지통에 버렸다.



나꿍이가 문에 테이프로 카드를 붙여놔서 흔적이 남았어.
이런 건 아이들이 집에 안 붙이면 좋겠어.
벽지에도 테이프 자국이 남았어.


냉장고에 붙여둔 카드도 떼려고 한다. 급하게 냉장고에 카드를 떼고 있는 그의 손을 잡았다.



떼지마. 나꿍이가 붙여둔 거야.
힘들게 학교에서 만든 거랬어.
이거 붙여두면서 아이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알면 자기도 못 뗄 거야.

우리 비꿍이 왈.

이런 거 만들 때 그럼 테이프 안 쓰고 포스트-잇으로 붙이면 안 되나?

으이그.

집이 중요해? 아이가 중요해?


비꿍이는 내가 왜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 나의 의도를 처음부터 알고 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냉장고에 아이의 카드를 다시 붙인다. <참 고맙고 착한 사람이다> 거실 벽지에 붙여둔 카드가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걸 버리지는 못하고 콘센트에 조심히 옮겨 붙인다.


나꿍이는 자신의 카드를 모두 어디에 붙인 지 알고 있었다. 없어진 카드를 찾는다.

"엄마, 내가 방문 앞에 분명히 붙여뒀는데... 방에서 나올 땐 전등을 끄라는 카드였는데... 어디 갔지?"






많은 육아서에서 신생아 때 아이의 대변까지도 칭찬하라는 말을 한다. 아이가 생산해낸 것이니 아이에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칭찬하라는 말이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칭찬해야 할 것은 점점 달라진다. 당연히 사람이라면 걸어 다녀야 하지만,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 기뻐하며 감동한다. 아이에게 큰 칭찬을 한다. 아이가 연필로 낙서하는 것만으로도 부모는 행복해하며, 아이를 칭찬한다.



아이가 조금 크고 나니 칭찬할 것을 찾지 않으면 칭찬하기가 힘들어진다. 만들기 작품만 해도, 만들기를 한지가 몇 년째 되다 보니 감흥이 없다. 조금 더 잘 만들고 덜 만들었을 뿐이다. 미니카를 접고, 더 많이 접고, 덜 접고, 한 번 더 접고. 감흥 없이 바라보면 그저 미니카 조금 변한 것뿐이다. 아이의 그림에서 색을 하나 더 쓰고, 덜 쓸 뿐이다. 컸으니 당연한 것이라 여긴다. 당연한 것이라 여기지 말고 무엇이든 꼭 찾아서 칭찬해야 한다.



예전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많이 들었던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아이들이 나에게 해줬던 이야기.



어차피 만들어봤자 집에 가져가면 엄마가 버려요.
무겁게 가져가봤자 어차피 엄마가 버려요.
왜 가져왔냐고 말해요.
무엇인지 궁금해하지 않아요.
집이 지저분해진다고 해요.


그 말을 듣고 있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아이가 어떻게 한 것인데... 아이의 소중한 작품을 그렇게 대하다니.. 어른의 눈에는 보잘것없을 수밖에 없지. 아이들이 몇 살인데. 이제 막 시작하는 것인데 어떻게 처음부터 잘할 수가 있나. 아이들은 무엇을 위해 열심히 작품을 만들었을까? 나라도 열심히 칭찬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서로 칭찬하기 시간을 일부러 더 많이 가졌다. 시간이 부족하더라도, 다른 것을 줄이는 한이 있어도 말이다.



아이가 크고, 그 작품을 우리 집에 가져오니 나도 그분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셨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의 작품이 집안 가득 쌓아두는 것이 싫을 때가 많다. 아이에게 소중한 것이니 무턱대고 버리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안 버리자니 집이 점점 답이 없고.. 아마도 그 아이들의 부모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아이들이 그렇게 표현할 정도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그냥. 우리 아이가 만들었으니까 소중한 것이다. 소중히 대해야 한다. 아이가 작품을 가져왔을 때 양육자가 해야할 것은 다음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활동한 작품을 가져왔을 때 해야할 일


1. 작품에 대해 이야기나누기

그저 '잘했어!'가 아닌 조목조목 이야기해주는 칭찬. 그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만들었는지, 만드는 중간에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는지, 스스로 자신의 작품에 대해 평가하기. 모두 듣고 난 이후 작품에 대해 양육자가 칭찬하기.


2. 전시할 곳 정하기

아마도 집이 가득차있을 것이다. 지난번 작품도 집에 있을 확률이 크다. 아마도 여러 가지가 곳곳에 있을 것이다. 전시할 곳 정하면서 지난 작품 중 일부분을 정리한다. 아이가 선택하게 할 것. 총 작품수를 결정하고, 1개를 더 전시할 때마다 1개를 빼는 방식. 부모와 아이가 상의하여 총 작품수를 줄이거나 늘려도 상관없다.





물론 나도 이러한 방식이 힘들다. 특히 들어주기가 제일 어렵다. 그런데 막상 해보면 아이가 제일 행복할 때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할 때다. 그 시간을 마음껏 누리게 해주는 것이다. 아이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면서 부족한 부분, 특히 잘 된 부분 등을 발견하며, 스스로 다음 활동에서 해야할 일을 깨우친다. 부모가 해야할 일은 아이가 하는 말을 잘 들어주기다. 잘 들어야 아이가 발견하지 못한 잘한 부분 칭찬하기,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어떻게 보완하면 좋을지, 또는 바꾸어 생각해서 칭찬하기가 가능해진다. 만약 아이가 말하기 귀찮아한다면? 그저 내가 발견하고 내가 칭찬해주면 된다.^^



놀이터에서 아이와 함께 놀아주다보면 내가 우리 아이랑 노는 시간을 가지려고 놀이터에 있는 것인지, 동네 아이들의 말을 들으려고 놀이터 중간에 있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아이들은 처음 만난 나에게도 말을 하고 싶어한다. 그 아이들의 말을 듣고 칭찬해주며, 동감해주면 아이들은 더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가만히 듣다보면 그 아이들의 가족사까지 알게 된다. 엄마에 대한 불만,아빠에 대한 불만, 학교에서 있었던 일 등등.


아이들에게 또래와의 대화도 중요하지만 어른과의 대화는 더 중요하다.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부모님과 함께 대화하며 밥을 먹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얻지 못하는 것을 배운다. 아이들이 직접 만든 작품은 오죽할까. 그들의 작품을 소중히 대하며, 그것을 이용하여 아이와 진실된 대화를 한다면 아이는 훨씬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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