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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Nov 17. 2020

성공의 의미

© zacdurant, 출처 Unsplash



  난 엄마의 앞모습을 본 적이 별로 없다. 엄마는 항상 바빴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은 뒷모습이다. 설거지하는 모습,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모습. 명절때에도 컴퓨터 앞, 직장출근이었다. 지금 그때로 돌아가도 그때처럼 열심히 일할것이라며 얘기하실만큼 엄마는 일을 사랑했다. 

  아빠는 사회생활이라며 항상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오셨다. 승진을 위해서라면 윗분들과 테니스, 배구를 해야하고, 그 후에는 술도 마셔야 되는 것이라고 하셨다. 주말은 테니스모임 등산모임 등.. 비가 와서 외부활동이 힘든 날을 제외하고는 집에 계신 날이 극히 없었다. 

  우리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은 아침식사시간이었다. 대화의 내용은 승진이야기 점수이야기였다. 두 분은 원하시는 만큼 승진을 하셨고, 퇴직하셨다. 


  두 분께 '성공하셨나요?' 여쭈어본다면 사회적으로 원하시는 지위까지 올라가셨고, 두 딸도 가정을 이루고,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있으니 성공하셨다고 대답하실 것 같다. 


  그런데 부모님의 승진 뒤에 숨겨진 두 딸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을까?

  난 초등학교 입학식, 졸업식, 운동회 때 엄마가 오신 기억이 운동회 한 번밖에 없다. 가족과의 대화가 많이 있었는지 기억이 없다. 20대 이전에 가족여행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승진이야기, 점수이야기는 어떤 얘기를 하셨는지 자세히 나열할 정도로 잘 알고 있다. 승진에서 밀려났을 때 두 분이 얼마나 힘들어하시는지 난 봐왔다. 그런 상황에 가족의 추억을 만들자고 하기도 어려웠다. 직장생활하시며 어렵게 어렵게 우리를 키우신 것도 알고 있고, 최선을 다하신 것도 알고 있다. 사랑을 많이 주신 것도 안다. 하지만 가족과의 추억이 별로 없다는 것, 어린이였을 나까지도 승진에 목매여있었다는 것을 난 알고 있다.  이런 이유로 사회적인 지위 향상은 나의 성공목록에 없다. 

  아이들의 어린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 나의 어린 시절도 결국에는 그렇게 갔으니까. 난 내가 그렇게 커왔다고 우리 아이들까지 그렇게 키우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아이들이 나의 품을 스스로 한발 한발 떠나갈 때까지는 밤과 주말에는 아이들과 함께 눈맞춰 웃고, 떠들고, 뛰어다니고 싶다. 직장을 포기할 수 없다면 적어도 퇴근 후에는 직장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가정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고 싶다. 내가 책임져야 할 아이들이니까.

  아이들이 크고 나면 난 뭘하지? 아이들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기 시작할 때부터 난 공부를 쭉 해오고 있다. 특히 첫째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면서부터는 나의 시간이 조금씩 늘어났다. 나의 노력이 언젠가는 결실을 맺으리라. 내가 준비하고 공부한 것들이 현실로 드러난다면 난 그것을 성공이라 생각할 것이다. 아마도 경제적 자유와 나의 취미생활을 좀 더 구체화한 일들이 아닐까.


   즉, 나에게 성공이란 가정 속에서 온전히 나의 자리에 있는 것, 나의 노력이 현실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난 성공을 위해 오늘도 한발짝 걸음을 걸었다. 내일도 걸을 것이다. 난 성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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