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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Nov 17. 2020

할머니의 달걀볶음밥

© takedahrs, 출처 Pixabay

  나를 키워주신 분은 6할이 외할머니다. 바빴던 맞벌이 부모님 덕에 동생과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아침 일찍 할머니댁으로 출근해야했다. 유치원을 할머니댁에서 졸업하고, 초등학생이 되어도 난 여전히 할머니와 함께 였다. 

  할머니가 자주 해주셨던 달걀볶음밥. 흰색 그릇 속 김이 솔솔 나는 한 그릇 가득담긴 볶음밥. 그 밥을 떠올려본다. 일주일 내내 먹어도 질리지 않았고, 우리집에 가서도 엄마께 볶음밥을 만들어 달라고 말한 적도 많을 만큼 난 달걀볶음밥을 좋아했다. 지금도 아이들에게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방밥으로 볶음밥을 만들어준다. 하지만 그 때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그 맛은 나지 않는다. 이제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달걀볶음밥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할머니는 작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셨다. 이민간 첫째아들이 얼마나 그리우셨던 것인지 구순이 다 되어 한국에 있는 집까지 모두 내버려두고 미국으로 건너가셨다. 그 사이 그의 자손들은 다시 할머니가 한국에 오시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집을 정리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건강이 나빠진채로 한국으로 돌아오신다. 이미 집을 정리했기에 할머니가 편안히 누울 집, 갈 집이 없다. 결국 가신 곳은 요양병원. 거기서 몇 달을 보내시다가 연휴의 전날,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가셨다. 외국에 있는 자손들 모두 올 수 있게 새벽일찍 가셨다.

  요양병원에서 누워계셨던 할머니를 생각해본다. 평생 근검절약을 몸에 익히고 살았던 할머니. 평생 나랑 동생을 10년은 넘게 키워주셨던 우리 할머니. 요양병원에 누워 계시면서도 어린 아이처럼 돈 많다고 자랑했던 할머니. 돈이 많으면 뭐하나. 누울 곳은 요양병원 병실 안 침대 하나인데. 할머니를 위한 최선이었다는 생각은 한다. 그렇지만 할머니가 애처롭게 느껴진다. 편안한 집도 없이 침대가 오로지 내가 누울 자리 한 곳이었다니. 세월이 지나가며 할머니의 친구분들은 하나둘씩 먼저 돌아가셨다. 결국은 남은 건 할머니 혼자. 그리고 지켜보고 있던 자손 뿐. 그 자손마저도.. 말줄임표다. 건강하게 오래살면 행복한가? 더 아프지 않으시고, 슬퍼하지 않으셔도 되어 어쩌면 몸쓸 손녀가 되어 행복하기도 했나보다. 

  오늘은 그 달걀볶음밥이 몹시도 그립다. 할머니의 따뜻한 손이 그립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그립다. 

  "릴리야, 학교 갔다왔나? 밥 볶아주까?"

  할머니 사랑해요. 잘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할머니 덕에 따뜻한 가정 꾸려서 잘 지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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