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 Jun 19. 2017

모든 것을 아는 사회는 정말 좋은가 <더 서클>

'알 권리'와 '숨길 권리'에 대하여

수도회사 임시직으로 일하던 사회초년생 메이(엠마 왓슨 분)는 친구 애니(카렌 길런 분)의 주선으로 세계 최대 IT기업 '서클'에 입사한다. 그는 "모든 정보를 모든 사람에게 공유하자"는 회사의 모토에 매료돼 열심히 일하며 신입사원으로서 두각을 나타내고, CEO 에이몬(톰 행크스 분)의 눈에 들어 개인의 모든 일상을 공유하는 '씨 체인지' 대중화에 앞장선다. 하지만 투명하고 안전한 세상을 향한 메이의 바람은 의도치 않은 부작용으로 가족과 친구들을 고통에 빠뜨린다. 이 와중에 잠적했던 서클의 창립자 타이(존 보예가 분)가 그 앞에 나타나 시스템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메이는 혼란을 겪는다.


영화 <더 서클>은 정보의 홍수를 겪고 있는 현대 사회의 주요 쟁점들을 의미심장하게 꼬집는다. '서클'이란 신세계에 발을 들인 주인공 메이의 눈을 통해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사회를 가정하고, 이러한 환경이 개인에게 미칠 수 있는 효과를 조명한다. '알 권리'와 '숨길 권리'를 큰 줄기로 한 영화 속 이야기들은 머지않아 마주할 미래이자 어떤 면에선 지금 현재도 벌어지는 일들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서클'이란 가상의 기업에서 구글이나 페이스북, 애플 등 인터넷 소셜 플랫폼(또는 콘텐츠)을 주도하는 IT기업들이 떠오르는 건 그런 맥락에서다.

러닝타임 내내 영화가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바로 "모든 정보가 숨김없이 공유되는 사회는 좋은가"에 대한 것이다. 의료 복지와 범죄 근절, 인권 보호, 궁극적으로는 완벽한 민주주의의 실현까지. 극 중 서클이 추구하는 세상은 그야말로 유토피아다. 개인정보를 단 하나의 계정으로 통합해 모든 사이트에 접속 가능한 '트루유', 전 세계의 데이터를 종합해 불과 10여분 만에 범죄 수배자를 찾아낼 수 있는 '소울 서치' 등의 시스템은 '앎'이 주는 편의와 안정을 효과적으로 부각한다. "사람들은 보는 눈이 없을 때 나쁜 짓을 하기 쉽다"는 메이의 대사는 서클이 추구하는 정의를 그대로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 중반 이후 메이 앞에 펼쳐지는 사건들은 그 전과 사뭇 결이 다르다. '아는 것'의 순기능을 역설하던 서사는 이내 그 이면에 숨은 '알려지는 것'의 부작용을 조명한다. 메이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고, 이 과정에서 되레 부모, 애니와 멀어지는 전개는 의미심장하다. 특히 메이가 전 세계 팔로워들의 요구에 의해 한 행동이 최악의 결과를 낳는 클라이맥스 신은 흔히 스타를 향한 불특정 대중의 무책임한 조리돌림을 연상시킨다. 이는 '모두가 나를 보고 있다'는 의식이 도덕적 책임감을 넘어 자기검열로까지 확장되는 지점과 맞물려 감시 사회의 폐해를 그대로 보여준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정보 공유와 보호 사이에서 영화는 끝끝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보류한다. 그저 급속도로 발전해 가는 기술과 시스템 환경 속에서 점점 더 많은 정보가 점점 더 쉽게 주어질 거란 피할 수 없는 사실을 분명히 상기시킬 따름이다. 대신 <더 서클>은 이 와중에 일어날 수 있는 정보 독점과 불평등을 경계한다. "모든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는 서클의 경영진이 정작 어두침침한 방에서 비밀회의를 갖거나, 회사의 위법성 의혹을 제기한 상원의원이 우연찮게 비리 혐의로 기소되는 에피소드들도 그런 점에서 유의미하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 말미 메이가 하는 결정적 선택은 그가 해낼 수 있는 최선의 정보공유 '혁명'으로까지 비친다. 이는 어떤 '서클'(Circle)에도 귀속되지 않는 완벽한 정보 민주주의의 청사진이기도 하다. 2017년 6월 22일 개봉.

매거진의 이전글 스물둘 청년의 뜨거웠던 사랑과 신념 <박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